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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공작소통신

2월 제주 남원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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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제주 남원 갈까.


여행기를 쓰려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 시각, 제주는 강풍과 난기류의 영향으로 비행기의 발이 묶였다고 한다. 육중한 비행기의 운항에 영향을 끼치는 강풍을 자전거로 관통하여 무사히 집에 도착하였으니 안도의 한숨을 쉬어본다. 제주를 오갈 때면 늘 그랬듯이 배편을 이용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제주항으로 페달을 밟으면서 이렇게 심하게 바람이 불어대면 배라도 온전히 항구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배는 끄떡 없었다.


지나서 기억을 더듬어보면, 승선을 마치고 배가 제주항을 벗어나기 시작하자 선장은 선내방송으로 이와같이 말했다.


- 선내의 승객 여러분, 본 선박은 제주 인근의 파도가 높은 관계로 흔들림이 있사오나 제주 앞바다를 벗어나면 곧 안정이 될 것이오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랬다. 배는 사십여 분을 지나자 곧 안정을 되찾았다. 안정이 아니라고 해봐야 약간의 흔들림 정도였지만.


제주는 늘 친절하지 않다. 어떨 땐 작심하고 나를 멀리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런 감정은 거푸 제주를 찾은 사람들은 한번쯤 겪었으리라 생각한다. 바람에도 그 흐름의 길이 있는 것일까. 제주를 따라 흐르는 방벽과도 같이 거대한 바람의 통로가 별도로 있는 것 같았다.


세다고 느꼈던 5 년전보다 더 강한 바람이었다.



장거리 라이딩에 나서기에는 몸이 허락치 않은 상황이 1 년 9 개월여 지속되었다. 나는 그간 계속 앓았다. 앓았으나, 의사의 이죽거림대로 죽을병이 아니었을 뿐이다. 다른 불편은 아쉽지 않은데 자전거 타고 제주 못간다는 것이 못내 애석하였다.


꿈을 꾸었다. 제주를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는 꿈이었다. 이런 꿈을 꾸는 주기가 날이 갈수록 짧아졌다. 꿈에서 깨면 깬 자리가 제주가 아니라는 사실에 섭섭함의 강도는 더해만 갔다. 그래, 이렇게는 못살겠다. 내일이면 출발하는 거다. 내일이면 정말이지 출발하는 거다. 아니지, 좀 참았다가 약 더 먹고 하다보면 더 나아진 몸상태로 홀가분하게 제주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닐까?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임계점을 넘고 말았다.


에라이... 이제 더는 못참겠다.


밤의 국경을 넘는 유랑민의 심정으로 자전거에 짐을 꾸리고 배를 탄 것이 2월 중순의 어느날이었다.



제주항에 내리자 바로 제1횡단도로(지방도 1131)위로 자전거를 올렸다. 고향 같은 고향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배편 허름한 3등실 바닥에 누워 제주의 특정 지역을 고향으로 삼아버리는 재미를 누린다. 지도를 펼치고 남원 갈까, 대평리 갈까, 송당리 갈까 고민을 하다가 마음 가는 데가 송당리였다.


돌아가자면 너무 멀고 1횡단도로 따라 성판악 방향으로 가다가 중간에 교래리로 빠지면 그 길의 끝자락에 송당리가 있다. 제주대학교 가는길을 찾은 다음 성판악이나 서귀포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며칠전에 내린 폭설에 채 녹지 않은 눈이 길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반가운 눈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어수선해 보이고 정갈하지 않은 인상을 주었고 길은 아침 시간이라 서귀포로 넘어가는 차량이 많아 소란스러웠다. 5 년전 조용하던 그 길이 아니었다.






조금씩 고도가 높아질수록 숨은 가빠오고 내뿜은 입김에 안경앞은 흐릿해졌다. 한라산의 높고 응달진 곳곳엔 녹지 않은 눈이 남아 있었다. 이 이전에는 눈 쌓인 횡단도로를 넘어 영실이나 등산로 안쪽의 눈에 푹 파묻혀봤으면 하는 로망이 있었다. 그 바람은 이번 여행으로 접게 되었다. 갓길의 빙판만으로도 자전거가 진행하지 못할 정도로 위험하고 힘든데 눈 쌓인 한라산길이라면 말해 뭐하겠는가.


