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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공작소통신

자전거남도기행3 여수 밤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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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해변 지나 여수로.


생태공원 탐방을 마치고 근처 식당을 찾았다. 남도음식은 맛이 특별하기로 소문이 나있다. 그러나 그것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괜찮은 식당의 음식이 그렇다는 것이지 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전국 대중식당의 상당수 반찬은 대부분 공장에서 일괄적으로 생산되어 납품되는 일이 많다. 김치에 나물이며 묵은지까지.


사람이 많이 찾는 관광지일수록 그럴 가능성은 더 높은 편인데, 남도기행에서 음식에 대한 은근한 기대가 있었던 나는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그래도 일인분을 팔아주니 그게 어디냐며 감사한 마음으로 알뜰히 먹었다. 남도백반엔 늘 간장게장과 갓김치 그리고 꼬막무침이 따라 나왔다. 깊은 맛이 없고 살짝 비린 게장과 특유의 향을 느낄 수 없는 갓김치는 그저 그랬는데, 아이 주먹만한 꼬막은 씹는 맛이 있어서 먹는 재미가 있었다.


음식에 대한 식견이 없는 사람의 의견이므로 흘려듣길 바란다.



순천 중심부에서도 그렇고 생태공원 근처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순천에서 여수로 가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지방도 17번을 따라 여수공항방면으로 이어지는 내륙중심으로 가는 길과 지방도 863번을 타고 해안가를 따라 가는 길이다. 863번은 갓길이 없어 좁지만 다니는 차량의 수가 적고 펼쳐지는 풍경이 조금 나으므로 이 길을 택했다.


찾아가기는 까다로운 편이다. 생태공원에서 현지인에게 길을 묻는 것이 좋다. 와온해변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물어야 정확한 길을 알려줄 것이다. 여수 가는 길을 물으면 17번을 알려줄 가능성이 있다. 동천교라는 다리를 지나 농로를 잠시 달려야 863번 지방도와 만날 수 있으므로 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예전에 어떤 글에서 나는 우리나라의 바다를 이렇게 비유한 적이 있다. 


[동해가 사람을 압도하는 바다라면 남해는 호수와 흡사한 바다이다. 서해는 부끄럼이 많은 친구 같은 바다이다.]


순천의 바다를 보고 나니 여기에 하나 더 추가되어야 하겠다. 다가설 수 없는 바다. 와온해변을 알리는 이정표를 보고 해안도로쪽으로 자전거의 방향을 돌렸다. 광활한 갯벌 때문에 바다의 색은 동해나 제주에 비해 눈을 즐겁게 해주는 구석은 없는데 시선을 거두기가 쉽지 않았다.


-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 드는데.


고 김수환 추기경의 애창곡이기도 하였던 김수희의 [애모]를 부르며 잠시 혼자 놀았다. 해변 전망대 작은 공원에서 엠티를 온 화공학과 학생들이 공놀이를 하며 깔깔거렸다.











와온해변가 작은 어촌 마을을 천천히 빠져나가다가 산부인과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신기하여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와온해변을 빠져나와 해안도로를 따라 잠시 달리면 다시 여수 가는 863번 지방도로 복귀할 수 있다. 이 이후로는 해안도로가 나오더라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동해나 제주와는 달리 해안도로가 이어지지 않고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야 하는 길이 대부분이다. 조금만 더 가면 시경계를 넘게 되고 [응답하라 1994] 윤진이의 고향 여수가 나온다. 






지역사람들은 863번을 여수 가는 구도로라고 하는데, 큰 오르막이 두어군데 있다. 소라면의 해변을 지나자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각이 큰 오르막이 나왔다. 브이자 형태로 내려가는 각도도 센편이어서 내리막 가속도가 붙어 탄력을 받아 오르막의 절반이상을 오를 수 있었다.


자전거 여행에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길고 굴곡이 많은 길이라 조금 힘든 코스이다.




여수는 시청 청사가 세군데였다. 도심이 한곳에 집중된 형태의 도시가 아니라 크게 세군데로 나뉘어져 있는데 863번 지방도를 타고 오면 비교적 새롭게 정돈된 시가지와 만나게 된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엑스포 해양공원 부근은 항구중심의 구도심이다. 


다 온줄 알았는데 시청에서 엑스포 해양공원까지 제법 멀고 오르막도 있어서 시간이 꽤 걸렸다.



여수와 이순신 장군은 뗄래야 뗄 수가 없다. 시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선소 유적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어서 들르게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거북선을 비롯한 군함이 건조되고 정비를 위해 머무르던 곳이라고 한다. 유적은 소박하지만 역사적 의미가 워낙 큰 곳이라 숙연해지는 장소였다.




