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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자전거 여행기2. 불국사의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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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자전거 여행기2. 불국사의 종소리.


불국사 가는길.


차로 다닌다면 큰 고민거리가 아니지만, 자전거가 옆에 있다보니 다음날 일정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경주 시내 유적 중심으로 다닌다면 하루 정도면 둘러볼 수 있다. 여기서 양동마을이나 감은사지까지 여행지에 추가되면 자전거 여행의 경우 둘중에 한쪽만 선택해야 한다. 양동마을은 포항방면이고 감은사지는 울산과 가까운 곳이라 두곳 다 둘러보기는 거리가 너무 멀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양동마을은 한 번도 경험이 없었던 터라 호기심이 일었지만, 결국 불국사에서 시간을 보고 결정하기로 하였다.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호기심이 아무리 커도 경주에 와서 불국사의 가을단풍을 보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숙소의 주인장과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자전거에 올랐다.



경주가 오랜간만인 사람이라면 아침 일찍 대릉원을 산책해보는 것도 좋다. 관람시간은 일이십분이면 충분하다. 추억을 떠올리기에 괜찮은 유적지다. 학창시절 여기를 들르지 않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대릉원 내 고분군



천마도


첫날 잠시 달렸던 불국사 가는 길인 산업로를 되짚어 가다보면 월성지구에서 십여 분 거리에 국립 경주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꼭 들러볼 것을 권한다. 일정에 쫒기며 여럿이 주마간산격으로 보던 것과 느긋하게 꼼꼼히 살펴보는 것과는 차이가 많았다.


특히 황남대총에서 쏟아져 나온 유물은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일라이트는 금관인데 예전 기억속의 금관도 이렇게 화려했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딱히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출토유물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다보면 한두시간은 금방이다.


볼거리가 많기도 하거니와 시선 자체가 어릴적에 비해 달라진 면이 많아 관람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다. 


성덕대왕 신종, 에밀레종




황남대총 유물




고분에서 출토된 유리잔이다. 그 예전에 다른 문명권과 접촉이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는 유물이라 특히 눈길이 갔다. 




고분을 조사발굴할 당시의 사진이라든가 모형으로 복원되어 있는 황룡사탑 등도 볼만하다. 전시관이 크게 네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월지관까지 이르면 다리가 아플 정도로 볼거리가 많다. 그러다보니 나중엔 건성건성 흘러가기 쉬운 곳이 박물관이다.


자녀와 함께라면 사전학습은 좀 해두는 것이 좋다. 아이들이 아빠에게 질문공세를 날리느라 숨가쁜 곳이기도 하다.




괘릉(원성왕릉)


월성지구에서 불국사까지는 자전거로 설렁설렁 달려도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한 거리다. 혹시 나중에 경주와 불국사를 들를 여행자라면 불국사에 바로 들어가지 말고 약간 더 가서 원성왕릉부터 찾아보기를 권한다.



괘릉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한데 표지판이나 기타 안내문에는 원성왕릉으로 표기되어 있기도 한 유적이다. 불국사 진입로를 지나 약 십여 분 정도만 더 가면 원성왕릉 가는 오솔길이 보인다.


요즘 자전거로 여기저기 다니다보면 제일 안된 일이 소나무가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일이다. 소나무 에이즈라고 불리는 재선충병이 숲의 경관을 망치고 있다. 이 병이 알려진 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아직 이 모양인 걸 보면 달리 대책이 없는 것 같다. 시들시들 죽어가는 소나무가 참 봐주기 딱한 꼬락서니다. 


박멸되지 않고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으니 이러다간 우리 유적지에서 소나무가 모조리 사라질 판이다. 



오솔길을 잠시 달리면 왕릉이 나타난다. 어제 봤던 헌강왕릉에 비해 규모도 크고 주변이 넓직해서 여행자를 잠시 쉬어가게 하는 맛이 있는 왕릉이다. 차분하고 조용한 시골마을이어서 더욱 그랬다.


이 왕릉에서 무엇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왕릉 앞의 무인석상이다. 역사스페셜에서도 다루었던 내용이라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석상에 가까이 다가가면 서역인으로밖에 볼 수 없는 복식과 얼굴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터번과 쌍거풀 진 큰 눈 그리고 큰 코에 구레나룻까지. 철퇴를 비켜들고 엄포를 놓듯 주먹을 쥐고 있는 팔뚝엔 근육이 울퉁불퉁이다. 돌을 떡주무르듯 하였던 신라 석공의 사실적인 묘사가 여행자의 마음을 과거 오래 전 그날로 시간여행을 보내어 준다.


