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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공작소통신

제주자전거여행기6. 산방산 지나 대평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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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자전거여행기-산방산 지나 대평리로


자전거로 여행을 다닐 때 방향을 잃지 않으려면 최종목적지와 중간의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지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가령 지금 있는 위치인 오설록에서 대평리를 간다면 그 중간의 유명한 관광지나 관공서를 미리 확인하고 기억한 다음 달리면서 이정표를 확인하며 방향을 잡아 나가야 길을 잃지 않는다.


나는 서광리사무소, 산방산, 안덕계곡, 이렇게 세곳을 미리 머리에 염두하였다. 최단시간으로 대평리를 가자면 이런 루트가 가장 빨랐다. 자전거로 다니는 여행의 한가지 단점은 동력이 사람의 힘이다 보니 아주 세세하게는 둘러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가 지고 체력은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볼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빨리 숙소를 찾아가 식사를 하고픈 마음이 간절해지기 쉬워서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제주의 경우 해안도로를 달리거나 숙소에서 같은 자전거여행자들을 만나 동행하기 쉬운데, 다른 사람들의 일정이나 의견을 들어주다 보면 정작 자신이 가고싶었던 장소는 건너뛰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내게 대평리는 그런 곳이었다.


지난 봄에도 그랬다. 수월봉을 지나 한적한 제주의 서쪽바다를 달리고 있는데 자전거여행자 둘을 만났다. 두 사람도 서로 지인이 아니고 제주 첫날 숙소에서 우연히 만나 같은 자전거여행자끼리 함께 다니자 의기투합하여 달리고 있다고 하였다.



두 사람은 이십대 남녀였고 자전거 한대는 대여한 유사엠티비, 한대는 스트라이다였다. 나이대나 자전거의 조합이 어울리지 않았으나 이 때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가이드를 자처하며 두 사람을 앞에서 끌었더랬다.


돌이켜보니 스트라이다를 가지고 온 청년이 따라오느라 고생을 꽤나 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전 사진을 부러 올리는 이유는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달리다보면 이런 풍경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제주 서쪽 바다의 약간 심심하던 풍경에 질릴 때가 되면 언덕 하나를 만나게 되고 살짝 숨이 가쁘다 싶을 정도로 힘을 빼고 났을 때 앞이 훤하게 열리며 느닷없이 나타나는 산방산의 풍모는 저절로 감탄을 터뜨리게 하였다.


젊은 남자 여행자가 흥분해서 떠들었다.


- 와, 정말 좋습니다. 깜짝 놀랄만한 풍경이네요.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분명 이년전에 왔을 땐 이런 거 못봤는데…….


내가 물었다.


- 그때는 단체로 관광버스 타고 다녔죠?


청년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동차 이외의 수단으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말을 자주 듣는데 아마도 자전거와 버스에서의 눈높이가 달라서 그럴 것이다. 그리고 빠른 것을 추구하다 보면 과정은 무시되기 십상이다. 해서 과정은 사라지고 포인트만 남으니 느끼는 감동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왼쪽에는 산방산 가운데 박수기정 그 뒤로 먼데 한라산이 보인다.


송악산


산방산


대평리는 산방산을 지나 다시 일주도로 1132로 자전거를 올려 한동안 가다보면 안덕계곡이 나오는데, 안덕계곡을 지나면 한눈에 드러나는 마을이다. 지난 봄에는 여러가지 일정이 꼬이기도 했고 두사람의 동행이 생기는 바람에 그들의 일정에 따라 서귀포까지 가야 했으므로 대평리는 건너뛰게 되었던 것이다.


이야기가 옆길로 새는 느낌이지만 이왕 나왔으니 하고 넘어가야겠다. 


일주개념의 해안도로 위주로 제주를 달렸을 때는 거의 매번 동행이 생겼더랬다. 낯선 곳에서 동행이 생기면 여행자 입장에서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지만, 자전거여행자라면 동행을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이 몇가지 있다. 일단 라이딩 실력이 엇비슷해야 하고 장비도 비슷한 장르의 자전거여야 한다. 그리고 제주여행의 경험이 적으면 적은 사람끼리 많으면 많은 사람끼리 동행을 하는 것이 좋다.