바람은 불어대고 오르막은 이어지고 길은 녹록치 않았다.


눈이 살짝 녹으면서 빙판이 된 길은 위험하다. 평소보다 더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측풍이 갑작스럽게 불면 경험이 많은 라이더도 중심을 잃고 낙차할 수 있다. 옆에 차가 지나다니니 정말 조심해야 한다.



잔설이 남은 한라산을 바라보며 삼각김밥을 먹었다. 고백하건데 나는 삼각김밥을 온전한 형태로 먹어본 적이 없다. 김밥을 삼각형의 모양으로 싸서 먹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꽤 이질적인 것이다. 김밥이라면 모름지기 원통형으로 둘둘 말은 것을 한손으로 덥썩 쥐어서 양껏 입안에 넣어 와드득 씹어먹어야 제맛인 것이다. 이 문화양식에 익숙한 나에게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쥐어 포장을 한꺼풀 벗겨낸 다음 형태가 무너질까 염려하며 다람쥐가 도토리 깨어먹듯 앞니로 씹어야 하는 삼각김밥이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이날 이전에는 어떻게 된 것이 비닐봉지를 걷어내면 김따로 밥따로 분리가 되어 그 먹는 꼬락서니가 몹시 처량한 것이었다. 맨살을 드러낸 밥, 그 가운데 벌건 양념에 버무려진 속, 밥을 대충 꿀떡 삼키고 나서 아쉬우니 비닐봉지에 붙어 있는 김을 따로 떼어 입에 넣던 풍경은 궁색하기도 하거니와 남이 보면 참으로 미숙의 극치였을 것이다.


나는 그 불상사를 반복할 수 없었다. 비닐봉지의 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읽었다. 비결은 포장지의 중앙을 최대한 깔끔하게 분리하는 일이다. 그 다음 과감하게 양쪽의 비닐을 좌우로 해체하면 딱 떨어지게 김에 싸인 삼각형의 김밥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한라산을 바라보며 삼각김밥의 양 꼭지점을 조심스럽게 쥐고 다람쥐가 도토리를 깨어먹듯 알뜰히 김밥을 먹었다. 아침을 안먹던 오래된 습관은 위장에 병을 남겼다. 해서 지금은 조금이라도 약먹듯 밥을 먹는다. 밥은 약의 또다른 이름이다. 요즘 나에게는 확실히 그렇다.





이전 여행기에서 성판악 넘어 서귀포 가는 이 길을 천백도로에 비해 경치가 좋다는 평을 하였지만, 이번에 다시 가보고 나니 계절에 따라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는 것으로 수정을 하여야 하겠다. 봄에 비해 시선 둘 곳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KBS중계소 지나 조금만 나아가면 교래리 방면으로 빠지는 지방도 1132가 나온다. 성판악에서 한라산 산행을 하거나 서귀포로 가려면 그대로 직진하면 된다. 나는 여기서 잠시 고민했다.


남원 갈까.


제주에서 제일 살기 좋다는 남원. 근처 위미리엔 동백이 유명하다던데... 그러자면 교래리로 빠지지 말고 직진해야 한다.


남원 위미리에서 하루 묵은 적이 있다. 그땐 밤늦은 시간의 늦은 봄날이었으므로 그 진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길따라 남원 가면 다음날 송당리로 가는 오르막을 다시 올라야 한다. 머리속이 복잡해지면서 번갯불이 튀었다.


그렇지. 오늘은 일단 송당리에서 자고 하루이틀 오름에 올랐다가 그 다음에 중산간을 따라 남원 가자. 그 다음은 해안가 따라 제주 동부로 가면 되고. 이 계획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철저하게 망하게 된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삼나무 숲길이 장한 지방도 1112로 자전거의 방향을 돌렸다.





교래리 가는 이 길은 자전거 라이딩은 물론이고 차로 드라이브 가기에도 좋은 길이다. 길의 초입부터 힘차게 뻗어 있는 삼나무 숲이 볼만하다. 우연히 이 길에 접어들었을 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뭐든 처음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이 날도 나쁘지 않았으나 숲길이 좀 짧게 느껴졌고 차량의 흐름이 끊이질 않아서 신경이 쓰였다. 이제 제주는 웬만큼 이름이 알려졌다 싶은 곳은 사시사철 사람들로 붐빈다.


