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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자전거 여행기1. 경주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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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자전거 여행기1. 경주는 말한다.


참 좋은 시절과 다섯번째 경주.


고속버스가 경주에 가까워지자 나는 작은 요새로 잠입하는 스파이처럼 버스 차창가 좌우로 펼쳐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러보았을 경주. 그런데 나는 꽤 오래 이곳을 잊고 살아왔다. 경주야 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누구는 안그렇겠나. 어쨌든 경주야 잘 있건 말건 서식지 반경 오 킬로미터 주변을 벗어나지 않으며 그럭저럭 살다가 제작년이었던가? 대충 찍어도 시청률 삼십 프로는 보장된다는 한국방송공사 주말드라마를 통해 경주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재발견이라는 말도 좀 과장된 것이고, 어? 경주가 저렇게 예쁜 곳이었나? 하는 마음이었다. 드라마의 제목은 [참 좋은 시절]이었다. 드라마는 이땅에 정의로운 검사가 있다는 설정부터가 좀 비현실적이었고, 잘생긴 김희선의 경주 사투리 연기가 어색한데다가 스토리 또한 막장끼 다분하여서 시청자의 시선을 끌기에 좀 부족한 작품이었다.


이 드라마의 미덕을 억지로 꼽자면 방송 시작과 동시에 주제곡이 흘러나오고 그에 이어 화면을 가득채우는 스틸컷에 있었다. 드라마 내용은 제쳐두고 처음과 끝에 올라오는 경주의 아름다운 사진에 끌려 주말극을 종영 때까지 본 것은 이 드라마가 유일하다. 성격이야 어떻건 예쁘면 다 용서된다는 식이다.


꽃잎이 흩날리는 고분 사이로 유치원생들이 줄줄이 소풍 나온 한장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화면만으로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저기, 저 경주에 가야지!


그렇게 해서 들렀던 그 해 봄의 좋았던 기억이 이 가을에 다시 경주행 버스에 자전거를 싣게 하였다.


대릉원의 단풍


금령총


드라마 덕분에 경주를 찾았던 그 해 봄엔 원인을 알 수 없는 오한과 어지럼증, 온몸 구석구석으로 파고드는 근육통으로 일주일 넘게 앓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신뢰해온 내 몸의 타고난 면역력에 의지하여 병원행을 마다하고 통증을 견디고 또 견뎠다. 가장 큰 고역은 오른쪽으로 몸을 누이면 십여분 있다가 오른쪽 몸 전체로 근육통이 퍼지고 반대로 누우면 다시 십여분 있다가 통증이 번져오니 수시로 누운 자세를 고치느라 잠을 이룰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다 큰 어른의 입에서 쌍욕이 나오고 정말 못견디겠구나 백기를 들려는 순간 언제 아팠냐는듯 몸에 차도가 있었다.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으면서도 경주의 봄꽃이 모두 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어지럼증과 근육통에 차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자전거에 올라서 경주로 향했다. 손으로 꼽아보니 생에 다섯번째 찾은 경주였다.



많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습득한 여행요령이 있다. 여행지에 가기 전에 여행지에 대해 사전학습을 많이 해두거나 그것이 번거로우면 같은 여행지를 여러 차례 가보라는 것이다.


이 해 봄에는 사전학습을 통해 꼼꼼히 둘러보는 데서 얻은 즐거움보다는 빡빡머리 학창시절 기억 속의 그 장소들을 다시 찾아보는 것에서 느끼는 감격이 실로 대단하였다. 신입사원 연수여행이 있었던 곳도 이곳이었으니, 내 생에 참 좋은 시절의 한 때가 경주의 여기저기에도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봄바람은 불어 대고 꽃잎은 전방위로 흩어지는데 나는 꽃잎의 정처를 따라 반쯤 혼이 나간 사람처럼 자전거로 어슬렁거렸더랬다. 한나절을 경주시내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경주의 봄이 내게 전해준 감격은 지금도 눈앞에 삼삼하다. 


앓은 후라 더 그랬을지도.


월성지구 가는길


반월성


노동리와 노서리의 고분군



하지감자.


