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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공작소통신

제주자전거여행기13. 우도에서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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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자전거여행기-우도에서의 추억.


성산에 도착해서도 자주 가던 숙소에는 들르고 싶지 않았다. 섭지코지와 온평리 사이에 자전거여행자를 우대(?)한다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어서 문을 수차례 두드렸으나 비수기 탓인지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해서 어쩔 수 없이 늘 가던 게스트 하우스에 방을 잡고 말았다.


성산은 일출봉과 우도가 있으며 올레길 코스가 가까워 제주에서 손꼽히는 관광지이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조용하던 숙소가 해가 떨어지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전국의 다종다양한 사람들로 방이 하나둘 차기 시작했다.



왁자지껄 한 분위기 때문에 이곳을 꺼리게 되었다기보다는 이곳이 너무 잘해준다는 점 때문에 이번만은 피하고 싶었다. 잘해줘도 탈이네, 하고 비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잘해준다는 것이 단순한 선의에서 라기보다 끝간 데 없는 경쟁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염려때문에 그렇다.


이곳 운영자는 그새 내외부를 단장하고 게스트들이 더 조용하게 지낼 수 있도록 화장실과 침대를 격리시키는 공사를 하여 개선이 있었다. 이전에는 조식으로 성게미역국을 내더니 이제는 전복죽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다. 저녁에 원하는 사람이 신청하면 참가할 수 있는 돼지고기 파티도 이전에는 그냥 팬에 구워 먹던 것을 이제는 운영자가 직접 바베큐 전용 그릴을 이용해 기름기까지 쏘옥 빼내어 먹기 좋게 직접 잘라주기까지 하였다.


게다가 숙박비는 최저.


이러니 손님이 없을리가 있겠나. 소비자 입장에서야 좋은 일이지만 다른 게스트 하우스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이 무한경쟁이 이제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보기에 좀 불편하다. 운영자에게 충분히 열심히 하였으니 주변도 좀 돌아보고 한걸음 쉬며 나아갈 것을 권하고픈 마음이다. 포식자 공룡 한종 보다는 다양한 종들이 번성하는 게 건강한 생태계일 것이다.


더 나가면 주제넘은 소리가 나올 것 같아 각설하고, 어쨌든 이날 저녁 오래간만에 여러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근래 참가한 술자리 중에서 가장 유쾌하였던 시간이었다. 각자 보고 겪었던 제주 여행지에 관한 정보를 나누다가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로 마치 꽤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이처럼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즉석에서 동행을 약속하기도 하고 군대 가기 전 친구들과 추억여행을 왔다는 스무살 유아인 또래에겐 너나 할 것 없이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약속된 열한시가 되자 일부 게스트들은 바깥으로 나가 술자리를 연장했다. 과해서 좋을 건 없어서 나는 침대로 돌아왔다.


밤새 방안엔 이 가는 소리와 코 고는 소리가 이어졌다. 세상만사 일장일단이 있는 법이다.



아침엔 여럿이 일출을 보러간다며 분주했다. 동 트기 전 일출봉 정상은 사람으로 발 디딜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그리고 열에 아홉은 일출을 보기 어렵다. 날씨가 도와줘야 바다에서 뜨는 해를 볼 수 있는데, 구름에 가려지는 날이 많다. 



전복을 찾기는 어려우나 아주 미세하게 난도질 당한 전복이 섞여 있으므로 명백히 전복죽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조식을 먹고 이제 올레꾼은 올레길로, 스쿠터 타고 다니는 사람은 도보여행자와 동행이 되어 우도로, 렌트카 빌린 회사원은 서귀포로 다들 각자의 길을 가야할 시간이었다. 마음이 허전했다.


사람 많은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아침은 나에게 늘 상실감을 준다. 특히 전날 재미있게 대화를 나눈 날이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그들의 앞길에 행운이 있기를 바라며 악수를 나누고 자전거에 올랐다.


이번 여행에서는 우도를 건너뛸 생각이었다. 우도는 세번이나 방문한 적이 있는데다가 몇번의 경험에 비춰보면 우도까지 들렀다가 나오면 제주시까지의 라이딩시간이 조금 빠듯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우도에 갔다가 나오느라 월정리 지나 조천까지 구간에서 시간에 쫓기며 자전거를 탔었다. 해서 이번엔 조금 느긋하게 라이딩하고 싶었다.



일출봉에서 우도 가는 성산항까지는 걸어서도 십여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다. 성산항에서 우도 들어가는 배는 계절에 따라 약간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아침 여덟시에 첫배가 들어가고 마지막배는 오후 여섯시다. 우도에서 성산으로 나오는 배가 오후 다섯시 반에 끊어지니 일정에 참고로 하였으면 한다.


근래에는 기존 운항하던 배편에서 추가로 큰배가 한척 더 생긴 터라 여유를 가져도 된다.


한가지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부분은 바다에 풍랑주의보가 떨어지면 도항선이 운항하지 않거나 중간에 배편이 끊길 수 있으므로 기상상태가 안좋으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중간에 급하게 나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아래 사진은 작년 가을에 찍은 것이다.



