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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공작소통신

늦봄의 제주2 산방산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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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와 함께한 늦봄의 제주2 산방산에서 함께 게을러지기.


가파도에서 나오자 다시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슬포에서는 적당한 숙소가 눈에 띄지 않아 지척에 있는 산방산까지 서둘러 페달을 밟았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한참 더 가서 서귀포 남원 근처에서 일박을 할 생각이었으나 추위를 피하고 우선 몸에 달라붙어 있는 축축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송악산 지나 해안도로를 따라 산방산에 가까이 가다보면 게스트하우스 간판을 단 건물이 몇몇 있다. 특히 제주가 처음인 자전거여행자라면 이 근처에서 묵을 확률이 높다. 아니나 다를까 짐을 풀고 씻은 다음 이른 저녁을 먹으려 나오니 아침에 잠시 만났던 자전거여행자 두 사람이 낑낑거리며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서는 쌍방이 제주의 빗줄기 속에서 겪은 무용담을 풀기에 바빴다.


- 천둥에 번개에 비바람 때문에 자전거는 안나가고…….


한 사람은 오십대로 정선에서 출발하여 국토종주 후 제주로, 다른 사람은 삼십대로 서울에서 출발해 역시 국토종주 후 제주로 온 여행자였다. 자전거여행자들은 길에서 만나면 형제이다. 내가 짐을 푼 숙소로 그들을 안내하였다.




두 사람에게 게스트하우스측에서 여는 고기파티를 추천하였다. 두 사람 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여럿이 함께 하는 식사에 경험이 없다고 하여서 그랬다. 한번쯤은 참가해볼만한 자리이다. 나는 외부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자리를 보전하고 누웠다.



술잔이 도는지 왁자한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방안까지 들려왔다. 두시간 정도 지나니 오십대 여행자가 먼저 들어왔다. 


- 대부분 젊은 친구들이라 어려워서인지 눈을 마주치려 안하네요. 허허허. 그래도 음식은 먹을만 했네요. 내가 좀 싸왔는데 같이 한 잔 합시다.


나는 경험이 적지 않아서 이제는 웬만하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고기파티에 되도록 참석을 하지 않는다. 일종의 민폐이기 때문이다. 불가피할 때는 저녁삼아 간단하게 한잔하고 자리를 일찍 뜬다. 그것이 청춘남녀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길이다.


중간에 자리를 파하고 돌아온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외부와 단절하고 제주의 자연과 자신의 내면만을 주시하며 다닌다거나 이미 익숙하고 편한 친구나 연인에게만 집중하며 다니는 제주여행도 괜찮다. 그러나 가끔 그런 여행이 한계가 보일 때면 제주에서의 타인들과 함께 해 보는 것도 좋다. 일종의 용기를 얻을 때도 유용하고 색다른 세계를 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번 제주여행만큼 다른 여행자와 대화를 많이 나눈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유는 다들 제주의 빗속에 고립되어서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숙소나 길에서 만난 외국인과의 대화가 많았다는 점이다. 말레이시아인 백패커 그리고 중국인 의료여행자와 여럿이 섞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시안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민과 자국에서의 각종 정치적 문제점은 물론이고 덧붙여 제주에 관한 정보도 대화의 주제였다. 살짝 충격을 받은 이야기는 어느 중국인의 역사관과 세계관이었다. 치아 치료비가 우리나라가 저렴해서 들렀다는 그는 언젠가 중국이 중심이 되어 연방형태로 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차이나로 하나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역사적으로 이미 오래전에 그러한 세상이었는데 서구의 영향으로 지금과 같이 되었으니 복원은 당연하다는 투였다.


주장의 근거는 대부분 지명이나 언어적인 측면이었는데 논리가 다소 우스꽝스러웠다. 가령 중국어로 서울을 한청이라고 한다. 한청은 한자어로 한성(漢城)이다. 이런 지명은 한국의 서울 말고도 세계에 여러군데 있다. 이는 이전에 그만큼 중국의 영토가 넓었다는 증거다. 어쩌고저쩌고.


