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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자전거여행기7. 잠은 어디서? 대평리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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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자전거여행기-잠은 어디서? 대평리 게스트하우스에서


대평리는 크지 않은 마을이다. 대부분의 주택은 나즈막하고 규모가 크지 않은데, 이곳도 입소문을 타서인지 큰 건물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었다. 박수기정을 바라볼 수 있는 포구 주변으로 주택이 들어서 있는 터라 숙소를 정하는데는 어렵지 않았다.


자전거여행자의 경우 여행경비를 줄이고자 하는 목적 때문이기도 하고 숙소에서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 여행정보를 얻을 목적 때문에라도 게스트하우스를 많이 이용한다. 말이 거창해 게스트하우스이지 소박한 형태의 민박이 약간의 진화를 거친 숙박시설이라고 보면 된다.


대평리는 제주에서 단위면적당 게스트하우스의 수가 가장 많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골목 저 골목 게스트하우스를 알리는 안내판이 많았다. 대충 확인한 것만도 약 다섯군데가 넘었다.


곰씨비씨, 이응, 티벳풍경…….


제주의 게스트하우스는 여러곳 묵어보았는데, 숙소 주변이나 내부를 카메라로 사진 찍을라치면 가끔 운영자에게서 듣는 이야기가 있다. 혹시 인터넷상에 소개글을 올리더라도 너무 거창하게 포장하지 말아 달라는.


이유는 너무 잘 포장된 사진이나 후기를 보고 방문한 손님이 실망하는 표정을 지을 때면 그렇게 몸둘바를 모르겠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맞다. 게스트하우스는 소박한 곳이 대부분이고 개인적으로 소박하여야 한다고 본다. 이 아름다운 대평리에 반듯하고 거창한 숙박시설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박수기정은 어쩌고 아름다운 파밭은 또 어찌되겠는가? 


대평리의 많은 게스트하우스 운영자들은 이 풍경을 해치지 않으려고 되도록 기존 주택을 개조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무색케 하는 흡사 도회지 모텔을 흉내낸듯도 하고 우주선이 불시착하여 패대기 쳐진 듯한 우스꽝스런 건물이 새로 올라가고 있는데, 참으로 안된 일이다.


반듯한 숙소는 서귀포에 차고 넘치니 원하는 사람은 그곳을 찾을 일이고 대평리는 소박한 이들의 몫으로 남겨두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곳저곳 눈치만 살피다가 입구의 자전거가 눈에 띄는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개가 낯선 사람 보고 짖었다. 계세요?를 몇번 외쳤더니 주인장이 나왔다.



- 자전거여행자인데 하룻밤 묵어가도 될까요?


- 되기는 되는데, 혼자도 괜찮겠어요?


그랬다. 11월 중순을 살짝 넘은 시점의 제주는 이른바 비수기였다. 손님이 나뿐이어서 심심하거나 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인지, 아니면 통상 장사가 잘 안되는 영업장의 운영자가 그렇듯 심사가 괜히 꼬여서 툭하고 던지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대해 엉뚱한 기대가 많은 사람들이야 저녁 바베큐 파티에서 혹시 생길지도 모를 썸씽을 위해서 소년소녀들이 흘러넘치는 곳을 찾을지 몰라도 나야 그런류를 에저녁에 졸업한 마당이었다. 숙박비를 치르고 간단한 주의사항을 들었다. 제주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의 경우 숙박비는 대부분 이만원 안밖이다. 나는 운영자에게 당부했다.


- 추위 안타니 난방을 하실 필요없어요.


- 그래도 조금이라도 해야죠. 밤엔 추워요.


- 아닙니다. 육지 있다가 제주 오니 덥네요.


그렇게 춥지도 않고 달랑 한사람인데 온방을 덮히려고 연료를 태우는 일을 벌일 수는 없었다. 더더군다나 제주의 이런 시골에는 도시가스가 없어 가스통 점검하기가 만만찮고 건물이 오래되어서 단열이 부실하여 우풍이 세다. 해서 겨울이면 난방비가 적잖이 들어간다. 


유시민 선생이 강연에서 한 이야기인데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그 일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 하더라도 어떤 대접이나 반대급부가 우리에게 돌아오기를 기대하지 말 것이며 설령 알아주지조차 않는다 하더라도 섭섭해하지 말자, 라는 말이 떠올랐다.


주인장은 나를 꽤나 이상한 사람이네, 하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알아서 하시라는 말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이날은 영상 십오도를 넘어가는 날이여서 정말 춥지 않았다.



넓은 방을 혼자 독차지 하다니…… 제주를 다닌 후로 처음 있는 일이어서 흡족하였다.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마치 동네주민이라도 된냥 게스트하우스 주변을 둘러보았다.


매일 보는 사람이야 처음 마음 같지 않겠지만, 나같은 여행자에게 대평리는 참 평화로운 곳이었다. 들리던 풍문과 다르지 않아서 좋았다.


