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전거공작소통신

자전거남도기행1 순천 낙안읍성에서 선암사를 향해

반응형


순천 낙안읍성 찍고 선암사 거쳐 상사호 둘레길을 따라.


한참 추운 겨울에 순천에 가고자 하였다. 미루고 미루다 이른 봄이 되어서야 자전거 버스에 싣고 순천을 찾게 되었다. 작가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얻을 수 있었던 순천에 대한 정보는 명산물도 별게 없고 변변한 항구도 없으며 농촌도 그렇다고 어촌도 아닌 곳에 사람들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곳이라는 정도였다. 굳이 명산물을 꼽자면 살짝 괴기스럽기까지 한 안개 정도. 그래서 작가는 그곳을 무진(霧津)이라 하였다.


작가의 60년대 작품속 이러한 서술이 오늘날에 통할리가 없다.  오늘을 사는, 특히 젊은 세대라면 [응답하라 1994]의 조연 해태(손호준)가 드라마에서 걸죽한 사투리로 을퍼쌌는(?) 대사를 통해서 순천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 순창 아니고 순천이라니께! 순천은 전남에서 광주 다음으로 큰 도시여…… 교통의 요충지란 말이지라, 아무리 큰차가 있으면 어디다가 쓸 것이여? 순천을 거치지 않고서는 경상도고 여수고 광양이고 갈 수가 엄써. 순천고 9회 김승옥…… 무진기행의 김승옥, 박진규 아빠 박노식도 순천 출신이제. 국내 최대 철새 도래지 순천만! 글고 98번 뻐스 타고 가불믄 와온뻘밭이 나오는데 기가 차야.


서울에 상경한 유학생이면 한번쯤 겪어봤을 법한 에피소드인데 엠티 가서 여수출신 학우와 한바탕 자기 고향이 제일이라며 입씨름을 벌이는 과정에서 늘어놓는 대사의 일부다. 여수에는 백화점이 없는 걸로 말싸움에서 해태가 이기게 되는데 그 장면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중 해태와 조윤진(민도희)의 고향 순천과 여수. 드라마를 다시보기 하고 있다가 두곳을 여행지로 결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해태는 순천의 낙안읍성을 어쩌자고 깜빡 했던 것일까?


오랜시간 달리던 고속버스가 순천의 차부에 정차하자 자전거를 꺼내 바퀴의 방향을 지방도 58번 쪽으로 먼저 잡았다.



순천 터미널을 중심으로 순천만과 낙안읍성은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먼곳인 낙안읍성과 선암사를 먼저 둘러보고 그 후 일정은 시간이 남는대로 정하기로 하였다. 낙안읍성 가는 길, 지방도 58번은 청암대를 찾아가면 된다. 이정표가 크게 붙어 있어서 찾아가기는 쉬운데, 상사호 가는 작은 길로 들어가지 말고 큰길 위로 달리는 것이 좋다. 


이유는 호수를 끼고 한바퀴 빙글 도는 코스가 지루하지 않아서이다.



낙안읍성까지는 쉬엄쉬엄 달려도 자전거로 한시간 남짓 걸리는데 오르막이 큰 게 하나 있다.


길은 아래와 같이 이어진다.


청암대-마륜리-용암리-쌍지리-창녕리-낙안읍성.




낙안읍성에 도착하니 여행자의 시선을 가장 먼저 잡아끈 것은 형태가 잘 보존된 성곽이었다. 산성만 드물게 보았던 경험밖에 없었던지라 이렇게 평지에 그것도 무너진 곳이 없이 고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성곽에서 규모를 떠나 마음 한 구석이 푸근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공식명칭은 낙안읍성 민속마을인데, 국내 대부분의 문화재나 유적지가 사찰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많다. 그런 반면 낙안읍성의 경우 초가를 실제 주민들이 주거용도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점이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주민들은 자신의 초가에서 살며 민박도 치고 기념품도 팔고 음식점을 허가 받아 생활을 이어나간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빨리 흉하게 일그러지기가 쉬운데 이곳은 그럴일이 없어 보였다. 텃밭이며 마당을 소박하게 가꾼 모습이 구석구석에 산재해 있다.







