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전거공작소통신

제주자전거여행기14. 종달리 지나 제주시로

반응형


제주자전거여행기-종달리 지나 제주시로.


성산항을 뒤로 하고 올레 1코스길인 종달리 해안도로에 자전거를 올렸다. 자전거여행을 지속하다보면 몸상태가 첫날보다는 이튿날이 이튿날보다는 그 다음날이 점점 나빠진다. 피로가 축적되어서 그렇다. 첫날 점심때가 지나서야 아픈 엉덩이도 이튿날은 한두시간 지나면 아프기 시작하고 그 다음날은 안장에 오르자마자 후끈거리는 그런 식이다. 물론 필자의 경우 단련이 되어 있어서 안장통 때문에 자전거를 못타거나 하는 일은 없다.


수시로 엉덩이를 안장에서 떼어 혈류의 흐름을 통하게 해주는 간격이 짧아지는 경향은 있다. 그래도 몸 전체가 느끼는 피로감은 계속 남아있기 마련이어서 여행의 후반부로 갈수록 사진 찍는 일 조차 귀찮아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대륙을 횡단하는 규모의 초장기 자전거여행을 실시하고 있는 여행자들이 중간 중간 괜찮은 숙소에서 며칠씩 머무르는 이유가 자전거를 오래 타느라 몸에 축적된 피로를 풀기 위해서이다.



성산에서 월정리까지는 제주 자전거여행에서 손에 꼽을 만큼 자전거 타기에 좋은 코스다. 경사도 크게 없고 자전거도로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어서 그렇다. 그 이후 제주까지는 해안도로가 자주 끊어지고 있더라도 바다와 접한 부분이 짤막짤막하다보니 많은 여행자들이 일주도로 위로 자전거를 올려 시간을 단축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날 되도록 꼼꼼하게 최대한 해안에 가까운 길로만 다녔는데도 월정리 이후로는 딱히 괜찮다 싶은 길이 없었다.


자전거도로에서 바라본 우도


성산일출봉



바다에서의 안전과 풍어를 비는 해신당이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잘 정비되어 있는 자전거도로




제주는 바람이 세서 밭에 씨를 뿌리면 채 뿌리를 내리기 전에 씨앗이 날려가기 십상이다. 해서 이렇게 밭 주위로 돌담을 쌓는데, 이게 대충 엉성하게 쌓는 것 같아도 기술자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면 무너지기 쉽다 한다. 겹겹이 쌓인 돌담을 보고 있자면 제주사람들의 혼을 느낄 수 있다.




한동환해장성 따라 구좌읍을 지나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평대리 바다가 나온다. 카페촌으로 전락한 월정리보다 이제는 더 제주 바다 다워서 쉬어 가게 되는 곳이다. 덧붙여 근처에 자그마하게 식사할만한 곳이 있어서 더 정이 가는 동네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그냥 지나치기 섭섭해서 식당에 들어갔다. 해물라면을 시켰는데, 평소엔 즐기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어제 마셨던 술의 해장에는 그만이었다.





평대리에서 월정리 사이엔 유독 풍력발전기가 많다. 꽤 볼만한 풍경이다.





멀리 근자에 제주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로 부상한 월정리 해변이 보인다. 원래는 달님만 잠시 머물렀다 가는 동네였다 한다. 그러던 곳이 마을 주민들을 위한 방파제가 새로 조성되고 그 방파제 때문에 물길이 바뀌어 모래가 쌓이기 시작했다 전한다. 


바닷가에 없던 모래가 쌓이고 풍경이 아름다워지니 보는 눈이 있는 사람들이 알음알음으로 찾던 한적하던 곳이 또 어떻게어떻게 입소문이 나 사람들이 제주에 왔다하면 필수로 찾는 동네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예쁜 카페가 많은 곳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하니 헛웃음 나오는 일이다.


자본이 이런 알토란을 그냥 놔둘리 만무하다. 


나도 의자 두 개 달랑 있던 시절 이 바다를 처음 찾았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은 온통 유리창가에 앉아 빨대로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선그라스의 무리들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터라 번잡하다는 생각이 들어 화장실 찾아 오줌 한줄기 싸고는 지나가기 바쁘게 되어버린 바다다.


계속 같은 말의 반복이어서 듣기 싫은 사람도 있겠으나 또 할 수밖에 없다. 정도의 문제다. 월정리엔 공사가 끊이질 않는데 영판 끝까지 싸우다가 같이 죽자는 아우성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희안하게 딱 이 시점만 되면 화장실에 가고 싶단 말이야. 어쨌든 월정리의 환골탈태는 기존 김녕성세기 해변의 몰락을 가져왔는데 그 흥망성쇠의 역사가 아주 사소한 변화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회국수로 알려진 동복리에 다다르면 이제 제주시가 멀지 않다. 길은 동복리에서 조금 해안과 접해있는데 음식을 맛보러 들른 사람을 제외하고는 찾는이 마저 많지 않다. 바다빛도 그렇고 주변도 어수선하여 가장 심심한 코스이다.