그 해 봄 경주여행을 끝내고 지인과 만나 이런 말을 던졌더랬다.


- 평균수명이 아무리 늘어났다 하더라도 이제 몸은 명백히 나빠질 일만 남은 거 같네요. 이제 물리적으로 몸 상태가 좋아질리는 없고 오늘보다는 내일의 상태가 안좋은 쪽으로 퇴행할 건데 걱정이 앞서네요.


했더니 지인은 좀 먹먹한 음성으로 답했다.


- 어, 그렇네요. 그런데 막상 그런 생각이 드니까 서글퍼집니다.


말이 씨가 되었을까? 올 해 하지에 나는 자전거 타고 작은 숲에 들어가 마트에서 산 쪄놓은 하지감자를 뜯어먹으며 근심에 싸여 있었다. 올초부터 하지감자가 나오는 시점까지 병원 신세를 진 횟수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병원에 간 횟수보다 더 많았던 것이다.


몸은 예상한 바와 같이 퇴행에 퇴행을 거듭해 위장은 소화능력을 급격히 상실해서 조금만 식사시간을 어겨도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가스를 만들어냈고 오른쪽 눈은 한대 얻어맞은 것마냥 노상 안압에 시달려야 했으며 모르고 살았던 치아건강은 잇몸의 상태가 의사가 혀를 찰 정도로 나빠진 상태였으니 감자나 뜯어먹으며 한숨이나 내쉴밖에.


문제 하나가 해결 안되면 다음으로 넘어가질 못하는 성격탓에 여행은 무슨 여행, 하며 병원예약 날짜가 표시된 달력만 쳐다보고 살다가 11월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하지가 지나면 시나브로 해는 짧아지기 마련이고 그러다가 한해는 다 가고마는 것인데 이러다가는 다시 경주 한 번 못보고 골로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이런 젠장. 이럴 수는 없지. 내일 일어나면 무조건 경주행이다! 라고는 했지만, 눈을 뜨고도 늑장에 늑장을 부리다가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된장찌개 한그릇 퍼먹고 나니 또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였다.


미더덕이 입안에서 터졌다. 그 바람에 홀라당 까진 입천정을 혀로 더듬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대로 독거노인이 될 수는 없어! 나섰으니 그냥 가는 거야.



버스가 차부에 정차하자 그새 변화가 있었다. 낡고 좁았던 터미널이 새단장을 마치고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버스 트렁크에서 자전거를 꺼내 대릉원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경주는 자전거로 다니는 여행객들이 제법 있다. 시내중심의 유적은 차로 다니기에는 번거롭고 걸어서 다니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규모라서 그렇다. 그래서 여기저기 자전거 대여점이 많고 월성지구 내부로도 자전거의 출입을 제한하지 않으므로 시간에 쫒기지 않는 여행자라면 이용해보길 바란다.


봄에도 좋았지만 가을은 가을대로 아름다운 곳이 경주였다.


대릉원 돌담길



월성지구 첨성대



아침에 어정거리느라 경주에 늦게 도착하여서 우선 계획했던 통일전 앞 은행나무 가로수부터 구경하기로 하였다. 자전거의 방향을 불국사쪽으로 잡았다. 봄에 불국사 가다가 주욱 늘어선 은행나무를 본적이 있다. 가을엔 볼만하겠다, 생각하며 지나친 곳이었으므로 경주를 생각하면 은행나무길부터 떠올랐다. 월성지구의 첨성대를 오른쪽에 두고 경주국립박물관을 찾아가면 이정표가 잘되어 있으므로 길찾기는 어렵지 않다.


경주에서 울산 가는 산업로를 타야 한다. 스쳐도 최소한 중상을 끼치는 대형트럭들이 쌩쌩 달리는 길이므로 차도 위로는 자전거를 올리지 않는 것이 좋다. 대학입시 치르고 친구와 둘이서 자전거여행을 나섰을 때도 이 길을 지난 적이 있다. 그 때는 오른쪽 자전거도로가 부실할 때였다.


