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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공작소통신

제주자전거여행기11. 오름의 나라 다랑쉬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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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자전거여행기-송당리 오름의 나라, 다랑쉬 오름.


송당리 주변으로는 다랑쉬 오름을 중심으로 열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로 오름이 많다. 용눈이, 아끈다랑쉬, 아부, 백약이, 채, 거미, 민, 돝, 높은, 당, 손지, 거슨세미 오름 등등. 가히 오름의 나라, 왕국이라고 할만하다. 그중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딱 한군데만 들러야 하니 하나만 찍어달라 하면 역시 다랑쉬 오름을 꼽을 수밖에 없다.


송당리의 오름을 모두 올라본 것도 아니면서 자신있게 추천하는 데는 다랑쉬가 주변의 오름 중 가장 높고 크기 때문이다. 오름 자체가 아름다운 것보다는 여행자 입장에서 오름에 올랐을 때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 좋은데 그럴려면 아무래도 높은 오름일수록 경치를 감상하기에 유리하다.


다랑쉬 오름은 입구부터 살짝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방문객이 워낙 많은 터라 주차장부터 규모가 컸다.



탐방로는 처음부터 좀 가파른 경사의 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다른 오름에 비해 체력이 조금 받쳐줘야 하는데, 몸에 아픈 곳이 없다면 성인 걸음으로 약 삼십분 정도면 정상부에 다다를 수 있다.



나는 지난 해 올랐던 아끈다랑쉬 오름에 눈길이 자주 갔다. 이미 언급했던대로 오름을 오를 땐 자주 뒤를 돌아보며 수시로 변하는 주변 경치까지 감상하는 것이 좋다.



아끈다랑쉬 오름 너머 성산일출봉


제주 동부쪽의 웬만한 높이의 오름에 오르면 성산일출봉이 늘 보인다. 왼쪽에 어렴풋이 우도도 보인다.



조금씩 조금씩 높은 곳에 오르자 더 먼데 바다가 보였다.



경사가 특별히 심한 곳에 설치되어 있는 밧줄



등에 땀이 나고 제법 숨이 가쁠 때쯤 정상부가 나타났다. 거대한 분석구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였다. 깊이나 넓이가 다른 오름들과는 비교가 안되게 큰 규모다.




정상으로 가자면 오름의 가장자리로 나있는 탐방로 오른쪽으로 가면 가깝다. 나는 탐방로를 완전히 한바퀴 돌며 다랑쉬 오름에서 볼 수 있는 제주의 여러 표정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느낌상 다랑쉬 오름에 대적할만한 봉우리는 없어 보였다. 한라산은 그야말로 집안의 큰어르신처럼 경외의 대상이지 어디 오름에 갖다 붙일 상대는 아니었다. 따라서 한라산을 제외하고 그렇다는 이야기다.


주변의 모든 오름은 다랑쉬 오름의 발아래에 있었다.


앞서 가던 일행에게 내가 소리쳤다.


- 와…… 한라산 가기 싫은 사람 여기 오면 되겠네.


- 맞아요. 다랑쉬에 오르면 한라산에 가려진 제주시쪽을 제외하고 제주의 삼분의 이를 조망할 수 있다고 해요.


과연 오름의 우두머리다웠다.



손지오름방면


동검은이오름과 백약이오름방면


우도방면



세화쪽 들판은 제주 자연의 결정판이라고 할만큼 가슴을 시원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이곳에 다다르면 우뚝한 한라산을 볼 수 있다. 초소 근처에서 셔터를 누르고 있자니 초소에 있던 오름지기 고승사옹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오름의 생성과정이나 다랑쉬 오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고승사옹께서 놀랄만한 팁을 알려주었는데 다랑쉬 오름의 진짜 매력은 굼부리 밑으로 내려가 가장 깊숙한 곳에서 누워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그렇게 멋있다고 하였다. 저길을 내려갈 수 있단 말인가요? 길이 없는데요? 하고 물으니 다른 길로 가면 고생하는데 자신만이 알고 있는 루트라며 한쪽 경사면을 가르켰다.


가팔라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열정적인 포토그래퍼들이 촬영을 위해 가끔 내려간다고 한다.




초소를 뒤로 하고 천천히 내려가는데 갑자기 남자 스텝이 말했다.


- 그런데 말이에요. 오늘 참 이상하네요.


- 뭐가요?


- 날씨가 너무 좋네요. 신기할 정도로요. 제주는 이렇게 화창한 날이 일년에 채 80일이 될까말까라는데.


그러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제주는 대부분 구름이 끼거나 흐리거나 하는 날이 많고 이렇게 구름 한점 없는 날은 드물다. 나도 맞장구를 쳤다.


- 그렇네요. 더더욱 신기한 건 바람이 이렇게 안불고 고요하다니…… 제주에 다니면서 이런 날은 처음이네요.


- 우와, 맞아요. 이틀전만 하더라도 우중충한데다 미친듯이 바람이 불었더랬는데.


여행하는 동안 내내 날이 좋았고 춥지도 않았다. 심지어 이 다음날은 영상 21도까지 수은주가 올랐는데 추위를 대비해 껴입은 옷이 무색할 정도로 땀이 났었다. 제주를 빠져나오고 다음날 전국에 비가 내린 후 초겨울 한파가 몰려왔으니 여행운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다랑쉬 너머 용눈이 오름





내려오는 길목에 흡사 영국 밀밭의 크롭 써클과도 같은 들판이 보였다. 일행중 남자스텝이 고개를 갸우뚱 하며 물었다.


