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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공작소통신

제주자전거여행기9. 따라비오름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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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자전거여행기-따라비오름을 향해


올레길을 빠져나와 자전거를 다시 일주도로 위로 올린 나는 올 가을 제주여행의 원래 목적지로 방향을 정해야 했다. 길을 나서기 전에 생각했던 여행주제는 오름과 억새였다. 지난 가을에 우연히 조금 맛을 보긴 했어도 좀 미진한 감이 있어서 올 가을에는 더 많은 오름에 올라보고 싶었다. 거기에 덧붙여 하고 싶었던 것이 또 하나 있는데 이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제주 서부쪽의 오름도 하나쯤 오르고 싶었으나 아시다시피 해안도로 소개와 일정상 오르지 못하였다.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겠으나 개인적인 생각엔 오름 구경하면 떠오르는 곳은 제주의 송당리라고 생각한다. 지도검색을 해보면 송당리 주변으로 군락이라고 할만큼 많은 오름이 있다.


특히 송당리엔 포토그래퍼 고 김영갑 선생이 생전에 많은 작품으로 남겼던 용눈이 오름이 있는 터라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용눈이 오름은 두차례 찾은 바 있지만 소위 맛배기에 불과한 것이었고 해서 이번 여행길에 더 많은 오름 구경을 위해 송당리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덧붙여 용눈이 오름 만큼 김영갑 선생이 사랑했던 오름이 따라비 오름이다. 다행히 따라비 오름은 송당리 가는 중간에 있어서 동선을 정하기 수월했다.


오전에 논짓물까지 좀 느긋하게 달렸던 탓에 이날 목적지까지 가려면 시간이 조금 빠듯해 보였다. 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하고픈 마음도 있었고 익숙한 일주도로보다는 안다녀본 길로 가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 일주도로와 산록도로의 중간을 관통하는 지방도 1136번 위로 자전거의 방향을 돌렸다.





일주도로(1132)를 타고 서귀포 방면을 달려본 라이더라면 자전거 타는 재미는 제주의 북부, 서부, 동부에 비해 서귀포쪽이 조금 덜하다는 것에 동의를 할 것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해안도로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막상 가보면 바다와 제법 떨어져 있기도 하고 적잖은 구간이 깎아지른 절벽과 나무들 때문에 시야가 많이 가리게 된다. 


억지로 바다를 보면서 자전거를 타려면 올레길을 이용해야 하는데 올레길은 그야말로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므로 초행인 사람이 길찾기가 만만찮고 길게 돌아가야 하며 많지는 않아도 일부 자전거를 들고 가거나 자전거를 탈 수 없는 해변가를 지나가야 하는 경우가 있어서 선뜻 추천하기가 어렵다.


작년 봄에 들렀던 서귀포, 해안도로와 강정마을 천지연폭포.


그리고 대부분의 관광지가 그러하듯이 차를 이용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위락단지여서 자전거여행자에게는 적당치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제주가 처음인 여행자라면 군데군데 폭포라던가 시장 박물관 월드컵경기장등 볼거리는 적지않다. 


자전거 라이딩은 조금 제쳐두고 천천히 둘러볼 목적이라면 1132 일주도로의 큰길을 따라 가다가 군데군데 관광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보고 들러보는 것이 좋다. 폭포의 대부분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어쨌든 나는 이날 지난해 달렸던 산록도로가 생각이 나서 처음 달려보는 지방도 1136에 대한 기대가 컸다. 본격적인 라이딩에 앞서 이전에 소개했던 바와 같이 따라비 오름을 가기 위한 서너군데 중요 포인트를 미리 짚어두었다. 가시리 사거리에서 따라비 오름은 지척에 있다.


중문입구-토평사거리-의귀초등학교-신흥사거리-가시리사거리


길을 잃지 않고 최단거리로 가자면 꼭 필요한 작업이다. 1136번 도로의 첫인상은 약간 심심하였다.