대형 탱크로리와 강판을 실은 특장차들에게 위협운전과 경적공격 심지어 침세례도 받았더랬다. 그땐 무슨 깡으로 저 길 따라 울산까지 갔었는지. 새삼 옛기억이 되살아났다.




통일전 은행나무 가로수.


넉넉잡고 터미널에서 삼십분 정도 달리면 통일전 가는 직선도로에 접근할 수 있다. 가을걷이를 끝낸 너른 들 너머로 한줄로 늘어선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허허, 그러나 이게 무슨 꼴이라지.



전기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한쪽 은행나무들의 헤어스타일이 숏커트이다. 은행나무로서의 품격은 온데간데 없고 꼴사납게 플라타너스를 닮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이 괜히 처량해 보였다. 


카메라 셔터 소리에 반응하여 까마귀떼는 일제히 날아올랐고, 까악까악 하는 소리가 흡사 은행나무의 몰골을 비웃는 듯하였다.




그에 비해 오른쪽 은행나무들은 나름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었다. 좌우 비대칭의 가로수는 어쩐지 우스꽝스러운데다가 수령도 짧은 듯하여 명성에 비해 크게 볼만하지는 않았다.


웃자고 괜히 씨부려 본다. 아무리 전기공급이라는 대의를 위해서지만 은행나무 개별의 삶과 개성은 말살되어도 된단 말입니까! 이 연사 강력히 강력히……


지나가던 까마귀가 비웃는다. 줄을 잘 서든가……  나만 아니면 돼.




그나마 통일전 입구에서 반대로 바라보는 모습은 봐줄만 하였다. 아마도 이쪽에서 찍은 사진이 주로 유통되는 것으로 보인다. 경주는 벚꽃나무 가로수의 비중이 높다 보니 이렇게 은행나무가 길게 이어진 곳은 드물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포토존으로 명성이 있는 지점이라 카메라를 든 사람끼리 앞서거니 뒷서거니 서로 좋은 위치를 선점하려는 신경전이 벌어지는 곳이다.





카메라를 거두고 통일전 주차장으로 접근하니 수학여행 온 학생들의 버스가 길게 늘어서 있다. 인솔교사의 앉아! 앉아! 소리가 주차장 곳곳에서 울려퍼진다. 저 나이 때 수학여행에서는 버스에서 내려 앉아! 일어서! 인원체크 받는 게 고역이었다. 인생의 하지를 넘어선 지금이지만 앉아 일어서를 반복해야 하는 저때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물 한잔 들이켜고 시간을 확인하니 조금 서두르면 불국사까지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전거의 속도를 높여 불국사로 냅다 달릴까 하다가, 그냥 표지판의 지시를 따르기로 하였다. 


천천히.


통일전 앞에는 다시 시내 방향으로 나가는 길이 나 있다. 불국사는 내일로 미루고 시내 중심의 유적지 쪽으로 자전거의 방향을 틀었다. 길 따라 일이 분 달리니 길 왼편에 [헌강왕릉]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길지는 않지만 자전거로 산길을 올랐다. 여행용 자전거를 미니벨로에서 산악자전거로 바꾼 덕을 톡톡히 보았다.




왕릉치고는 규모가 소박했다. 선조들의 거대한 고분을 일상에서 보고 자란 왕의 무덤이 후대로 갈수록 작아진 것에 호기심이 일었다. 왕실재정이 어려웠나?


혹시 황룡사를 비롯한 거대한 종교시설에 재정지출이 많아서 그랬을까?


자신의 나라가 지상의 복된 불국토가 되기를, 스스로는 부처와 같이 되길 바랐던 신라의 왕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그렇지, 이 길로 쭈욱 나가서 황룡사지부터 찾아가 봐야지.



왕릉을 빠져나와 시내 유적지로 나가는 길에는 경상북도 산림환경 연구원이 운영하는 수목원이 있다. 잠시 들러볼만한 곳이다. 현지인들이 결혼기념사진 찍고 있는 모습이 정겨웠다.





황룡사지.


박물관 네거리로 돌아나와 오른편으로 황룡사지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봄에는 벚꽃이 눈부셨는데 가을에는 가을대로 어슬렁거리기 좋은 길이다. 동해남부선 두량짜리 짧은 기차가 딸랑딸랑 지나가고 시간을 확인하니 네시인데 벌써 해는 서편으로 제법 떨어지려 하였다.