약간이라도 이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과감히 헤어져 각자의 갈길을 가는 것이 현명하다.



여러모로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의지하다가도 한나절 지나다보면 코스에서부터 먹는 거 하나까지 의견 조율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요즘 사람들의 개성이야 그야말로 천차만별 아니던가. 오지랖과는 담을 쌓고 사는 나의 경우에도 자전거여행 초보자들의 이런저런 요구를 다 받아주기 힘들었다.


일정이 짧은 둘을 고려하여 조금 단축된 길로 인도하면 잠시 쉬는 시간에 바다가 보고 싶어 제주 왔는데 자꾸 큰길로 가면 어쩌냐, 하고 하소연이다. 지금 이 구간은 해안도로가 끊어져 있어 내려가도 다시 올라와야 하니 의미가 없다고 설명을 해도 영 못미더운 눈치다. 그러면 천천히 여유있게 다니라고 하면 또 아니다, 같이 가겠다며 따라붙었다. 


식당에 들어가 종업원이 바쁘다 해서 음식주문을 같은 걸로 미리 시켰더니 화장실에 갔다가 늦게 들어와서는 나는 이런 거 안먹는데, 하며 개가 풀 뜯어 먹을 때의 인상으로 수저를 들고 있으면 괜히 마음 한 구석이 헛헛해지기도 하였다.


이래서 어른 노릇 하기가 힘든 거구나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어서 이제는 어쩌다 만나도 살짝 인사 정도만 하고 지나치게 되었다.


어찌되었건 이제 나도 제주에서 만큼은 제법 자전거여행의 기술자 반열에 든다고 자부하는 입장에서 이번 여행에서는 대평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오설록에서 산방산 방면으로 내리막을 신나게 달렸다.


산방산 가는길


지방도1132로 회귀, 길옆으로 산방산이 있다.


오설록에서 산방산까지는 길이 몇갈래 나뉘어 지는 구간이 있어 도로표지판을 자주 봐야 하지만, 길은 내리막이어서 힘들지 않았다. 산방산을 지나 안덕계곡쪽으로 나아가는데 앞에서 요상한 소리가 들린다.


- 언니! 내가 언니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 자전거 확 던져버리고 싶다. 아이고!



이십대 초반의 앳된 아가씨의 입이 상당히 거칠었다. 상황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지인의 추천으로 제주 자전거여행을 홀로 나섰는데, 지금쯤 엉덩이며 다리며 자기 몸이 아닐 터였다. 수고하신다, 인사하며 지나치려는데 말을 걸어온다.


- 저기요. 서귀포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아세요?


나는 이정표의 서귀포까지 남은 거리를 확인했다. 이십킬로미터 남짓 남았다. 이 정도면 타는 사람의 능력을 고려해서 대충 계산이 나왔다. 단순하게 계산하는 방법은 한시간에 15킬로미터 정도 간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 한시간 반 정도면 서귀포에 갈 수 있어요. 안내판의 지명은 서귀포시청사 기준이니까 다른 관광지는 더 가깝습니다. 서귀포 가기 전에 오르막이 큰 게 있으니 거기서 너무 좌절 마세요. 끌고 걷고 해도 해떨어지기 전에 서귀포에 분명히 다다를 수 있으니 용기 잃으면 안되요.


하고는 웃었다.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이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 아침 아홉시에 제주에서 출발해서 여기까지 오는데 지금 엉덩이도 아프고 허벅지도 아프고 오르막이 나오면 힘들어서 끄느라 몸이 분해가 되는 느낌이에요. 처음엔 좋았는데 갈수록 힘이 너무 드네요.