지미봉




우도 관광객은 2013년 기준으로 년간 120만명을 넘어섰다. 입소문을 타고 섬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우도 주민들이 투자하여 성산과 섬을 오가는 선사의 수입도 날로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던 주민들이 뒤따라 새 선사를 설립하고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독점하던 기존 주민들이 새 선사는 안된다며 송사를 벌이는 일이 벌어지고 왜 방해하냐며 새로 사업에 주주가 된 주민들 중 물질하는 해녀할망들이 바다로 뛰어들어 기존 배편을 가로막고 해상시위를 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하였다.


재판 끝에 새 도항선은 결국 허가가 났고, 같은 우도 주민들끼리 치고박던 이 아사리판에 최근엔 성산의 주민들이 뛰어들겠다 나섰다는 소식이다. 논리는 성산항에서 배가 출발하니 성산 주민에게도 우도 관광 수익에 관한 권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기존 독점권을 가진 우도 주민들이 어림없다며 펄쩍 뛰는 것은 당연지사.


아름다운 자연을 두고 사람들이 벌이는 돈벌이의 치열함이 이와 같은데, 우도는 예나 지금이나 아무 말이 없다.








새우맛 나는 과자 얻어먹으려고 달려오는 갈매기들





도항선이 우도 천진항이나 하우목동항에 닿으면 대부분의 도보여행자들은 오른쪽 길로 우도봉을 향해 가는 경우가 많다. 작은 섬이지만 걸어서 한바퀴 돌려면 세시간 이상 걸린다. 때문에 섬에서 가장 경관이 좋은 우도봉으로 바로 오르는 것이다.


차량이나 스쿠터 자전거의 경우 거리에 부담이 없으므로 되도록 왼쪽으로 난 해안도로를 따라 비양도쪽으로 섬 전체를 한바퀴 일주하는 것이 좋다. 자전거로는 길게 잡아 사십분 정도면 된다. 




거친 바다와 섬사람의 삶이 아슬하게 맞닿아 있는 느낌이라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산물통쪽 풍경이다.




쓸쓸하던 바닷가가 작은 소품으로 인해 없던 멋이 생겼다.


마을에 가까워지면 찻집이며 스낵집이 있다.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의 전공이 미술쪽인 걸로 아는데, 체계가 잡힌 사람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하게 자연을 아름답게 꾸미는 방식이 이와 같다. 제주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참고로 하였으면 한다.


우도봉으로 바로 가는 도보여행자들은 이 풍경을 놓치게 되니 아쉬운 일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 더 나아가면 원시적인 형태의 고기잡이 시설인 원담을 볼 수 있다. 밀물때 들어온 고기가 썰물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돌을 쌓은 형태다.


원담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아담하면서도 물빛이 아름다운 하고수동 해수욕장이 나온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우도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는 이런 것에 있다. 제주여행에서 맛볼 수 있는 여러가지를 한곳에 최대한 집중시켜 놓은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해봐야 십오분 남짓이지만 배타는 재미도 있고 해수욕장도 있으며 돌담에 해안도로에 거기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우도봉이 있어 섭지코지나 일출봉에 오른 느낌마저 전해준다. 해서 많은 사람들이 입술에 침을 발라가며 추천하는 것이다. 다만, 이제 사람들이 워낙 몰리다보니 점점 독보적이던 정취를 잃어가는 것이 안된 일이다.




우도의 부속섬인 비양도 가는 길



비양도에서 바라본 우도봉



천편일률적인 하얀색이 아니어서 볼만했던 비양도 등대이다. 해녀 할망들이 물질해서 잡은 뿔소라를 익히며 몸을 녹이고 있었다.





가을이었는데도 우도봉은 푸릇푸릇해서 볼만하였다. 그 아래가 검멀레 해변인데 모터보트를 타면 우도의 세세한 부분까지 볼 수 있다.



지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강아지. 명태대가리를 뜯고 있다.


자전거여행자나 기타 수단으로 해안도로를 따라온 여행자라면 상점이 밀집한 지역에서 일분거리에 우도봉 오르는 탐방로를 찾을 수 있다. 오르는 시간은 넉넉잡고 이십분 정도다. 우도에 와서 우도봉을 오르지 않는다면 붕어빵의 꼬리만 먹는 격이다.


지금까지 그 어떤 제주의 바다를 보았더라도 상상한 것 그 이상의 바다가 펼쳐진다. 다만, 날씨가 좋아야 한다. 필설을 줄이고 사진으로 대신하겠다.







우도봉에서 바라본 한라산과 오름들








봉우리 위에서 끝간데 없이 펼쳐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면 남에게 드러내기 쉽지 않은 하나의 그리움이 바다위로 속절없이 떠올라 오래 버티질 못한다. 이 해 가을에도 역시나 그랬다.


이상하게 이 바다를 보고 있자면 집에 얼른 돌아가 버리고 싶어지는 거였다. 더 있다간 주책맞게 눈물 지을 것 같아 도망치듯 아래로 내려가고 말았다.




언젠가 또 그리워지면 다시 찾을 섬안의 섬 우도였다./자전거여행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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