좀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왕의 호위를 용병에게 맡긴 것인데, 아무래도 신라가 그 때 당시 좀 살만한 곳이었나 보다. 조금이라도 득보는 일이 있었으니 그 먼곳에서 여기까지 흘러왔겠지.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며 자동차 소음이 심한 산업로를 달려오느라 피곤해진 귀를 쉬게 했다. 


무인석상




그 옆에 석상이 더 있는데 자세히 보면 소매 안쪽으로 긴 칼을 숨기고 있는 모습이다. 죽어서도 영원히 신하들의 보호를 받고 싶었던 희망이 무덤 양식에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마지막 호위는 사자들이 맡고 있다.


히틀러도 마지막엔 경호견이 지켰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사람에 대한 불신은 역사나 시대를 가리지 않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원성왕릉 십이지신상



두번째 찾은 괘릉이므로 일삼아 들판 안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 괘릉 초등학교를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아담한 학교인데 멀리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학교다.




봄엔 정문 앞 벚꽃나무 아래에서 점심을 먹었더랬다.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봄에 꽃구경하기도 좋은 곳이다.


봄날의 괘릉초등학교 앞



불국사의 종소리.


다시 왔던 길을 돌아나가 불국사로 향했다.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불국사 매표소까지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한동안 올라야 한다. 좌우로 유스호스텔이며 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다. 다들 기억이 나시는지.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는 이 근처 유스호스텔에서 일박을 했는데 마침 맞은편 숙소에는 경기도 모 지역의 여고에서 수학여행을 왔더랬다.


요즘 같지 않고 남녀의 유별을 몹시 따지던 때라 괜히 여자에 [여]자만 들어도 광분을 하던 시절이었다. 숙소 난간에 모여들어 돼지떼처럼 여학생들 숙소 쪽으로 소리를 꽥꽥 지르고 앉았더니 학생주임 선생님이 몽둥이를 들고 방마다 난입하여 혼구녕을 내는데.


우리는 좀 잘 나간다는 친구의 라이터를 빌려 허공에 글자를 쓰는 형식으로 맞은편 여학생들과의 통신 회합을 도모하였었다. 요즘 같이 핸드폰이 있었어야지.


저녁 먹고 선생님들의 감독이 느슨해진 틈을 타 진짜 잘나가는 친구들은 결국 유스호스텔의 담을 넘어서 여학생들과의 접선을 시도했는데. 저런! 혈기방장한 고등학생들이 떼로 월담을 시도하였던 터라 호스텔의 기왓담장이 퍽석, 무너지고 말았으니. 선생님은 호스텔 관리자에게 고개를 숙이기 바빴고 수학여행 온 상황에서 체벌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 날 선생님들의 인상이 볼만하였다.


전체 집합!!!


죽었구나 각오를 하고 호스텔 앞마당에 뛰어 나가니.



호스텔 쪽에서 제공한 스피커와 엠프 조명 아래 다들 집합을 시켜놓고는 선생님들은 니들 재주껏 한 번 놀아보라고 하는 거였다. 노상 공부만 하는 것 같더니 언제 저런 재주를 익혔나 싶게 재간있는 친구들은 기타도 치고 원맨쇼도 펼치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알콜도 맛보았다.


고교시절 선생님들이 우리가 어떤 깽판을 쳐도 눈감아 주던 때는 이렇게 수학여행 때와 삼학년 일학기 봄소풍 때 딱 두 번뿐이었다. 일곱시에 학교 가면 열시 넘어 집에 오고 일학년 때부터 주초고사 주중고사 월말고사 기말고사 도평가고사를 비롯 시험에 시험만 치는 것이 고등학교 시절 기억의 거의 전부였던 시절이었으니 이런 날 잠깐의 깽판이라도 없었더라면 단체로 돌아버렸을 듯.


밤이 깊어가니 마냥 놀아날 수는 없었다. 막판이 되자 놀다 지친 우리는 다같이 악을 쓰며 떼창을 불렀으니 노래 제목은 현인 선생의 [신라의 달밤]이었다.


촌스럽기도 해라. 