길 오른쪽 편에 있는 황룡사지로 발길을 옮기려는데 기찻길 아래로 사람들이 여럿 쪼그려 앉아 있었다. 다가가 살펴보니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반월성 맞은편은 신라의 옛 왕경터라고 한다. 논밭이던 곳의 흙을 조금만 거둬 들여도 이렇게 온데가 다 유적이다. 




경주는 시내 월성지구 일대가 다 이렇다. 대릉원 지척의 쪽샘고분 발굴 현장도 아래와 같이 발굴조사를 끝낸 뒤 현장을 전시관으로 만들어 개방하고 있다. 관에서 땅을 매입해 발굴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유적이니 돈의 문제가 아니라면 파내려 가는 족족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 경주다.



황룡사지까지 보고 나니 그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불상을 올려놓았다고 하는 기단의 규모가 대단하였다. 봄에 보았을 때도 그렇게 느꼈는데 빛의 온도가 낮은 가을에 다시 찾으니 내 신세와 비교되어서 괜히 울적하였다. 폐사지인데도 그 규모가 웅장하게 느껴지는데 원래 모습인 칠십미터 높이의 탑이 있었더라면 그 위엄을 어찌 사람이 감당하였을지.



절은 유목하던 족속의 후예인 원의 침략으로 불태워지고 말았다. 말을 타고 초원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다니며 목축하는 일이 유목하는 자들의 삶이었으므로 그들의 눈엔 황룡사의 위엄에 도전해 약탈하고 방화하는 행위가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 때 나는 유목하기를 소원한 적이 있다.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당대의 여러 사람들을 마음으로 동경하였던 적도 많다.


허나 유목하는 자들에 의해 대부분 불 타버린 폐사지를 보고 있노라니 유목하는 자들의 방탕이 어떤 것을 후대에 유산으로 남길 수 있을지 회의가 든다. 


골로 가기 전에 유목 한 번 제대로 해보자 마음먹었던 지가 엊그제인데 하지감자 뜯어먹으며 풀숲에서 근심하고 나더니 정주하는 삶으로 귀순이라도 하는 셈?


아무려나 돌을 기반으로 하던 신라의 유적은 천년을 넘어 오늘까지 내 눈앞에 장엄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만약 황룡사의 탑이 원형 그대로 복원된다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황룡사지를 뒤로 하고 다시 월성지구로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니 처음 눈에 띈 것은 목화밭이었다. 봄엔 유채가 한가득이더니 지자체에서 계절에 따라 꽃이 피는 식물을 번갈아 심는 것으로 보였다.


어휴. 거참 여기 아니었으면 목화꽃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었을지. 멀리서 보이는 외양은 추접한데 가까이 다가가면 하얀 솜뭉치가 눈길을 잡아끈다. 문익점 하면 떠오르는 그 목화다.


필자도 나일론 세대라 아주 어릴 적 할머니 댁 근처에서 얼핏 구경한 작은 목화밭 말고는 이렇게 대량으로 재배되는 곳은 경주 반월성 아래가 처음이다.




동경 밝은 달밤에.


목화밭과 첨성대가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황룡사지 근처 처음 찾아간 게스트 하우스에는 주인은 없고 집 지키는 개가 왕왕 짖어대었다. 개는 딱 두 부류로 나뉜다. 나를 보고 미친듯이 짖어대는 개와 나를 보고도 데면데면한 개.


자전거만 보면 죽자사자 달겨드는 개 때문에 약간의 정신적 피폐를 겪고 있는 나로서는 개가 지키고 앉았는 숙소로 애써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해서 봄날 묵었던 그곳에 염치불구 고개를 드밀었다. 앞에 첨성대가 지척에 있어서 경주의 밤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숙소인데, 안타깝게도 한사람 숙박은 받지 않는 것으로 운영방침이 바뀌었다.  다른 숙소를 찾으러 가는 길에 혹시나 해서 얼굴을 들이미니 용케 알아보고 주인장의 어머니께서 구석방에 하루 묵었다 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어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여러 차례 하고는 짐도 풀지 않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낮의 경주도 아름답지만.