이런 인식이 오십육세 중국 지식인의 일반적인 것인지 궁금하여 전공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답이 없었다. 못알아 먹는 듯했다. 아니면 못알아 먹는 척하는지도 몰랐다. 혼자 내린 결론은 이른바 동북공정이라 통칭하는 역사왜곡 교육의 결과이거나 이 사람이 다른 경로로 잘못된 학습을 받은 것이라 생각했다. 대화에 진실성도 좀 떨어지는 듯하여 한마디해주고 자리를 파했다.


- 그 중심이 왜 중국이어야 하지? 한국이면 안돼? 결국 평화롭게 하나가 되자는 거라면 다른 나라가 중심이 되어도 되는 거잖아?


그러자 그는 말이 없었다.


돌아서는 등뒤에서 중국인 특유의 껄껄거리는 웃음이 들렸다. 그는 나의 언행을 작은 나라 특유의 어떤 기질쯤으로 보았을 것이다. 좀 더 세련되게 그를 설득할 정도의 실력을 내가 갖추지 못했음이 민망한 노릇이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필담으로 가는 곳마다 중국 지식인들을 감복케 하였다는데…….


하긴 연암선생은 당대의 뛰어난 천재고 나는 그렇지 못하니.



다음날, 빗줄기에 한 번 혼이 난 터라 자전거여행자 셋은 선뜻 길을 나서지 못했다. 간밤에 고기파티는 늦게까지 이어져 숙소 여기저기 술 때문에 발생한 상흔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젊은 여행자들은 쓰린 속을 부여잡고 각자의 목적지로 씩씩하게 길을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으로 렌터카를 이용해 여행중인 사람들이 부러웠다.


같은 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자전거여행자 셋은 흐린 하늘과 일기예보에 의지해 하루 더 묵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온통 흐린데 움직여봐야 볼 것도 못보는데, 하는 마음이었다. 양껏 게을러지기 좋은 날이었다. 오후가 되어 그냥 있기는 뭐해서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해안도로를 동생뻘 되는 삼십대 자전거여행자와 돌아보았다.


사계해안따라 송악산까지 갔다가 용머리해안 주변을 세세히 돌아보았다.





용머리 해안에는 풍랑을 만나 제주에 표류한 하멜과 그 일행이 타고온 선박이 복원되어 있었다. 이전에는 자전거 타고 그냥 지나치기에 바빴던 터라 둘러보지 못했는데, 복원되어 있는 배안에는 당시 선원들의 모습이나 표류 후 선원들이 겪었던 고초등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젊은 친구와 산방연대까지 오르면서 속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오래 기억되고 삶에서도 변화가 있을만한 대화였다.
















숙소로 다시 돌아오는데 자전거에 뭔가 이상이 생긴 듯하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스포크를 고정하고 있는 니플의 대가리가 부러져 있었다. 해서 림이 출렁출렁거리고 브레이크를 잡을 때마다 진동이 발생하였다. 허허, 이걸 몰랐다니. 


이 시점이 이번 제주여행을 중간에 포기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이 문제 말고도 크고 작은 걸림돌이 있었다. 첫날 날카로운 물건에 손끝을 베여 레버잡기에 불편함이 있었고, 새신발을 신고 오는 바람에 오른쪽 발에 통증이 발생하였고 여분의 옷가지들은 모두 젖었으며 브레이크 패드는 마모가 많이 되어 잘 듣지 않는 상태인데 거기다 스포크까지.


자전거여행을 방해하는 갖가지 부정적인 요소가 한꺼번에 폭발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늘 가지고 다니던 멀티툴도 안이한 생각에 가지고 오지 않아서 정비도 불가능하였다. 부속이 없어서 공구가 있었다 하더라도 쉽지 않은 상황.


완벽한 정비를 위해서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 자전거점이 있는 지역까지 가야 했다. 그런데 예보는 여전히 흐리거나 비.


다른 여행자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나는 이쯤에서 제주시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그들은 제주가 처음인 사람도 있었고 자전거로는 처음이기도 했으니 여행을 지속하기로 하였다. 각자의 갈길로 가야했다. 오래 대화를 나눈 사이여서 그랬는지 마지막을 좀 특별히 보내고픈 생각이 들었다.




제주 특유의 신선한 해산물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며 각자의 길이 안전과 행복으로 가득하기를 바랐다. 제주를 떠나 긴 인생의 길에서도 마찬가지이길 말이다. [자전거여행의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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