평소에 자전거를 타지 않던 사람이 그것도 여성이 하루에 이 만큼 탈 수 있다는 예가 될 것 같아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대부분의 초보 자전거여행자들은 산방산 근처에서 라이딩을 멈추고 일박 하는 경우가 많다. 자전거 타는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서귀포나 표선까지 가서 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어린 여성의 경우 내일은 자전거 타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이날은 바람도 없었고 크게 오르막이 없는 해안도로 위주여서 첫날 너무 무리를 해버린 탓에 그렇다. 체력도 체력이거니와 근육이나 엉덩이의 통증으로 자전거 안장에 앉는 것조차 힘드니 중간에 포기하기가 십상이다.


자전거는 대여한 것이었는데 7단 하이브리드 자전거였다. 아마도 앞변속기에 대한 개념을 교육하기가 어려워서 제일 간단한 형태의 자전거를 대여점에서 추천하였던 것 같았다. 대여료야 삼천원이어서 부담스럽지 않지만 처음 나서는 자전거여행이라도 사전에 앞뒤변속기 조작요령을 숙지하고 21단 정도는 되어야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자전거여행을 지속할 수 있다.


이 나이 또래 여대생 둘이 24단 유사산악자전거로 일주를 성공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직장인 삼십대 남자는 삼분의 일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대여한 자전거를 반납하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참고로 하였으면 한다. 첫날 너무 무리하지 말 것. 변속기조작 요령은 충분히 숙지할 것.


어린 아가씨를 먼저 보내고 나는 대평리 초입의  잠시 들러볼 만한 안덕계곡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큰길 옆이라 눈에 잘 띄었다.





드라마 촬영지라 유명세를 탄 곳이어서 적잖이 기대를 했다. 이곳 역시 명성에 비해 크게 감흥이 없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인데, 계곡치고는 물이 맑지가 않아서 그랬다.




내 앞에 서울말씨를 쓰는 젊은 여성들이 먼저 계곡을 구경하고 있었다. 셀카봉을 동원하여 동영상까지 찍어대는 폼이 확실히 아이티 모바일 이런쪽의 감각은 영상보다 활자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못따라갈 것 같았다. 블로그에 여행기 쓴답시고 용을 쓰며 자판을 두드리면서도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서울말투의 미덕은 역시 적당한 억양과 데시벨 그리고 간결한 끝맺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때문인지 여성 세사람이 모여 있어도 계곡이 시끄럽지 않아 좋았다.


다만, 대화중에 욕의 비중이 높았다.


씨바, 존나. 


따라해보니 내가 하면 추하게 들렸고 청춘들이 하니 들어줄 만하였다. 언어마저 비평등하여서 혼자 웃었다. 속으로.






계곡을 둘러보는데는 채 십여분도 걸리지 않았다. 입구에 잠궈 놓았던 자전거에 다시 올라 대평리 가는 마지막 오르막을 올랐다.



오분 남짓 오르막을 지나자 이내 내리막이 시작되었고 뭔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까지 제주를 다니면서 동네 전경 자체가 이렇게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곳 대평리가 언덕 너머에 있었다. 나는 자전거의 브레이크를 급하게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자전거를 대놓고 노래를 불렀다. 자전거여행 나오면 늘 흥얼거리는 노래다.


- 하지만 말야 아무리 나쁜 일이라도 끝이 있는 걸 생각하면 좋은점 하나쯤은 있어. 툭툭 털자 별일 아닐 거야 그냥 웃고 나면 결국 같은 하루일 뿐 길가에 돌맹이를 차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넘기자 이젠 가자 버스를 잡아야지.






자전거는 마을 아래까지 내려갔고 포구쪽엔 잘생긴 박수기정이 자전거여행의 기술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참으로 잘생긴 벼랑이도다.








대평리를 실컷 구경하고 나서 늦가을 오후의 바다를 본다. 조금씩 기울어져 가는 햇빛에 윤슬이 아른거린다. 고기잡이 나갔던 배는 포구로 돌아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렇지, 모든 배는 돌아오는 거였지. 그 모습을 오래 응시하고 있자니 여행자의 눈은 멀어버릴 것만 같았다./자전거여행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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