장터를 연상케 하는 트인 공간에 음식점이 몇군데 모여 있고 그 중심에 수령 4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가 우뚝하다. 나무 크기가 워낙 커서 사진 한컷에 다 담기지 않았다. 잎이 푸를 때는 더 장관일 것이다.


마을의 역사를 내내 지켜보았을 것으로 생각하니 신령스러웠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둘러보던 발걸음을 멈추고 음식점을 찾았다. 여행 가면 늘 불안한 것이 음식이다. 맛이야 둘째치고 2인 이상만 판매를 하는 곳이 많으니 혼자서 밥 먹기가 쉽지 않다. 쫓기고 쫓기다가 결국 짜장면이나 김밥집 신세를 지는 일이 다반사이다.


부러 손님이 적은 곳을 택해 들어가 주인장 눈치를 슬쩍 살피니 별 말이 없다. 됐다 싶어 시킨 것이 꼬막회무침비빔밥.




옆 테이블을 슬쩍 살펴보니 홍콩에서 온 초로의 관광객 부부가 비빔밥을 비비지 않고 젓가락으로 대충 뒤섞어 내용물 하나하나를 간보듯 깨작이고 있었다.


식당 찬모가 염려가 되는지 먹을만 하냐고 물으며 손짓발짓하니 웃으며 맛이 있다고 한다. 후줄근한 복장의 중국인 관광객 셋이 지나가면서 간판겸 식당앞에 세워둔 장승의 몸통을 쓰다듬으며 이게 당신 이름이냐? 하며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식당 주인장에게 큰 목소리로 말을 건다.


주인장은 못알아 먹으니 경직된 인상으로 잡아먹을 듯 눈알을 부라린다. 대꾸 없이 째려보며 인상만 쓰니 기가 죽은 강아지마냥 꽁무니를 빼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이 처량해보였다.


나무를 태워 고기를 삶는 냄새가 그윽하게 공간을 채운다. 나는 이 냄새가 주는 마음의 위안을 겪어본 사람이라서 싫지 않았다.


알뜰하게 챙겨먹고 마을 구경에 다시 나섰다.




입구 역할을 하고 있는 동문에서 큰길을 따라 서문쪽으로 걸어가면 조선시대 관공서 겪인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익숙한 그림이라 대충 훑어보고 발걸음이 가는대로 서문의 끝에 당도하니 다양한 표정의 장승들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장승 근처에는 성곽 위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다. 나는 서문에서 남문쪽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성곽의 왼쪽편 층계라고 보면 된다. 이쪽으로 오를 것을 추천하는데, 이유는 남문쪽이 더 볼거리가 많기도 하고 가장 전망이 좋은 곳과도 가까워서이다.



성곽위로 난 길을 따라 오분여 걸으면.



타임머신이 따로 없다. 요즘 젊은 친구들 말로 심쿵!


층계에 앉아 이런저런 잡생각에 잠긴다. 조선시대 읍의 규모랄지. 이 정도 규모면 어디 바람 한 번 피우기도 어렵겠다 싶고 마을 끝 박서방네 숟가락 몽둥이가 몇개인지 그 집 개가 새끼를 몇마리 낳았는지 읍민들이 정보를 공유하며 살았을 거라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에서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듬이질 하는 소리가 위에까지 똑딱똑딱 들려왔다. 그 소리가 잠시 잦아들더니 어디서 장고치는 소리가 들린다.


다당당따 다당다당 당당따 다당다당.


작은 소리도 이렇게 잘 들리니 숨어서 죄짓고 살 형편이 못되겠다. 익명성이 주는 자유는 언감생심인데 성인(노자)은 이 정도 규모의 작은 나라가 이상적이다 하였으니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장구소리의 근원을 찾아 성곽길을 조금 내려가니 역시 붉은 옷을 차려입은 남도사람이 즉흥으로 리듬을 두드리고 있다. 