- 어, 저거 꼭 외계인이 그려놓은 것 같은 영국의 밀밭 같네요. 저기가 왜 저런지 혹시 아세요?


- 제가 알기로는 세화.송당 개발지구라고 온천과 위락시설 숙박시설을 한데 모아 대규모 관광단지를 건설할 목적으로 개발중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중단된 곳이라 알고 있습니다.


스텝은 눈이 동그래지며 어이없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이 아름다운 곳에 숙박시설이며 놀이기구며 온천이 들어섰다고 가정해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다랑쉬 오름 바로 턱밑에 말이다.


어쩌다 한 번 여행 오는 외부자의 시선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제주를 아끼는 마음이야 현지인들이 더할 터이니 정작 제주를 제주답게 지키면서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에 관해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하겠다. 좋다는 곳마다 콘크리트 성곽이 자연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제주라면 굳이 애써 찾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끈다랑쉬 오름을 카메라에 담고 다시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다. 투어는 하루에 오름 한곳이므로 내 사정에 따라 움직일 수 없었고, 아끈다랑쉬 오름은 탐방로가 조금 더 튼튼하게 정비된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지금은 사정이 어떤지 모르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 확인한 사진에서 출입금지 팻말을 보았던 터였다.


아무래도 작은 오름이고 지반이 약하다보니 많은 사람의 손을 타는 듯하였다. 그렇잖아도 좁고 미끄러운 탐방로가 유실이 심해져 어떤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아부 오름과 백약이 오름.


숙소의 스텝과 주인장은 강아지 목욕 시키는 일에 한창이었고 나는 자전거에 패니어를 달았다. 하룻밤이지만 혼자 길을 나서려니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숙소 사람들에게서 가까운 곳 오름에 대한 정보를 들은 다음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부 오름으로 향했다.


- 사모님, 여차하면 오름 몇군데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때까지 마음은 그러했다. 세네시까지 오름이나 계속 올라갔다가 다시 돌아와 하룻밤 더 묵고 싶었다. 이제 생각날 때면 편한 마음으로 바로 달려갈 수 있는 제주의 숙소가 내 마음속에 하나 더 생긴 셈이어서 그걸로 위안을 삼았다.




십여분 달리자 아부 오름이 나왔다. 앞 오름이라고도 한다.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곳인데, 정상부까지 오르는데 오분 정도 걸렸던 듯하다. 그만큼 낮은 오름이다. 낮은 대신 상당히 둘레가 긴 오름이다. 이 킬로미터가 넘었다.





오르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는데 한바퀴 도는 시간이 삼십분 정도 걸렸다. 아부 오름 주변으로 오름들이 밀집해 있다.




영화 촬영 당시 주변에 전기선도 없고 시대에 맞지 않는 건물도 없어서 금상첨화였던 장소라 한다. 가운데 나무도 당시 제작사에서 심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내용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부 오름 그늘에 퍼질고 앉아 점심을 먹었다. 숙소의 주인장이 가다가 먹으라며 챙겨준 음식이었다. 받지 않았더라면 주위에 변변한 식당도 없는데 빈속으로 다닐 뻔하였다.


다랑쉬 오름에서의 감동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터라 아부 오름에서는 크게 인상적이다, 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다시 내려와 아부 오름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 거리에 있는 백약이 오름에 올랐다. 오름에서 약이 되는 식물을 백가지나 캘 수 있다 해서 백약이 오름이라 부른다고 한다.


여성들이 특히 좋아하는 오름이라고 하는데, 그러고보니 경사도 완만하고 초지가 조금 넓어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빨간 원피스 입고 뛰어다닐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 오름은 사유지와 겹치는지 철봉으로 막아놓은 곳이 두군데 있었는데 들어갈 때 월담하는 모양새라 영판 죄짓는 기분이었다.





백약이 오름에서 바라본 성산방면





백약이 오름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는데, 역시 다랑쉬 오름에서의 감동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처음부터 너무 센 오름뽕(?)을 맞았나 보다.


오름을 주제로 한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다랑쉬는 맨 마지막에 오르는 것이 좋겠다.


백약이 오름에서 바라본 다랑쉬 오름방면



어제 오른 따라비 오름이 보이는 듯도 하고.



신산리쪽 바다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채 오름이 되지 못하고 둔덕으로 남은 곳 옆으로 바닷가 가는 길이 같이 가자 유혹하는 듯하였다. 자전거는 하루에 열시간이라도 타겠는데, 겨우 오름 세개 오른 이 시점에서 관절도 팍팍해지고 살짝 꾀가 나기 시작했다. 마침 부실한 점심을 먹은 터라 출출하기도 하였다.


그때 떠오른 생각이 제주에서의 마지막 로망, 바닷가 포장마차에 찾아가 해녀가 직접 딴 해산물 한접시에 소주 일병을 먹어보자는 것이었다.


일주도로에서의 기억을 쥐어짰다. 희미했지만, 신산리 해안도로 변에서 포장마차를 보았던 것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신산리 해안도로를 향해 가는 길고 굽은 길 위에 자전거를 올렸다. 나는 뒤를 한번 힐끗 보고, 오름아 잘있거라 다음에 또 오마, 해놓고는 잽싸게 바닷가로 토꼈다./자전거여행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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