송당리까지는 한 번의 예외 없이 내리막이 이어져서 지친 몸을 쉬게 하기에 좋았다.









송당리는 오름의 왕국답게 시선이 닿는 곳 어느 한 부분에는 여지없이 오름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은 크게 변화는 없었으나 몇군데 대규모 음식점이 들어서려고 공사중이었다. 공사는 제주의 변함없는 일상중에 하나다. 한적하던 시골마을이 이 정도니 다른 관광지야 말해 뭐하겠는가.


태어나지도 않았으면서 주제넘게도 출향했다가 명절에 고향 들른 자의 심정이 된다. 내 고향만은 늘 그랬던 것처럼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


다시 들르겠다고 약속했던 게스트 하우스로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이게 웬일. 숙소 옆 자그마한 식당이 있던 곳엔 편의점이 들어서 있었고 게스트 하우스는 개점휴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게스트 하우스를 알리는 간판은 빈 공터에 패대기 쳐져 있고 심상찮은 분위기였다. 일정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부랴부랴 주변의 다른 게스트 하우스에 전화를 넣으니 자리가 없다는 거였다.


주말도 아니고 바람 찬 2월 그것도 구석진 제주 시골마을에 나에게 허락된 잠자리가 없다니!


사람 없는 한적한 오름에서 닭다리를 안주 삼아 소주 일병을 먹고 느긋하게 낮잠을 자기로 했던 계획은 또 어쩌라고!



마침 열두시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 작전을 짤겸 점심을 먹었다. 주문을 한 뒤 상을 받고 나니 너무 과한 점심이다 싶었다. 따뜻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계획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완벽하지 않은 몸으로 다시 산을 넘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빙 둘러 저녁 늦게까지 라이딩 하여 남원으로 갈 수도 없고. 사자성어(?)로 대략난감.


딱 2년 전이었다면 고민거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백 킬로미터고 이백 킬로미터고 연양갱과 물만 있으면 내 몸은 자전거 타는 기계였다. 허나 이젠 이 진수성찬을 먹고도 힘을 낼 수 없는 약해진 몸.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휘날리는 검정색 비닐 봉다리의 심정으로 용눈이 오름을 향해 다시 길을 나섰다. 난감하기는 하나 여기까지 와서 오름에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창 풀에 생기가 있을 때는 소가 오름의 터줏대감이더니 이 계절엔 말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말이 정상쪽으로 가는 길을 떡하니 막아서고 있으면 어째야 하나 싶을 때가 있다.


- 물기도 하고 차기도 하니 조심하세요.


하고 지나가는 아가씨들에게 농을 걸었더니 무서워서 꼼짝을 못하고 서있다.




용눈이 오름은 하도 찾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탐방로의 유실도 진행되고 있었고 길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이제 오름도 휴식년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경관이 좋은 오름도 많으므로 한두해 정도는 번갈아가며 통제를 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오름을 오래 우리 곁에 둘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구름 낀 날의 오름을 사랑한다. 이런 날이면 더욱 천천히 걷는다.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다다르면 발길을 멈추고 기다린다. 구름이 살짝 걷히고 그 사이로 연극무대의 핀조명처럼 한 곳에 제한된 햇빛이 강하게 쏟아진다.


삽시간의 황홀이 벌어지는 순간이다.


내 카메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난사를 해댄다.




이 날 용눈이 오름 정상에서는 다음날의 강풍을 예고하는듯이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작은 아이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둘둘 굴러다닐 것 같은 세기의 바람이었다.


오름의 꼭대기에선 남원은 보이지 않고 먼데 성산 일출봉과 우도가 보였다. 제주 동부에서 숙소와 음식점이 저기보다 많은 곳은 없을 것이다. 내키지 않지만 대안이 없었다. 여기서 남원은 너무 멀고 물리지만 성산에 갈 수밖에.




정처가 정해졌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처음 계획이 일그러진 탓이다. 바람이 검정색 비닐 봉다리를 공중으로 띄워 남원까지 날려 보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오름 위에서 비슷한 그림의 헛것을 보기도 하였다. 허나 바람은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성산으로 등을 떠밀고 있었다./자전거여행의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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