해가 떨어질 때의 경주도 아름답고.




해가 산너머로 떨어진 뒤의 모습, 그리고 어두워지면서 산과 산 아래 고분들이 겹쳐져 하나로 어울어지는 광경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면 처용을 흉내내어 동경 밝은 달밤에 밤 늦도록 자전거 타고 어슬렁거려 보는 거다. 그러다가 숙소의 어머니께 추천 받은 음식점에 들러서 이렇게 회밥을 따악.


놋그릇 만들어 팔던 가게였다던 분식집에서 저녁을 들었다. 봄날에 이어 두번째다. 다시 들른 이때쯤이면 대단한 맛집으로 이름이 나서 손님들로 바글바글 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조용하였다. 이전엔 비빔국수를 먹었으니 이번엔 밥을 먹어보자고 시킨 것이 회밥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위장기능에 탈이 나 정제된 면음식은 소화에 부담이 되니 밥을 시켰다.


아, 그러나 나는 생선회의 맛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하나. 주위를 살펴도 도무지 비슷한 걸 먹는 사람이 없다. 젓가락으로 그릇의 내용물을 휘적휘적 섞어 밥 한젓가락 회 한젓가락 주섬주섬 먹고 앉았으니 건너편 테이블의 경주 할아버지가 저 물건 뭐하고 앉었니껴, 하는 투로 꼬라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뜰히 챙겨먹고 일어섰다. 봄에 못봤던 노서동 고분군의 야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동궁과 월지는 워낙 경관조명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입구에서부터 수학여행객들로 왁자지껄하였다. 지난번 여행에서 보았던 터라 그냥 지나치고 대릉원쪽 노서동 고분군으로 자전거를 저어 나갔다. 같은 경주인데 월지쪽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인적 없는 11월 늦가을의 고분군 사이를 홀로 거닐었다. 삼각대 없이 숨을 참아가며 누르는 셔터질 또한 그 재미가 오진 것이었다.






고분 사이를 배회하다가 입구쪽으로 나가니 공원벤치에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이 땡땡이(?)를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 녀석이.


- 니는 친구가 중요하나? 돈이 중요하나?


라고 버럭 소리친다.


아놔...


21세기 최첨단을 달리는 소년소녀가 쌍팔년도 멘트를 여직 지껄이다니. 되도 안한 논란에 고민 따윈 하지 말지어다. 뭐가 중요하냐고? 그건 당연히 ㄷ…….




경주의 밤은 말한다.


숙소로 돌아와 씻은 다음 숙소 앞 관광슈퍼 마트에 들렀다. 상호가 거창하면서도 희안하게 정이 가는 가게다. 주인 어르신 얼굴이 딱 부처님을 닮아서 잊혀지지 않는다. 평상에서 먹고 가겠다니 혼자서 술을? 하면서 눈을 똥그랗게 뜨신다. 앞에 첨성대가 딱 바라보이는 것이 가게 자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잡으셨습니다, 하는 인사치레를 하고 평상에 앉았다.


부실해진 잇몸 탓에 안주는 딱 이 정도를 넘어갈 수 없는 형편이다.



한 잔 두 잔 마시고 앉았으니 관광버스에서 한무리의 수학여행 온 초등학교 학생들이 우르르 내린다. 조명을 받은 첨성대를 보더니 와우! 하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세월은 흘러 감탄사마저 우와! 에서 와우! 로 바뀌었는데 천날만날 인위적으로 조작된 화려한 영상에 눈을 들이박고 사는 그들에게도 첨성대는 아름다웠나 보다.



아름다운 경주의 밤을, 첨성대를 오래 바라본다. 문득 감자를 뜯어먹던 하지의 나날이 떠올랐다.


하지감자 수확은 그것이 흉작이든 풍작이든 이미 끝나버렸다. 앞으론 거친 풍파에도 오래 견디어 결국 빛을 발할 돌무더기를 쌓아야 할 때라며 경주의 밤이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자전거여행의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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