우리는 단체로 아래턱을 덜덜 떨며 현인 선생을 흉내내어, 불국사의 종소리가 들리어오니 지나가는 나그네는 걸음을 멈추라고 악을 박박 쓰는 것으로 수학여행 경주의 밤을 마무리 지었더랬다.



추억을 떠올리며 불국사에 들어서니 아, 단풍 참 곱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요즘은 어딜 가나 비슷하겠지만 불국사 역시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았다. 



기독교 관련 외국 성직자들도 눈에 띄었다. 이 날만 특히 그랬는지 알 수는 없으나 봄에 왔을 때 비해서는 확실히 관람객들이 더 많았다.


불국사의 경우 꽃피는 시절보다는 단풍이 붉게 물든 가을이 내 눈에는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것 같았다.




버선코 모양으로 돌을 가공한 계단을 보고 있노라니 돌을 떡주무르듯 하였던 신라인의 솜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석가탑은 아직 공사중이었다. 조만간 보수를 마치고 일반에 공개한다고 한다. 확실히 다보탑 석가탑 둘이 나란히 있을 때보다 하나가 가려지니 불국사의 분위기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다보탑 앞은 만원이었다. 줄을 서서 사진을 찍어야 할 정도로 대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자하문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돌기둥 하나 하나 생긴 모양이 제각각이다. 







건물과 건물이 이어지는 틈새마다 가을색이 숨어 있었다.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불쑥 넘지 말고 고개를 들어 찬찬히 훑어보면 불국사의 또 다른 풍경과 만날 수 있다.





안양문 앞에 다시 서면.


사찰 내부를 실컷 구경하고 다시 안양문 앞으로 내려왔다. 이쪽에서 찍는 불국사의 모습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한국인이라면 이 앞에서 찍은 사진 한 장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대학입시를 마치고 그 해 겨울 친구와 자전거여행을 나섰을 때에도 불국사에 들렀었다. 그 땐 한겨울이었고 사람이 정말이지 적었다. 친구와 둘이 그래봐야 일 년 전이었던 수학여행 시절을 떠올리며 거닐고 있는데 약수터 근처에서 또래 여학생들의 맑고 깨끗한 웃음소리가 건조한 대기로 산란하고 있었다. 한겨울에 수학여행? 낯설어서 쳐다보는데 여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달겨들어 차가운 물세례를 날리며 야단이었다.


도회의 학교 한 클래스가 될까 말까한 소규모의 수학여행객들. 그 중 한 여학생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손바닥만한 올림푸스 필름 카메라를 건넸다. 단체사진을 찍어주며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으니 산업체 학교에서 졸업하기 전에 당일치기 수학여행을 온 것이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수학여행마저 한적한 겨울에야 찾을 수 있었던 그들에게서 집안 누님들의 모습을 보았었다. 시대의 많은 누님들이 학교 대신 공장으로 가던 시절이었다. 나는 셔터를 누르는 내 손가락이 그 시공간을 소중히 대하는 여학생들의 극진함을 실수없이 잘 담아내기를 바랐었다.


안양문 앞에 다시 섰다. 그 앞으로 그 때 그 날의 여학생들을 닮은 누님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안양문에서 바라보는 불국사의 풍경을 담으려고 기다리는데 그 해 겨울처럼 또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카메라 대신 핸드폰이다. 최대한 성의를 다해 구도를 잡고 하나 둘 하다가, 나는 둘에 셔터를 누른다. 셋은 형식적으로 소리만 낸다. 통상 이 나이대 누님들은 셋 하는 순간 몸과 표정이 경직되기 마련이다. 해서 셋에 누르지 않고 표정이 자연스러운 지점인 둘에 셔터를 눌러버린다. 인물사진 찍는 오래된 습관이다.


- 한 장 더 찍어드릴께요.


처음 사진은 배경과 함께이고 두번째 찍을 땐 인물 자체에 최대한 접근하여 찍는다. 이렇게 두 장은 찍어줘야 직성이 풀린다. 이 역시 오래된 습관이다. 



한차례 바람이 지나간다.


여럿이 포개어 사십오도로 몸을 돌린 상태인 긴장한 누님들의 얼굴 앞으로 계절을 잘 견뎌온 고운 단풍잎이 중첩되어 분분히 떨어진다.


불국사이고 가을이었다.[자전거여행의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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