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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공작소통신

제주자전거여행기12. 신산리의 막내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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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자전거여행기-신산리 막내해녀 포장마차에서


자전거로 제주를 여행할 때 또 하나의 큰 기쁨이라면 우연히 들렀던 곳에서 아름다운 풍경과 맞닥뜨렸을 때이다. 자동차의 경우 요즘 워낙 네비게이션이 발달한 터라 가장 빨리 가는 길 위주가 되기 쉽다. 그러다보면 좋은 곳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백약이 오름을 뒤로 하고 신산리 찾아가는 길이 이번 여행에서 우연히 찾은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이다. 오름에서 신산리를 찾아가자면 성읍민속마을로 향해 가다가 모구리 야영장만 찾아가면 된다. 야영장까지만 가면 신산리 가는 이정표가 있으므로 거기서부터 신산리 해안도로까지는 찾기 쉬운 길이다.


도로명도 없는 이차선의 지선이라 이렇게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정말 한적한 길가에 새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호기심에 물어보니 그냥 농사지을 창고를 만들고 있다 하였다. 창고에 웬 치장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이곳이 경관보호지역이라 창고를 지어도 예쁘게 보여야 하는 조례 때문에 이렇게 한단다.


대답하는 여성의 표정에서 괜한 비용이 들어가니 조금 불만스럽다는 뜻이 읽혔다. 법의 취지가 좋으므로 더 논의를 거쳐 서로서로 상생할 수 있게 법조문을 더 다듬었으면 했다.


건물 외벽의 시멘트가 드러나지 않아야 하고 외장재의 재료나 색깔에도 기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률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은 나올 수 없으나, 그래도 이마 만큼이 어디냐, 싶었다.



백약이 오름에서 신산리 가는 이 길을 좋게 보는 이유는 억새와 풍력발전기의 조화가 보는 맛이 몹시 좋아서이다. 억새나 풍차만 단독으로 있었다면 좀 심심했을 거였다.









신산리는 일주도로와 해안도로 위주로 자전거여행을 하다보면 반드시 거치게 되어 있는 동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유는 표선쪽에서 잠시 이어지던 해안도로가 끊어지고 한동안 차들만 쌩쌩 달리는 일주도로를 달려야 하는데 그 기간이 좀 길다. 


해서 신산리에 도착하면 해안도로 이정표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유명한 제주의 관광지 표선과 성산 사이에 끼인 동네라 상대적으로 은근히 을씨년스러운 곳인데 시끌벅적한 걸 꺼려하는 사람에게는 또 그만의 매력이 있는 바다다.




해안도로에 접어들어 얼마 가지 않아 포장마차가 나타났다.



주인 아주머니가 판매용으로 널어 놓은 오징어가 늦가을 햇빛과 바다바람에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너스레를 떨었다.


- 이 앞을 몇번이고 지나갔는데도 한 번 쉬어가질 못했네요. 오늘은 작심하고 중산간에서 일찌감치 내려왔습니다.


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흰 이를 드러내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어? 가만 보니 어디서 본 얼굴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웹서핑 하다가 몇차례 들렀던 블로거의 어머니였다. 의도치 않은 꼼수를 부리게 되었는데 나는 엉겁결에 이렇게 말했다.


- 따님께서 인터넷에 올린 사진을 봐서인지 낯설지가 않네요. 따님은 스킨 스쿠버 배우시고 어머니께선 해녀시고 와…… 오늘 제가 제대로 찾아온 거 같습니다.


하찮은 인연일지라도 이 나이대의 어머니들이 어린 따님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별 볼일 없는 자전거여행자 신분에서 제대로 손님대접을 받기 시작하였다. 어머니께서는 신산리에 시집왔을 때 가장 나이가 어려 막내해녀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게 불리우는 것이 좋은 것인지 싫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직접 잡은 해산물들이 어항에서 꿈틀거렸다. 자연산이라 계절에 따라 그날 그날 재료가 다르기도 하고 시세 역시 수시로 변하니 메뉴도 단촐하였다. 모듬해물, 이거 하나로 끝이다. 팔 물건이 떨어지면 직접 바당(제주말로 바다를 이렇게 부른다.)에 물질을 가야 하니 날을 잘못 잡으면 허탕을 칠 수도 있다.


평소 식성이 해산물을 즐기지 않는다. 해서 비교대상이 없으니 맛이며 품질에 대해서는 논할 자격이 없다. 나중에 먹은 사진을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가격을 이야기하니 다들 믿을 수 없다며 야단이었다. 이구동성으로 싸게 먹었다며 거기가 어디냐고 법석이었다.



모듬해물 작은 것 한 접시에 한라산 소주 일병을 놓고 바다를 바라보며 괜히 허세를 작렬시켜본다. 등뒤엔 장작이 타는 화목난로가 있어 든든하고 앞엔 글자 그대로 신산한 바다가 있다.


뭐가 뭔지 모르겠는 신선하고도 여린 살을 입안에 넣어 어금니로 한차례 씹으니 바다 비린내가 입안을 넘어 코를 지나 머리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랐다. 틈을 주지 않고 한라산 소주 한잔을 쭈욱 들이켜니 좋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막내해녀 어머니와 제주를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으니 옆에 부부끼리 여행온 손님들도 대화에 끼이고파 하였다. 


- 제가 집사람과 나이 차이가 조금 있는데 말입니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면 숙소에서 다들 바라보는 눈빛이 요상해요. 한두번이면 참겠는데, 이건 뭐 영판 무슨무슨 교제니 불륜으로들 쳐다보니 못견디겠어요. 


- 아이코 사장님, 너무 언짢아 마세요. 그런 사람도 있으면 우와 저 양반 능력있네 하면서 부러워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듣기에 좋았던지 내술 한잔 받으라며 잔을 건넨다. 옆에 와이프 되는 사람도 싫지 않은지 재밌다고 깔깔거렸다. 음식이 동나자 나는 자전거도 팽개쳐두고 동네를 한참 어슬렁거렸다.



적은 양이지만 술도 깰겸 라면을 시켰다. 가격은 라면치고는 비싸지만 이 정도의 라면이니 수긍이 갔다. 전복에 대형 뿔소라에…… 지금 생각해도 침이 넘어간다.


이 라면 먹고 싶어서라도 다시 신산리를 찾아야겠다. 


비용이야 내는 것이지만 신산리 막내해녀 어머니의 좋은 대접에 나는 깊게 감사를 표하고 다음을 기약하였다. 아까부터 자전거가 빨리 가자고 응앙응앙거렸다. 네가 당나귀냐? 나타샤도 없는데. 쯧!





이 시간에 다시 중산간에 오르려니 엄두가 나지 않아 관성처럼 환해장성을 따라 성산으로 향했다. 신산리에서 성산까지는 해안도로가 이어져 있다.





바람 때문에 한방향으로 자라는 나무









많이 봤던 일출봉이라 건성으로 건너뛰고 일찍감치 숙소를 찾아들었다. 늦가을의 해는 짧았다./자전거여행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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