그나마 한곳 함덕서우봉해변이 볼만하다. 특히 산책로를 따라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바다의 빛깔이 아름답다.



함덕서우봉해변





해안도로는 신흥리에서 조금 이어지다가 조천에서는 끊어지게 되고 제주시 삼양동까지 큰길을 타야 한다. 제주시에 당도한 것이다.



피로도 피로지만 우도를 건너뛰고 제주시로 서둘러 온 이유는 이번엔 시내 박물관을 들르고 싶어서였다. 국립제주박물관부터 찾았는데 전시의 내용은 좋았으나 규모가 크지 않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여행을 마무리하여야 하는 시점이어서 마음은 굴뚝 같은데 슬슬 귀차니즘이 발동했다. 민속박물관을 가자니 다시 온길로 되돌아 나가야 해서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박물관행은 빨리 포기했다.


제주 시내 관덕정도 건성건성 보는둥 마는둥 하였다.


시내 상점에는 중국인 관광객을 환영한다는 붉은 문구가 많았다. 



첫날 새벽에 지났던 용진교를 찾아 근처 국밥집에 들렀다. 좀 이르다 싶은 저녁을 천천히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우연히 찾은 식당이 무슨 맛집이라고 하였다. 벽면에 방송출연한 사진이 붙어 있고 여기저기 사인지가 보였다. 돼지국밥집인데 공기밥을 따로 담아준다 하여 명칭이 따로국밥인 음식을 주문했다.


거참, 순대국밥 같으면서도 생김새가 남달랐고 흔히 접했던 돼지국밥과는 국물 색깔부터 차이가 있었으며 내장이며 순대며 돼기고기 부속물들이 그릇을 넘칠 기세였다.


이전 여행에서 음식 때문에 고생을 한 기억과는 달리 돌이켜보니 이번엔 먹는 것 만큼은 후회 없는 여행이었다.


세치 혀끝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관심이 별로 없어서 음식에 대한 식견이 짧고 먹고 난 뒤의 감상도 잘 떠오르지 않는 편인데, 이 국밥은 지인들에게도 추천하였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싸구려 순대가 이 집 만큼 거부감 없게 훌훌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좀 신기해서 하는 추천이니 나중에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속았다, 역정내지 않기를 바란다.




항구에서.


저녁을 든든히 먹고 육지로 나가는 표를 끊었다. 여객선 터미널 이층에 오르면 교편을 잡으면서 오랫동안 제주를 방문하여 제주의 풍경과 사람을 사진으로 남긴 고 김홍인 선생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950년대 제주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인데 볼 때마다 시선을 잡아당기는 사진들이다.




낯선 육지 사람이 카메라를 불쑥 들이대니 어찌할 바를 몰라 웃었던 것이겠지만, 흰 이를 드러내고 웃음 짓는 얼굴에서 일종의 위로를 받는다.


기록으로써의 사진이 가지는 힘이다.







그 중에서도 한참을 보게 되는 사진이 아래 작품이다. 머리를 바짝 쳐올린 소녀가 동생을 업고 있고 비슷한 또래의 어린 아이는 자기 몸피보다 큰 물허벅을 등에 지고 있다. 앞에 언니뻘인 여자애의 밝은 미소에서 한국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웃는 표정의 원형질을 확인하게 되는데, 나는 저 웃음을 잃어버린 듯하여 씁쓸하였다.


물허벅을 질 일이 없는데도 그러하니 처량한 일이다.



해가 지고 제주를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불켜진 항구를 바라보고 있자니 안도현의 시가 떠올랐다.


「북항

   

   나는 항구라 하였는데 너는 이별이라 하였다

   나는 물메기와 낙지와 전어를 좋아한다 하였는데 

   너는 폭설과 소주와 수평선을 좋아한다 하였다

   ……

   포구에 어선과 여객선을 골고루 슬어놓은 북항,

   이 해안도시는 따뜻해서 싫어 싫어야 돌아누운 북항,

   탕아의 눈밑의 그늘같은 북항,

   ……

   나를 버린 것은 너였으나 내가 울기 전에 나를 위해 뱃고동이 대신 울어준 북항,

   나는 서러워져서 그리운 곳을 북항이라 하였는데 너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하였다」

   



배를 타고 무탈하게 다시 육지로 나오면서 은폐된 모든 일이 명백해지고 끊어진 뱃길이 다시 이어지기를 나는 바랐다. 그때가 되면 나는 그 뱃길로 제주를 또 찾을 것이다. 뱃길의 끝자락 통곡의 바다가 가까워지면  항구로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에게 나는……/자전거여행의 기술

300x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