게스트하우스 내부


휴식공간







산책하고 저녁도 먹을겸 해서 숙소를 나서니 해가 떨어지는 시각의 박수기정은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식사를 할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크지 않은 동네라 유명 관광지처럼 식당이 많지는 않았다. 한식을 먹을 만한 곳이 두곳, 피자집이 하나, 분식집이 하나, 횟집과 돼지고기구이집도 있었다. 혼자 나선 여행이라 용왕난드르 향토음식체험장이라는 간판을 보고 쓰윽, 들어서니 배가 고팠던 탓도 있었겠지만 여느 식당과는 차원이 다른 음식냄새가 났다.


음식냄새에서 정갈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근래에 크게 없었는데 순간 회가 동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근처 물고기 카페에서 촬영을 하던 방송국 사람들이 미리 단체예약을 해놓는 바람에 나에게는 자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어 찾아간 분식집도 이날 크게 손님이 없어서인지 음식이 나오기까지 제법 기다려야 했다. 음식은 크게 내 입에 맞지 않았으나 서빙을 하고 있는 마음 착한 청년에게 정신이 빼앗겨 생각에 없던 파전에 제주 유산균 막걸리까지 한잔 하고 말았다.


피곤하던 몸에 막걸리가 들어가니 심신이 한꺼번에 이완되었다. 숙소 거실에 앉아 마음 착한 식당 청년이 먹으라고 준 귤을 까먹었다. 그러고보니 올해 처음 먹어본 귤이었다. 도회지로 팔러 보내는 귤은 새척과 왁싱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깨끗하고 반짝반짝하는 것을 더 좋은 것으로 알고 소비자들이 비싼 값을 치르니 생산자들도 어쩔 수 없단다. 오히려 이렇게 상처 있고 덜 반짝거리는 귤이 제주에서는 더 인기다. 귤껍질이 무척 얇아 까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제주에서의 첫날은 새콤달콤한 귤맛이었다.


마을 나갔던 주인장이 삽작으로 들어서자 동네의 개들이 너도나도 짖어댔다. 개소리가 잦아들자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올레길 8코스 따라 서귀포로.


잠자리가 바뀌었는데도 혼자여서인지 잠을 푹 잤다. 이틑날 일어나니 쌓였던 피로가 온데간데 없었다. 어제 사두었던 음료수와 비스킷으로 아침을 간단하게 떼운 다음 길을 나섰다. 대평리의 해안가는 올레길 8코스가 지나가는 길목이다. 큰 차가 지나다니기에는 약간 폭이 모자라지만 자전거가 다니기에는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들어온 길로 다시 나가기는 뭐해서 올레길을 따라 서귀포로 가기로 하였다. 숙소를 나오니 바다공기가 시원했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자꾸 뒤돌아 보게 만드는 대평리였다. 시멘트 포장된 올레길을 따라 자전거타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올레길을 알리는 표식이 군데군데 보이는데, 디자인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의미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삼차원 구조물이 오히려 도움이 안되니 경험의 부족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서귀포쪽에서 출발한 올레꾼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길을 잘못들지는 않았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다. 이전에는 모두 일주도로인 1132를 타고 갔던터라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장점은 있었다. 그러나 차량의 질주소리도 없고 풍경도 좋아서 시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코스도 괜찮겠다.


올레길 너머 한라산이 보인다.


낚시꾼들


한라산에서 흘러내려온 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논짓물에 다다르자 그 위로 중장비가 지반을 다지는 소리로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대규모 위락단지가 조성중이었다. 그 모습이 사뭇 위압적이어서 입바른 소리도 쑤욱 들어가게 만들었다.


많은 생각이 들지만 읽는 사람들이 각자 판단해 주기 바란다.



얼른 벗어나고 싶어서 중간에 큰길 다리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탔다. 약간 더 가서 우회하면 자전거를 타고도 일주도로 1132 큰길로 나갈 수 있지만 잠시 들고 걸었다.



논짓물이 있는 하예동에서 1132 일주도로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미개통구간이다. 해서 공사차량만 가끔 드나들뿐 한적했다.



제주를 개발(?)하여 지상천국(?)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제주땅이 더는 남아나지 않을 정도가 될 때까지 도로도로도로 또 새도로를 놓고 건물건물건물 새건물을 올릴 모양이었다. 길은 지금도 차고 넘치는데……. 세상만사 정도의 문제 아니겠는가? 너무 과해서 좋을 것이 뭐가 있겠나 싶다.


근자엔 외국자본들도 한몫 거들겠다고 나섰다니 얼마나 많은 제주의 땅이 파헤쳐질지 두고볼 일이다.




잠시 달리니 중문관광단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나왔다. 다시 길을 선택해야할 시점이었다./자전거여행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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