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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자전거 여행기3. 감은사지 지나 울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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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자전거 여행기3. 감은사지 지나 울산으로.


4번 국도, 터널을 통과하는 방법.


여행 나오면 시간은 언제나 일상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이날도 다르지 않았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잠시 앉아 쉴틈도 없이 거닐었는데도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가까웠다. 이렇게 되면 감은사지 쪽으로 방향을 잡지 않을 수 없다. 불국사를 빠져나오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뒤돌아본다. 이전엔 없던 버릇이다.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지 기약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요즘 따라 부쩍 든다.


유치원생들을 인솔하여 나들이 나온 노수녀가 주름진 눈가를 가늘게 하여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수녀는 자신이 믿는 신과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동료들에 의지해 남은 생을 꿋꿋이 살아낼 거였다.


그렇다면 나같이 믿음도 없고 든든한 도반도 없는 천둥벌거숭이가 나이 들어 의지할 것이라곤?


넉살. 


그래 넉살이다. 아프면 병원 가서 아프다, 이상하다 적극적으로 징징거리고 외로우면 외롭다, 보고싶다 심심하다 지인들을 못살게 굴어야 하는 거다. 잘 안되는 일이지만 일단 마음은 그렇게 먹어 본다. 급조한 이 결심을 실천에 옮길 일이 생겼다. 불국사 초입에서 눈도장 찍어두었던 식당에 들어가 호기롭게 넉살을 부려본다.


- 자전거 타고 산 넘어 울산까지 가려합니다. 배고프지 않게 밥 많이 주세요.


손마디 굵은 찬모가 흔쾌히  밥 한공기를 더 주며 한마디 보탠다.


- 왜 그 고생을 하신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불국사 입구 근처엔 아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울산 가는 4번 국도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있다. 기림사나 골굴사 그리고 감은사지 등의 관광지로 이어지는 길이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4번 국도 위에 자전거를 올렸다. 오르막이 잠시 이어지더니 공포의 토함산 터널이 나왔다.



총길이 4345미터의 긴 터널이다. 자전거로 이렇게 긴 터널을 통과해본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공사기간만 10년이 걸렸다고 하니 과연 긴 터널이다. 자전거로 도로를 달릴 때는 몇가지 힘든점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터널을 통과하는 일이다. 터널의 경우 일단 갓길의 폭이 좁아서 노면상태를 늘 살펴야 하고 뒤따라오는 차량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이것만으로도 피곤한 일인데 거기에 덧붙여 차량의 소음이 터널 내부에서 반사하므로 소리로 인한 공포감이 라이더를 더더욱 주눅들게 만든다. 작은 차라도 터널내에서 발생시키는 소음은 초음속 전투기의 대기를 가르는 소리와 흡사하다. 그러니 대형트럭은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터널을 안전하게 통과하는 요령과 주의할 점을 든다면.


먼저 자전거의 존재와 위치를 알릴 수 있도록 후미등을 켜야 한다.


다음은 터널을 빨리 통과하려고 속도를 내서는 안된다. 터널 통과가 처음인 자전거여행자의 경우 소리의 공포로부터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 페달을 강하게 밟게 되기 십상인데 그러다보면 오히려 자전거의 균형을 잃기 쉽다. 터널의 갓길은 대부분 반사판이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경계선을 기준으로 갓길과 본도로 사이엔 턱이 있는 경우도 역시 많다. 


이 지점에서 속도를 높이려고 자전거에 힘을 가하는 페달링을 하다보면 지형지물에 타이어가 부딪히거나 턱을 타고 흐르면서 균형을 잃기 쉽다. 이 때 앞이나 뒤에서 자동차가 지나가게 되면 공포감이 배가된다. 특히 지어진 지 오래된 터널일수록 갓길이 좁다. 당황하여 급한 마음에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몸을 도로 쪽으로 노출하거나 자전거의 균형이 흔들리게 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해서 속도를 내기보다는 기어비를 평소 평지를 가는 수준으로 가볍게 하고 시속 12킬로미터 내외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최대한 핸들이 좌우로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며 뒤에서 봤을 때 몸이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자세로 주행하는데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자전거가 좌우로 왔다갔다 하지 않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터널 라이딩이 가능하다. 


자전거의 조작이 안정적이면 뒤에서 어떤 소리가 나도 쫄지 않게 된다.



