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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공작소통신

제주자전거여행기4. 시계반대방향으로 애월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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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자전거여행기-시계반대방향으로 애월을 향해.


흥청이던 배안이 고요해지고 선박의 엔진작동음이 밤새 미세하게 이어졌다. 미세한 진동외엔 배가 흔들리지 않으므로 배안의 사람들은 정작 이곳이 바다인지 뭍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환경이 바뀐 탓이라 자다 깨다 하였다.


멀미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된다. 바다를 달릴 때는 오히려 흔들림이 덜하고 약간의 불편함은 제주항에 가까워질수록 심해질 수 있다. 멀미가 심한 사람이라면 배가 항구에 완전히 접안하기 전까지 선실 바닥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괜히 서서 움직이다보면 배의 흔들림을 더 느끼게 되어 배멀미를 할 수 있다.


아무려나 여섯시가 조금 넘어가자 파라다이스호가 제주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배의 흔들림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승무원이 삼십분 후면 제주항에 접안할 예정이라는 안내방송을 하였다. 


접안이 이뤄지고 안내방송에 따라 출입구쪽으로 나와 자전거를 찾았다. 제주는 아직 잠에서 깨어있지 않았다.



이날은 승객이 그리 많지 않아 모두 하선하는데 채 오분이 걸리지 않았다. 목포에서 배를 탔을 때는 단체관광객에 수학여행객까지 근 삼백명이 넘는 인원이었는데도 모두 배에서 벗어나는데 이십분이 걸리지 않았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단체관광객들은 대기하던 관광버스로 향했고, 배의 후미가 열리더니 지게차가 빠르게 움직이며 화물을 빼내었다. 사위가 너무 어두워 자전거에 패니어를 설치하면서 잠시 어정거렸다.


조금씩 날이 밝아지자 제주항 4번 부두 출구쪽으로 자전거를 몰고 나가 시계반대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다. 몇분 가지 않은 거리에 제주연안여객선 터미널 건물이 있다. 이른 시간이라 영업은 하지 않아도 관광객들을 위해 개방을 해두고 있는데, 여행용 지도를 구하고 화장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여행안내 데스크쪽에 여러가지 지도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특정 관광지 위주의 지도보다는 자전거여행자의 경우 도로사정이 자세하게 안내되어 있는 지도가 유용하다. 펼치면 한눈에 들어오므로 직관적이어서 활용도가 꽤 높다. 숙소에서 다음날 동선을 짤 때도 유용하고 급할 땐 문서만한 것이 없으므로 한부쯤 챙겨두는 것이 좋다.


제주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우리땅이다. 명백히 섬이지만 꽤 넓어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육지와도 같다. 제주에서 서귀포로 횡단도로를 넘어가면 좁은 듯하지만 일주도로를 따라 한바퀴 빙글 돌려면 이백킬로미터에 육박하는 상당히 넓은 곳이다. 바다가 가까워 지극히 낮은 곳이기도 하고 우뚝한 한라산이 있어 높은 곳이기도 하며 별다방이 있어 도회이기도 하지만 들판에 말이 방목되어 있는 농촌이기도 하고 한치어획을 위한 배가 밤바다를 밝히고 있으니 어촌이기도 하다. 모국어로 소통하기에 불편하지 않지만, 작심하고 늘어놓는 토박이들의 제주말은 못알아먹기 일쑤이니 흡사 외국과도 같다.


해서 한 번의 방문으로 제주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 갈 수는 없다. 그것이 자동차를 빌려서 다닌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도보나 자전거여행이라면 더 말해봐야 뭐하겠는가.


자전거여행이 처음이라면 한 번에 크게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해안도로 위주와 일주도로(지방도1132)를 따라 제주를 한바퀴 빙글 도는 코스를 추천한다. 나의 경우 처음이 아니므로 사전에 별도의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포스팅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한동안 보지 못했던 애월의 바다가 보고 싶어서 시계반대방향으로 자전거의 핸들을 돌렸다.


제주항이든 제주공항이든 용두암을 찾아가서 해안도로를 따라 시계반대방향으로 쭈욱 나아가면 아름다운 바다를 내내 오른쪽에 두고 달릴 수 있다.




용진교다리에서 바라본 항구


동한두기쪽 바다



용두암


용두암에서 보이는 라마다호텔쪽 바다


동네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용두암을 찾았다. 소금기 머금은 바다바람이 세게 불었다. 이 정도는 제주에서는 흔한 바람이다. 달아오른 해가 동쪽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떠올랐다. 제주를 한바퀴 도는 일주의 경우 해안도로를 위주로 달리는 것이 좋다.


그러나 해안도로가 백퍼센트 이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지방도 1132를 불가피하게 이용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일주도로라고 간단히 부르는 1132는 제주사람들이 일상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도로이다 보니 해안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고 상당히 넓은 도로여서 대형화물차가 빠르게 달리는 도로다. 물론 옆에 자전거도로가 있어서 안전에 그렇게 위협은 되지 않으나 옆에서 큰차가 쌩쌩거리며 달리고 있는 터라 소음만으로도 적잖이 스트레스가 된다.


불가피하게 1132번 도로를 달리다가도 안내판에 해안도로가 있다는 표시가 보이면 그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자전거여행은 물론이고 드라이브 삼아 자동차로 다니는 사람에게도 좋은 선택이다.


나는 일정의 여유가 있었으므로 평속 13킬로미터를 유지하며 중간 중간 좋은 경치가 보이면 사진도 찍으면서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제주공항 옆을 끼고 도두동 가는 해안길


제주를 대표하는 소철과 워싱턴 야자수, 이호테우해변


애월해안로



자전거여행자라면 제주를 찾았을 때 제법 인상에 남았을 제주극동방송 주변의 풍경을 접하자 나는 몹시 기분이 좋아졌다. 변화는 조금 있었지만 그래도 용케 기억속의 옛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던 터라 그랬다. 무엇보다도 이번 여행에서 중점을 두고 있던 것이 오름과 억새여서 더욱 반가웠다.



갓길도 없고 이차선 해안도로라 자전거 타기에 불편할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큰차나 바쁜차들은 죄다 넓고 빠른 1132를 달리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덩달아 황금빛이 되어버린 억새가 여행자를 환영하듯 몸을 흔들어대었다. 





제주극동방송 근처에서 시작되는 애월해안도로는 딱히 어디가 좋고 어디가 좋지 않다는 평이 무의미한 자전거 타기에 참으로 좋은 길이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연속으로 이어지니 적잖은 자전거여행자들이 추천을 강하게 하는 코스다. 몇구비 고개를 넘어 앞으로 달려가니 제주 특유의 적채밭이 나타났다. 애월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자전거를 평소에 얼마나 탔느냐와 당일 바람의 세기가 어느정도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크게 어렵지 않은 코스다. 등에 땀이 나기도 전에 자전거는 애월에 닿아 있었다.


제주의 밭작물, 적채




애월, 하고 발음해보기만 하여도 괜히 납작 엎드려 한바탕 통곡하고픈 바다를 앞에 두고 나는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았다.



대답 대신 철썩이는 파도소리만 귀에 쟁쟁했다. 소길댁 이효리가 좋아한다는 애월의 해변가엔 잘 기억나지 않아서 더욱 그리운 그들의 희미한 실루엣만이 출렁이는 파도위로 희미하게 떠오를 뿐이었다./자전거여행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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