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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공작소통신

자전거남도기행2 지상의 정원 하나 순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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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정원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으로.


여행을 나와도 늦잠을 자는 버릇은 여전했다. 게스트하우스의 청소를 맡으신 할머니가 방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 와따 멀리서도 오셨구마. 자전거로 댕기자모 일단 순천만 정원을 보고 생태공원 귀경까지 한 다음 여수로 넘어가믄 되겠네요이. 여수도 좋치라. 절믄 사램들은 드라마 세트장에 많이들 가등마 우리하고는 세대가 다르니께. 내눈에는 볼거이 별로 없더만요.


정이 표정과 말투에 배인 남도의 할머니가 벽에 붙어 있는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관광안내를 해주었다. 귀가 얇은 편은 아닌데 현지인의 이야기라 솔깃하였다.



순천시의 캐치프레이즈는 [순천, 도시가 아닌 정원입니다.]이다. 드문드문 아직 손길이 더 가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대단히 훌륭한 기획이고 가능성이 많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최고의 정원 도시 순천으로 완성도를 더욱 높여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동천 주변은 정돈이 제법 잘 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진행중인 곳도 있었다.


숙소로 잡았던 순천역 근처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동천은 멀지 않았다. 뚝방길이나 자전거길 따라 잠시 달리니 순천만 정원과 생태공원 가는 길로 자전거를 올릴 수 있었다.




문제는 거리감각이었는데, 나는 그만 정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하고 지나치고 말았다. 아래 사진의 [꿈의 다리]를 중심으로 좌우가 세계 각 나라의 정원이 조성되어 있는 [순천만정원]이 위치한 곳이다.


설마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까, 싶어서 지도상의 거리감각만 믿고 자전거 페달을 밟아 나가다 보니 어어, 하다가 당도한 곳이 [순천만 생태공원]이었다. 다시 돌아가자니 한심하고 해서 일단 생태공원부터 둘러보고 나서 결정하기로 하였는데 지나고 보니 실수가 그렇게 나쁜 결과를 낳은 것만은 아니어서 위안이 되었다.




자전거길 위로 순천만 정원과 생태공원을 이어주는 스카이 큐브 궤도차가 운행하는 길이 보인다. 이날 지나갈 때는 길과 방향이 한눈에 파악이 되지 않았다. 지나서 알고보니 정원내부에서 출발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길이었다. 도보여행이나 가족여행객이라면 십여미터 높이의 궤도차 안에서 조망할 수 있는 갈대밭의 풍경도 꽤 볼만할 것 같다.


정원 근처에 주차를 해놓고 둘러본 뒤 궤도차를 타고 생태공원까지 탐방하고 돌아오는 것이 좋겠다.


갈대밭의 규모가 순천만에 버금가는 곳은 제법 있다. 순천의 갈대가 차별화되는 부분은 그 갈대에 깊숙이 접근할 수 있고 높은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자전거길을 따라 주욱 나아가니 동천과 이사천이 만나는 합수부에는 갈대숲을 관통하여 무진길 가는 다리가 나타났다. 다리 위에서 조망할 수 있는 자연이 장관이다. 아마도 이런 풍경 때문에 어어, 하면서 순천만 정원은 깜빡하고 생태공원까지 가버린 듯하다.





셀프포트레이트도 찍어보고. 자연과 나와 자전거, 자화상엔 빠질 수 없는 세 단어다. 


숏다리로 나왔군. 흠…….




생태공원 입구가 나타나자 그제서야 정원을 지나치고 말았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살짝 어리벙벙해졌지만 곧 마음을 추스렸다. 동천에서 자전거길 따라 오면 공원까지 넉넉잡고 삼사십분이면 된다. 


정원을 들르지 않고도 지나고 나서 크게 후회가 되지 않는 이유는 생태공원을 제대로 보는 데에 시간(약 두시간 반)이 오래 걸렸으며 이후 여수까지 자전거로 달리고 보니 정원까지 들렀으면 시간에 쫓겼을 터라 건너뛰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당일엔 스스로를 책망하며 공원내 자연생태관부터 들러 사전학습을 꼼꼼히 하는 것으로 탐방을 시작하였다.





잘 조성된 탐방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넓은 뻘밭과 갈대가 연속해 펼쳐졌고.




바닷물의 호흡에 맞춰 미약하게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물줄기들이 길게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시집 간 날 등창 난 격으로 공원 여기저기 갈대가 많이 베어진 상태였다. 공원측의 설명으로는 3-4월에 이렇게 베어줘야 더 잘 자란다고 한다.


베어진 갈대의 밑둥 아래로 뻘밭의 숨구멍처럼 구멍이 숭숭 나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생명들이 바삐 드나든다. 털게들이 몸을 뻘로 위장한채 비대칭의 앞다리로 연신 뭔가를 입가로 가져갔다.


말없이 분주한 뻘밭을 쳐다보고 있자니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든든해지는 듯하였다. 수렵 채취의 본능이 되살아 나는 통에 보고만 있기가 힘들어서 다시 걸었다.








순천만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탐조선이 느리게 물살을 가르며 지나갔다. 나는 바짝 마른 이른 봄의 갈대를 바라보면서 새롭게 자라올라 온통 연둣빛으로 공간을 가득채운 순천만을 떠올려보았다.


가을에도 볼만하겠지만 오월이나 유월에도 장관이겠다 싶었다.




순천만을 한눈에 조망하려면 용산에 올라야 한다. 정상에 용산전망대가 있는데 아마도 이곳이 없었더라면 순천만의 명성은 조금 덜하였으리라 생각한다. 용산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에 끌려 사람들은 순천으로 순천으로 발걸음을 하는 것이리라.


살짝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진달래가 여행자를 반긴다. 십분 정도 더 걸으니 작은 나무 데크가 있고 가까이 가니 눈이 절로 번쩍 뜨인다. 





하늘이 내린 정원이라고 하였던가. 글자 그대로의 그곳, 순천만이 엄숙하게 내 눈앞에 펼쳐졌다.












맑은 날이고 점심때가 가까운 시간이어서 그랬을까? [무진기행]속의 명산물, 안개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작품속 화자의 나레이션처럼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이거나,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해 조용히 숨어있을만한 공간은 이날 순천만에는 없었다.


천혜의 정원, 그리고 갈대숲과 뻘밭을 거쳐오느라 소금기가 많이 희석되어 상쾌하게 느껴지는 바닷바람이 여행자의 눈과 마음을 정화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해가 떨어질 때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답다던데……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헤아릴 수 없는 오랜기간을 자연은 호흡하고 생명을 유지하였다. 호흡의 산물이 뻘밭이다. 그 뻘밭 위로 사람들이 소금기를 빼고 서식처를 조금씩 늘려나가고 있다. 과한 욕심을 버리고 영역의 확장은 잠시 멈추었으면 한다.


하늘이 내렸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잘 보존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감격에 젖은 상태로 자전거 대놓은 주차장 광장으로 나오니 한무리의 후줄근한 차림의 중국 관광객들이 관광버스에서 내렸다. 할머니 부대가 오순도순 사진도 찍으며 전망대로 향하는데, 그들 뒷꼭지에 대고 술에 취한 중국 할아버지 관광객 서넛이 상의 앞깃을 열어젖히고 바지주머니에 손을 찌른채 소리를 꽥꽥 지른다.


- 가봐야 볼 거 없어. 돌아와 돌아와!


자전거의 방향을 여수로 돌려야할 시간이었다./자전거여행의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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