당당따 다당다당 다당다당 다다당따.


카메라를 들었다.


철커덕.


카메라에서 셔터 소리가 났다. 인기척을 느낀 남도사람이 장구 치던 열채를 휙 거두고 핑하니 마실을 나가버린다. 아쉬운 마음에 입맛만 다셨다. 자신의 삶과 살아가는 공간이 타인에게 모두 공개된 채로 살아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게 보였다. 예인이 사는 집 너머가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이다.






산을 닮은 초가지붕을 마지막으로 낙안읍성 구경을 끝냈다.







자전거 세워둔 매표소 앞으로 나오니 더 많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로 동문 앞이 떠들썩 하였다. 장성과 자금성이 있는 나라의 백성들이니 규모로 따지자면 그들에게는 크게 인상적인 곳이 아닐 수도 있을 터인데 표정들이 대부분 밝았다.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갔으면 한다. 낙안읍성을 둘러보는데는 식사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약 한시간 가량 걸린다. 일정 짜는데에 참고하기 바란다.



민속마을 입구에는 아래와 같이 선암사 가는 이정표가 있어서 길찾기는 쉽다. 지방도 857번으로 갈아타고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큰 오르막이 두어군데 있는데 제법 길고 가파르다.




선암사 가는 길의 주소가 눈길을 끌었다.


이름하여 조정래길.


작가 조정래 선생의 출생지가 선암사이다. 길 이름을 이렇게 지을 정도로 작가의 문학적 성취는 태백산맥처럼 우뚝하다. 



가는 길에 드문드문 상사호의 일부가 보인다. 다시 순천으로 돌아갈 때는 호수 반대편으로 난 길을 이용할 것이다.



선암사는 비수기라 그런지 찾는이가 많지 않았다.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미술교과서에서 봤던 승선교를 지나.



경내에 진입하는데까지 걸린 시간은 약 십오분. 해가 슬쩍 기울어져 가고 있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찰의 경우 개인적으로 통도사 이외에는 크게 좋다는 인상을 못받았다. 불교미술과 건축, 불교상징물의 의미에 대해 지식이 일천하여 알아볼 눈이 없어서 그렇다. 해서 한번 들른 절집의 경우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잘 생기질 않는다.


선암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인터넷상의 미사여구에 혹해서 기대를 하고 찾은 사람이라면 크게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


주마간산격으로 눈도장만 찍고 얼른 나왔다. 선암사에서 오분 정도만 구례방향으로 나아가면 상사호 끼고 순천으로 다시 돌아나갈 수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자전거 라이딩 코스로는 대단히 좋았다. 지방도 58이나 857번에 비해 특별한 오르막도 없고 일주일 정도 뒤 꽃필 때 오면 제법 아름다운 길이겠다 싶었다.






오른쪽에 호수를 끼고 내내 직진을 하면 다시 출발지점인 청암대가 나오게 되니 길은 어렵지 않다. 나는 첫날 숙소를 정한 곳이 동천 강변 근처여서 풍덕교를 넘었다.



초행길에 오르막을 오르느라 오버페이스가 있었다. 오래된 무릎통증이 살짝 재발하려는 기미가 보여서 일찌감치 라이딩을 멈추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 소파에 편하게 몸을 기대고 맥주 한잔을 하는데 장난끼가 돈다.


비성수기라 혼자뿐인 게스트하우스 천정에다가 대놓고 해태의 목소리와 억양을 흉내내어 어색하게 씨부렸다.


- 아따 해태야…… 니는 순천 시민이 되야가꼬 어째 낙안읍성을 빼묵어부렀냐. 내는 고거이 쫌 거시기 하네.


남도기행 첫날의 해가 순천만쪽으로 조용히 떨어졌다./자전거여행의기술

300x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