큰 오르막을 지나고 바닷가 길을 달리고 달리니 미항 여수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순신 광장을 지나고 진남관을 지나쳤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으므로 숙소를 잡고 저녁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을씨년스러운 엑스포공원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현지인에게 혼자서 밥먹을 만한 곳을 물었다.



수소문해서 찾아간 여수의 한 식당. 이 한끼의 남도백반 한 상으로 안좋은 선입견이 생길 뻔하였던 것이 봄눈 녹듯 사라지게 되었다. 테이블도 몇개 없고 할머니와 서빙을 돕는 사람 둘이 운영하는 식당에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혼자인터라 괜히 쭈뼛거렸더니 별로 개의치 않는다.


잠시 기다려 받은 음식이 아래와 같다. 중요한 것은 가격이다. 육... 천... 원.



찌개 따로 국 따로 열가지가 넘는 밑반찬. 지금 생각하니 내가 저걸 어떻게 다 먹었나 싶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옆에 중년의 신사는 밥 한공기를 더 시키더니 그것까지 뚝딱하였다. 산더미 같은 설겆이 거리가 쌓이는데도 주방을 맡은 할머니가 단골손님 식탁에 찾아가 어떻게 입에는 맞으시냐, 간이 짜지는 않느냐, 말을 건넨다.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등산복 차림의 중년은 언제나 최고지요, 하며 싱글벙글이다.


술을 시켰다. 찬도 많겠다, 한잔 먹으며 여수가 밤이 되길 기다릴 작정이었다. 지역의 작은 식당에는 이런 사람이 가끔 있다. 중년의 나이에 추리닝 차림으로 슬리퍼를 신고 발 뒷꿈치는 갈라져 각질이 일어나 있으며 사람과 눈을 잘 못마주치며 정해진 서비스에만 집중하는 남자 종업원. 그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잎새주를 가져왔다. 


한잔 두잔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여수에 어느덧 밤이 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 뒷꿈치 각질남에게 다가갔다. 낯빛을 밝게하고 물었다.


- 돌산공원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요.


- 어, 저, 그러니께…….


남자가 머뭇거리자 할머니가 돌산공원 가시게요? 하며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왔다. 각질남도 할머니와 이야기하라는 듯 손으로 할머니를 가리킨다. 예상한 대로 사람과의 대화에 익숙치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느린 속도로 각질남과의 대화를 통해 돌산공원 가는 길과 순천에서 여수 오면서 보고 느꼈던 것에 관하여 십여분 대화를 나눴다. 각질남은 몹시 기뻐하며 곧잘 맞장구도 치고 자기 의견도 피력하였다.


나는 그를 내내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오래된 습관이고 이런식의 대화를 좋아한다. 두분의 환송을 받으며 돌산공원으로 향했다.






돌산공원에서 여수 밤바다를 보고 있자니 노래가 절로 나왔다.


-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숙소에 들어가 씻고 자리에 누우니 무릎에 통증이 살짝 올라왔다. 원래 계획은 여수 돌산도를 한바퀴 돌고 마무리 하려 하였으나 일정을 단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일암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나오면 몸에 무리가 올 것 같았다.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느즈막히 일어나 여수 시내를 어슬렁거렸다. 엑스포를 끝내고 활용방안이 없어 관리비용만으로도 매년 많은 적자가 발생하고 있는 엑스포공원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이 각 지자체마다 적잖이 있고 어떤 곳은 적자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뭔가 일을 벌이려고 호시탐탐인 곳이 적잖다.


뭔가를 하고자 하는 자들을 이제는 경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 역시 고전에서 지적하는 바이다.








엑스포공원에서 오동도는 지척에 있다. 자그마한 섬이고 둘러보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동백은 끝물인데 봉오리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툭!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이보다 요란할 수는 없다. 이 소리가 잦아들면 완연한 봄이 올 것이다.






오동도는 중간중간 바다를 구경할 수 있는 전망대로 통하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빼먹지 않고 내려가면 툭 트인 바다를 구경할 수 있다.







여수 앞바다엔 숭어떼가 무리지어 활보하고 있었다. 바다를 뒤로 하고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중심기지였던 진남관 구경을 마지막으로 남도여행을 마무리 하였다.










여수에서 길을 물으면 모두들 대단히 친절하다. 어제 저녁 어떤 여고생은 길 묻고 돌아서는 나에게 안녕히 가세요, 하며 인사를 하였다. 응답하라 1994의 윤진이 대사, [니 알아서 가야. 젖갈을 팍 담가버릴 XX]하는 욕이 떠올라 희안하게 친절이 낯설었다. 


고속버스 트렁크에 자전거를 넣고 자리에 앉으니 읍성과 순천만, 여수의 밤바다가 떠올랐다. 생각나면 다시 가고픈 곳이 늘어나서 흐뭇한 여행이었다./자전거여행의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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