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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공작소통신

그깟 꽃이 뭐라고, 하동 십리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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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꽃이 뭐라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네예.

 

꽃구경 가던 버스안에서 기사가 꽉 막히는 길에 지쳤는지 한숨을 토하듯 이렇게 말했다. 하긴 그깟 꽃이 뭐라고 봄이 되면 구례 광양 하동은 연이어 꽃몸살을 심하게 앓는다. 구례의 산수유를 시작으로 광양의 매화를 거쳐 4월엔 벚꽃이 절정이다.

 

어쩌다보니 나라에 벚꽃나무가 많이 심어져 딱히 먼길 나서지 않아도 꽃구경은 어렵지 않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가까운 강가 자전거도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게 벚꽃인데 나부터도 그깟 꽃이 뭐라고 날을 잡아 자전거를 싣고 버스를 타게 되었으니 남도의 벚꽃은 확실히 나름의 멋이 있다 하겠다.

 

전날 짐을 꾸릴 때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약봉투였다. 완벽하지 못한 몸상태로 자전거 타기든 꽃구경이든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또 욕심은 있어서 야간 비상용 랜턴까지 챙기고 앉았으니 태생이 못말리는 자전거 여행의 기술자다.

 

섬진교 아래 하동의 작은 포구 지나 구례로 이어지는 19번 국도

 

반대편 광양과 구례를 잇는 지방도 861번

 

꽃길은 섬진강을 중심으로 좌우 혹은 위아래 19번 국도와 861번 지방도에 걸쳐 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화개로 들어가는 남도대교를 기점으로 강 아래 쪽은 하동쪽 19번 도로가 꽃길이 좋고 구례나 남원가는 상류쪽은 861번 도로가 좋았다.

 

한쪽방향으로만 진행할 경우 오전 일찍 라이딩을 시작하면 오후 두세시면 끝낼 수 있고 크게 오르막이 없는 평이한 코스다. 꽃구경이라는 한정된 목적이라면 이보다 적당한 길이 없다. 도회의 꽃과는 달리 꽃 그 자체가 온전히 주인공으로 대접 받는 곳이 이곳 섬진강 주변이다. 나는 새로 생긴 섬진강 자전거길이 궁금해서 섬진교를 넘어 광양쪽으로 건너갔다.

 

 

 

 

섬진교 다리 아래로 자전거 길이 보였다. 이 길은 전북 임실에서 시작해 곡성 구례 하동을 지나 전남 광양까지 섬진강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무리하면 안되는 몸이라 조금이라도 눈길을 끄는 풍경이 있으면 빼먹지 않고 자전거를 세운 뒤 카메라를 꺼낸다. 쉬어가자는 차원에서다. 유채꽃밭 사이로 나들이 나온 유아원 아이들이 웃고 뛰며 박수를 치고 야단이다.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자전거 여행자들이 심심찮게 인사를 건넨다. 아이들 놀기도 자전거 타기에도 좋은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유속이 느린데다가 깨끗하기도 한 섬진강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저절로 평화로워진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란게 끝이 없어서 건너편 하동쪽을 계속 곁눈질하게 된다. 자전거길따라 남도대교까지는 이렇다 할 벚꽃길이 없어서이다. 괜히 손해 보는 느낌이랄까.

 

 

 

 

자동차 신경쓰지 않고 달릴 수 있다는 점 이외에는 이렇다할 장점이 떠오르지 않는 자전거길이었다. 해서 도로위로 자전거를 올렸다.

 

 

처음 만난 제법 오래된 벚나무의 활짝 열린 꽃잎 사이로 꿀벌들이 바삐 오가는 소리가 웅웅 들렸다.

 

 

 

 

861번 길의 꽃길이 짤막짤막하게 이어지는 반면 반대쪽 강 건너는 확실히 길고 규모가 크다. 물론 이는 섬진강 하류쪽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화개 지나 구례 갈 때면 꽃으로 터널이 길게 이어지는 쪽은 오히려 861번 도로쪽이다. 라이딩 경로를 짜는 데에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강 건너편으로 펼쳐지는 평사리에도 벚꽃이 한창이었다.

 

 

 

 

 

쉬엄쉬엄 달렸는데도 점심 때가 지나지 않아 남도대교가 보였다. 다리를 건너면 잘 알려진 화개장터가 나오고 거기서부터 쌍계사까지 십리벚꽃길이 이어진다. 우리나라 축제장에서 흔히 울려퍼지는 말박자로 편곡된 뽕짝가요가 꽃에 앞서 여행자를 먼저 맞이했다.

 

쿵짝쿵짝 쿵짝쿵짝 뿅뿅뿅.

 

강변 주차장에는 관광버스만도 눈짐작으로 사십대가 넘어 보였다. 남도대교와 만나는 삼거리에는 자동차가 얼키고 설켜 꽉 막혀 있었다. 그 사이를 자전거로 유유히 빠져나가는 호사를 누렸다. 자전거가 자동차를 앞지르다니. 잘 없는 일이어서 재미있었다. 차를 이용한다면 초입부터 승용차를 주차할 만한 장소까지 가는데 족히 한시간은 걸릴 듯하였다. 요령있는 사람들은 남도대교 주변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다리를 넘었다. 그 편이 오히려 시간을 덜 잡아먹겠다 싶었다.

 

 

 

벚꽃엔딩.