길이도 길었고 오래간만에 통과한 터널이어서 그랬는지 경험이 없지 않은데도 꽤 공포스러웠다. 다른 차들은 알아서 잘들 지나갔는데, 승용차 한 대만이 경적을 세고 길게 울리며 항의의 표시를 보였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자전거가 못다니는 도로인가 싶어서 터널을 통과한 다음에 이정표를 하나하나 살펴봐도 자동차 전용도로라는 안내가 없었다.


터널치고는 비교적 갓길이 넓은 편이었다. 아마도 근래에 완공된 길이어서 그런 듯하였다. 이후에도 감은사지 지나 울산 가는 길에서 터널을 하나 더 통과하게 되는데 그 터널은 갓길이 좁아 긴장하여야 했다.


도로 라이딩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타이어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짝짝짝, 하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면 자전거를 안전한 곳에 최대한 빨리 정차시키고 타이어의 표면을 살펴보아야 한다. 공업지역과 가까운 국도변엔 날카로운 쇳조각들이 많다. 쇳조각이 타이어에 박혀 내는 소리이다.


쇳조각을 제거하지 않으면 계속 파고들어 펑크를 발생시키니 뽑아주어야 한다. 자전거여행에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어쨌거나 바짝 긴장한 상태에서 터널을 벗어나니 맑은 하늘 깨끗한 공기, 터널내부와는 딴판인 국도 4호선의 가을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신나게 내려가면서 내 입에선 아…… 하는 소리가 길게 나왔다. 


길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내리막이었다. 





페달링이 필요 없는 내리막의 연속이어서 안장에서 엉덩이를 들었다. 동시에 페달을 수평으로 하여 일어서서 자전거에 몸을 맡겼다. 내 몸이 공중에 살짝 떠서 마치 비행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 속도로 길의 저 끝마디까지 같은 자세로 날아가다보면 종내엔 자전거와 함께 몸이 공중으로 떠 가을 하늘 위로 팽개쳐질 듯하였다.


테이크 오프. 활공.


자전거로 날아보는 재미, 이맛에 중독되어 자전거여행을 나선다.






감은사지와 전설 그리고.


4번에서 14번 국도로 갈아타면 감은사지가 지척이다.



길을 달리다가 들판 너머로 시선을 돌리니 감은사지 3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추수가 끝난 들판을 가로질러 허겁지겁 절터로 향했다.




멀리서 보니 감은사지 3층석탑 주변으로 쇠기둥이 설치되어 있고 사람들이 붙어있었다. 감은사지는 처음이기도 했고 책이나 답사를 다니는 분들의 칭찬이 자자한 곳이라 기대를 많이 하였다. 




허나 공사중이어서 그랬는지 보는 눈이 없어서인지 내가 느낀 감상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 탑 여기저기는 남녀의 이름과 가운데 하트 표시 낙서로 훼손되어 있었다. 웃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렸다.



감은사는 동해의 용이 되어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던 문무왕의 전설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해서 금당 자리의 하단은 아래와 같이 용이 출입할 수 있도록 특이한 공간이 있다고 전한다.




감은사 앞으론 대종천(大鐘川)이 흐른다. 글자 그대로 큰종천이다. 천은 바로 동해바다로 이어진다. 천의 끝에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문무대왕수중릉이 있다. 대종천에는 여러 가지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옛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의 요지는 이렇다. 고려 때 침략하여 황룡사를 불태운 원의 군사들이 황룡사의 종을 노략질해 가다가 폭풍우를 만나 빠트리게 된 곳이 대종천이라는 것이다. 삼국유사 기록에 따르면 이 종의 규모가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에 비해 네배나 컸다고 하니 그 크기가 대단하다 하겠다.


떠도는 이야기에는 살이 붙게 마련. 지금도 인근 주민들은 비바람이 부는 날이면 대종천에서 종이 울리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심지어 종이 황금으로 만들어진 탓에 애써 노략질해 가려 한 것이고 지금도 천 어딘가 혹은 바다 아래 어디쯤에 가라앉아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일삼아 알아보니 실제 대종을 발굴하기 위해 관에서 조사가 몇차례 이뤄졌단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황금대종이라니. 만파식적도 생각난다.


이런 이야기를 그저 허튼소리라고 치부하지 말고 사람들로 하여금 만파식적을 꿈꾸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파식적을 꿈꾸어야 그것을 대신할 현실의 기계나 시스템을 만들게 된다고 믿는다. 전설, 이야기, 꿈이 없는 백성들이 새로운 것을 이뤄낼 수는 없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다.