 


방풍림에 가려져 있는 서귀포시




1136도로위에서 바라본 서귀포시


제주월드컵경기장 지붕이 살짝 보인다.


토평사거리, 한라산쪽으로 난 길이 제주시로 가는 1131, 제1횡단도로이다.


미개통구간이 있지만 우회로가 있어 길찾기는 어렵지 않다.


지방도 1136을 달려본 감상을 이야기하라면 한마디로 한라산을 떨어져서 구경하기 좋은 도로이다. 산록도로의 경우 산과 워낙 가까워 관찰이 잘 되지 않고 일주도로의 경우 너무 멀거나 시내건물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데 1136에서는 비교적 손에 잡힐 듯이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부분을 제외한다면 시간이나 거리를 단축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닌 한 일부러 찾을 정도의 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끼니를 해결할만한 곳이 전무하다. 그 흔한 짜장면집도 눈에 띄지 않아 애를 먹었다.


서귀포 시내를 아래로 내려다보고 통과하기 전 떡볶기와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라도 들르지 않았더라면 내내 빈속으로 달릴 뻔 하였다. 크게 다쳤는지 한 손이 불편한 포장마차 주인장은 한눈에 여행자임을 알아보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어른 주먹만한 귤을 네개나 건네었다.


- 제주는 올 때마다 느낌이 많이 다르지요? 볼 것도 많고…… 가다가 먹어요.


기껏해야 오뎅에 풀빵 몇조각 다 해봐야 이천원 계산하면서 덥썩 귤을 가방에 집어넣기가 면구스러웠다. 사양을 하니 주는 사람 성의가 있는데 하며 역정을 내신다. 일정에 쫓기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포장마차에서 퍼질고 앉아 주인장이랑 제주 이야기나 하며 막걸리 병을 땄을 거였다.


더는 거절 못하고 넣을 곳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는 두개를 얻었다. 귤인심이 넉넉하였는데, 속이 허전해지는 시점에서 귤을 꺼내어 먹을라치니 1136에는 귤밭이 너무 많았다.


귤밭 옆에서 귤을 까먹자니 영 모양새가 서리꾼 꼬락서니라, 결국 가시리 근처 귤밭 없는 곳에서 먹었다. 행동식과 함께 먹는 귤이 달았다.






의귀초등학교 가기 전 건천


1136을 계속 타고 가시리 사거리까지 살짝 돌아가도 되지만 사람 욕심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하고 싶었다. 해서 의귀리 교차로에서 표선면 방면의 지선을 따라 가시리 사거리로 바로 향했다. 오전에 너무 여유를 부리느라 서두르지 않으면 길에서 해가 지는 상황에 빠질 것 같았다. 마음이 급해지면 따라비 오름 구경도 건성건성이 될 수 있으니 서둘러야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세네시가 되면 라이딩을 멈추기로 했는데, 시계를 보니 여의치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지선이라 갓길이 없어 주의가 필요하다.


무밭 뒤로 그림 같은 집, 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정석비행장이나 정석항공관이라는 안내판을 따라 가다보면 가시리 사거리가 나온다. 따라비 오름을 가자면 가시리 사거리를 찾아가야 한다. 사거리 중심에는 원형의 나무그늘이 있고 한 귀퉁이에 오뚜기 슈퍼마켓이 있다. 만약 슈퍼가 없다면 가시리 사거리가 아니니 다시 확인해야 한다.



오뚜기 슈퍼마켓에서 성읍민속마을 방면으로 약 30미터쯤 가면 아래와 같은 이정표가 있다. 이 길이 따라비 오름 가는 길이다.



그러나 나는 초행길이었고 지도로 오름 위치를 확인한 감각에 의지해 처음엔 계속 정석항공관쪽으로 자전거를 몰아나갔다. 맞는 길로 착각하여 오르막을 한참 올랐다. 