 

꽃길은 초입부터 하늘을 예사로 가린 꽃나무 터널로 장관을 이룬다. 다만 워낙 차와 사람이 많아 꽃에만 집중할 여건이 안되므로 애석하였다. 산아래 골짜기를 따라 오래전에 조성된 길이라 폭이 좁고 여유가 없다. 갓길이 있지만 드문 드문 끊기기도 하고 인파가 끊이질 않으니 꽤 신경이 쓰인다.

 

길의 사정이 그래도 애써 정신을 집중시켜 보았다. 외부의 간섭을 최대한 차단하고 봄의 캐롤이라고 회자되는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 후렴부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꽃길을 따라 자전거로 나아갔다. 창작물에는 형식과 내용이 있기 마련이다. 형식과 내용 둘 다 완성도가 높고 아름다우면 이른바 히트를 하게 된다. 둘 중 하나만 수준이 높아도 평타는 친다는 게 평소 생각이다. 이 곡은 형식은 대단하지 않은데 내용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내용이 근래 대량생산공급되는 대중가요와 차이가 있다. 다짜고짜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단도직입 난폭하지 않고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하고 부드럽게 제안하고 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퍼질 이 거리를 같이 걷자는 데야 싫어할 사람이 있겠나 싶다. 이심전심 말 안해도 통하는 뭔일이 벌어질 것 같은 곳이 이 즈음의 이 꽃길이다.

 

해서 화개에는 이런 전설이 구전되고 있다. 꽃 피는 계절에 남녀가 이 길을 끝까지 같이 걸으면 반드시 결혼에 골인 하게 된다는.

 

이미자 선생은 섬마을에 피어나는 사랑을 노래해도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하면서 해당화부터 읊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섬마을 처녀의 총각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을 노래해도 주변의 자연부터 끌어내고 시작한 것이다. 우리 가요의 이 전통이 언제부턴가 끊기면서 노래의 내용이 다 고만고만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외면할 때 좋은 전통을 이어가는 것도 요령이면 요령이다. 남들이 안하는 그러나 좋은 것을 이은 덕분에 획득한 희소성이 버스커에게 부와 명예를 한 번에 안겨준 것이다.

 

나 같은 창작물 소비자야 봄이 되면 산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온다네, 만 듣다가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를 흥얼거리면서 자전거 탈 일이 생겼으니 좋은 일이다.

 

 

 

 

 

차가 없는 틈을 타 꽃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도로 안쪽으로 난입을 하기도 했다. 얼마나 좋았으면 싶어서 애교로 봐줄만한 일이었다.

 

 

 

 

 

 

 

꽃에 취해 달리다 보면 어느덧 쌍계사 입구로 이어지는 구름다리에 다다르게 되고 그 시점에서 십리벚꽃길은 끝이 난다.

 

 

쌍계사에 들를까 하다가 예전에 들렀던 곳이기도 하고 도저히 이 시기에는 자전거로 저 인파를 뚫고 지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사실 더 큰 이유는 절집을 보는 눈이 없는데다가 이전 방문에서 크게 인상적이다 할만한 것이 없어서였다.

 

어차피 꽃구경하러 나선 길이니 유감은 없었다. 점심으로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은 콩나물 국밥 한그릇 뚝딱 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 나왔다. 화개천 건너편으로도 꽃길이 나있지만 수령이나 모양새가 왔던 길에 비해 못미치고, 되돌아 나가는 길 몇몇 군데에 일방통행으로 구분되어 있는 윗쪽 길의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같은 길이라도 올 때와 갈 때가 다르다. 자전거로 다니니 그 이면이 더 확연했다. 올 때 눈에 띄지 않았던 낙화가 비로소 보였다. 초속 삼십센티로 천천히 떨어지던 꽃잎이라서 들어올 땐 꽃만 보이더니, 이것으로 올 해 꽃구경은 끝이라는 생각에 길을 되돌아 나가다 보니 떨어지는 꽃잎에까지 눈길이 갔다.

 

느닷없이 바람이 확 분다.

 

꽃가지에 포위된 탓에 정처를 찾지 못하던 바람의 줄기가 한 지점에서 맴돈다. 덩달아 꽃잎들이 바람에 의지해 한 곳에서 소용돌이 치다가 불쑥 솟아오르더니 출구를 찾아 내 면전으로 한꺼번에 몰려온다.

 

 

꽃비? 꽃눈?

 

아니다. 꽃보라가 휘몰아쳤다.

 

 

한줄기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이 수백 아니 수천.

 

바람에 생명을 다한 꽃잎이 갓길에 수북하였다. 떨어진 꽃잎들은 대체 어디로 가나 추적하니 다들 한곳에 쌓여있었다. 아름답던 옛추억을 뒤로 하고 애써 거들떠 보지 않는 희미한 그곳에 모였다가 흔적도 미련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 깔끔하면서도 헛헛한 죽음의 일사분란함 앞에 자전거 여행자는 잠시 넋을 잃는다.

 

 

 

꽃의 화려함과 일사분란한 죽음의 낙화가 교차되는 꽃길에는 남녀노소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그깟 꽃이 뭐라고, 하다가도 끝내 다시 찾게 되는 이유가 화려함과 낙화가 동시에 벌어지는 이 사태 때문이리라.

 

 

꽃길은 일년에 딱 한 번이다. 남아 있는 기회 역시 살아가는 동안 유한하다. 해서 이 꽃길은 모두에게 귀하다. 형식에 의지해 뭔가 일을 꾸며보려는 청춘남녀에게도 화려했던 옛일을 회상하고픈 노땅들에게도……./자전거여행의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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