감은사지에서 오 분여 달리니 대종천이 끝나는 지점에서 동해가 넓게 펼쳐졌다. 눈앞에 문무대왕수중릉이 보였다. 어릴 적 보았던 동해는 가슴이 터질듯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었더랬는데 나이가 들어 눈에 들어오는 바다는 어쩐지 을씨년스러웠다.


계절탓이려나.



뭍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 아슬아슬한 그곳엔 복을 비는 이들이 자리를 펴고 있었다. 용의 영험은 21세기에도 유효한 것이어서 특별한 형식을 갖춘 울긋불긋한 무녀들도 있었고 급조된 제상을 놓고 그저 엎드려 절하고 손을 모으는 사람들도 적잖았다.


운명에 대비하는 그들만의 방식인데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뭐라 할 수는 없는 문제다. 나는 이렇게 용에게 절을 하는 대신 당분간 [넉살]에 의지해 살아갈 거였다. 내 넉살에 다른 사람들이 부디 불편하지 않기를 다만 바랄 뿐.




읍천항 주상절리 지나 울산으로.


바다 구경을 끝내고 울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큰 도시이니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엔 안성맞춤이어서 그랬다. 봉길 사거리에서 국도 31번을 따라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나갔다.  길이 바닷가와 인접해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 길은 바다와 떨어져 있는 구간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읍천항에 들르면 많이 알려진 주상절리를 구경할 수 있다.



제주의 주상절리와는 달리 부챗살 모양으로 넓게 펼쳐진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주상절리 바로 위 길가에 전망대가 있어서 둘러보기에 편하게 되어 있다. 오른쪽으로 멀지 않은 거리에 울산이 보였다. 울산 정자동인데 말이 울산이지 버스를 타려면 저기서 한참을 더 가야했다.




정자항을 지나 터미널 쪽으로 가기 위해 산 하나를 넘었다. 시내로 바로 들어가는 길은 자동차 전용도로여서 자전거 진입이 불가능하다. 우회하는 길이 있는데 이정표를 잘 살펴보고 길을 정하여야 했다. 시간을 단축하고자 바닷가 길따라 방어진 쪽으로 가지 않고 무룡산을 넘었다.


자동차들은 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따라 나 있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많이 이용하는 터라 산길은 한적하였다. 드문드문 산악자전거 타고 올라오는 라이더들이 눈에 띄었다. 울산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운동하는 코스로 유명한 듯하였다. 문제는 제법 가파르고 길이 꼬불꼬불 긴편이라 힘들었다. 평소 같으면 크게 부담이 안되었을 텐데 여행의 막판이고 처음 와본 길이라 페이스 조절에 실패했다.



산을 넘으니 가파른 내리막의 연속이었다. 그 끝자락에 당도하니 도회의 냄새, 중화학의 냄새가 물씬 났다. 총생산 규모로 따지자면 울산시 한 곳이 웬만한 도의 그것이 못따라갈 정도로 큰 우리나라 대표 공업도시다.


조용하던 경주와 국도를 달리다가 울산에 접어들자 마음이 불쑥 편안해진다. 


넉살을 부릴 대상, 징징거릴 병원, 심심하니 놀아달라고 연락할 사람들이 울산과 비슷한 분위기의 도회에 다 모여 있으니 그렇게 느낄밖에.



도회는 건물이 높고 크고 소음이 심하며 신호를 엄수해야 하고.




신호가 바뀌면 총알같이 튀어나가야 제몫을 챙길 수 있다. 그런 곳이 도회, 도시이다. 이런 팽팽한 긴장감도 익숙한 것이여서 되려 편안함을 느끼는 근원으로 작동했다.


터미널이 있는 삼산동을 물어물어 찾아가면서 중간에 태화강을 넘었다. 학성교 다리위에서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한 번은 벗어나고 싶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고야 말 것 같은 거대도시의 전형, 황혼에 젖은 스카이라인이 눈에 익숙해서 또 다시 편안함을 느낀다.





해가 빌딩숲을 지나 산을 넘어가려 하였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 할 시간이었다. 다음 주엔 치과 예약이 되어 있으니 집으로 가야 했다. 몸을 보수하는 일이 어느 정도 잘 마무리 되면 다시 자전거에 오를 것이다. 부디, 하는 삼가는 마음으로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자전거여행의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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