이 길은 봄에 유채꽃이 만발할 때면 자전거여행자는 물론이고 관광버스에 스쿠터에 한바탕 야단이 벌이진다는 아름다운 길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좋다는 소문만 들었고 정작 봄에 꽃필 때는 와보지 못하였다. 이날 찬바람 불기 시작한 계절에서야 지나가게 되다니. 이래서 또 봄을, 제주를 다시 기약하게 되는데, 그건 차후의 일이고 가도가도 따라비 오름이 나올 생각을 않는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길을 잘못 들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분명히 지도상의 거리감각이면 들어가는 입구가 나왔어야 했는데 이정표마저 없었다.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계속 오르막을 올라갔다.


가시리 정석항공관 가는 길


계절감각을 잊은 코스모스



오르막의 삼분의 이 정도 지점에서 영 이상한 간판 하나가 보인다. 굵은 매직 글씨로 따라비 오름이라고 쓰여 있고 올라온 길 반대편을 화살표가 가르키고 있는 엉성한 간판이었다. 못쓰는 양철 문짝에 글씨를 써놓은 거라고 보면 된다.


나는 멋도 모르고 반가운 마음에 목장쪽으로 자전거를 몰아 내려가니 접근도 하기 전에 말테우리가 손을 휘휘 저으며 여기 아니고 반대로! 하며 외친다.


그랬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 찾아오니 아예 목장 입구에 임시로 안내를 해두었던 것이다. 말테우리의 음성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말을 지키는 개도 짖어대고 말테우리는 밑으로 내려가세요! 한다. 말이 낯선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도 스트레스고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행객들이 차를 타고 불쑥 불쑥 진입을 해대었으니 얼마나 신경쓰였을까.


지금 생각하니 너무 미안한 일이다.



나는 부랴부랴 올라 왔던 길을 다시 거꾸로 내려가 위에서 설명한 사거리 한 귀퉁이의 이정표를 확인한 다음에야 제대로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이래 저래 시간을 많이 빼앗겨 마음이 급했다.



길은 좁고 멀지 않은 전방에 따라비 오름이 보였다. 앞에서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동산이었다. 따라비 오름은 억새로 유명한 오름이다. 들었던 풍문대로 입구에서부터 잘생긴 억새가 여행자를 맞이하였다.




오름 앞에 화산재로 형성된 붉은 흙, 제주말로 하면 송이가 인상적이었다. 단체관광객들이 적잖이 따라비 오름을 찾고 있었다. 한사람 창작자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고 김영갑 선생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 크게는 조명을 받지 못하였을 오름이었다.


나는 아무나 붙잡고 둘러보는데에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물었다. 길게는 한시간 짧게는 사십분. 올라갔다 내려오는데에 걸리는 시간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오름을 즐길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오름을 오를 때 나름의 노하우를 공개하자면 먼저 되도록 일행과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사람과의 대화보다는 자연이 속삭이는 소리와 그에 반응하는 스스로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올라가지 말고 자주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지나온 길 뒤편이 더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부에 올랐으면 주변을 꼼꼼히 천천히 가다서다 하며 둘러보아야 한다.



높은 자리에서 둘러보면 여러각도에서 시시각각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비 오름에서 본 표선방면


한라산과 풍력발전기


철쭉이 피어서 계절을 착각하게 만든다.


정상 가기 전 액운을 막아준다는 방사탑



정상에 오르니 표선쪽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오름 아래로 펼쳐지는 곶자왈과 초지는 또다른 볼거리였다. 규모도 크고 능선을 따라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들이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한라산과 그 아래 오름들의 희부윰한 실루엣이 신비스러운 느낌과 함께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역동적으로 휘몰아치는 오름의 능선과 제주 특유의 들판이 시선을 잡아끄는 터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바빴다. 숨가쁘게, 라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마지막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내 입술은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 따라비. 참 아름답구나./자전거여행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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