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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공작소통신

제주자전거여행기2. 항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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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자전거여행기-항구에서


평소에 타던 자전거를 가지고 제주로 가는 방법은 비행기로 가는 편이 가장 간단하다. 자전거 포장에 부담을 느끼는 여행자가 있을 것이나 크게 고민할 필요없다. 김포공항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공항내 수화물보관소만 찾아가면 된다. 이미 잘 숙련된 관계자가 큰 박스를 준비해두고 이용자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포장에 걸리는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니 넉넉잡고 한시간 정도 시간 여유를 두면 된다.


비용은 이만오천원.


박스는 제주공항 수화물보관소에 맡긴 다음 여행이 끝나고 다시 재활용하면 비용을 일부 줄일 수 있다. 이 비용마저 줄이고자 한다면 자전거점에서 폐기하는 포장용 박스를 얻어 직접 작업을 해야 하는데, 자전거정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크게 어려운 부분은 아니나 역시 공항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이 있으므로 이것저것 생각한다면 크게 이익이 있지는 않다.



나는 공항 대신 항구를 택했다.


그러고보니 자전거로 제주를 찾을 때는 늘 배를 탔다. 십여년전 일을 하러 제주로 갈 때도 자전거가 옆에 있었다. 지금처럼 저가항공사가 일반화되기 전이기도 해서 고민이 적잖았는데 좀 천천히 가면 어떠랴, 하면서 부산에서 출발하는 코지아일랜드호에 올랐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제주, 하면 그냥 의례 배타는 재미가 떠올라 목포에서도 탔고 성산에서 장흥으로 배를 타고 나오기도 하였다.



작년 가을이었던가?


제주항에서 내려 1100도로를 향해 달려가는 길가에 플래카드를 보았다. 인천과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이 기존 오하마나호에 세월호가 추가되어 하루 한 번씩 운항하게 되었으니 경축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군, 저 배도 날을 잡아 타봐야지, 하였다. 나는 세월호를 처음엔 sea wall, 씨월호로 잘못 알아먹었다. 


내심 바다의 장벽? 배이름 한 번 잘 지었구나 하였는데, 장벽같이 거대하던 배가 이제는 불귀의 배가 되고야 말았다. 갈 거면 배 혼자 갈 일이었다. 제대로 밝혀진 것이 아직 미진한데 망각의 바다 그 먼데 희부윰한 안개속으로 그 배는 사라졌다. 동시에 아무 일 없이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을 어린 영혼들마저 함께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 일이 제주 가는 길에 항구를 다시 찾게 된 이유 중 일부가 되었다.



아무리 관광 비수기라 하더라도 부산연안여객선 터미널은 적막했다. 워낙 연안여객선의 이용객이 줄어들어 폐쇄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은 웬만한 큰 섬은 연륙교가 놓여지다보니 자동차를 이용하지 굳이 선박을 이용하는 손님들은 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노선이 달랑 하나 남은 것이다.


부산에서 제주.



표를 구매하고 시간을 확인하니 탑승시간까지 한시간 정도 남았다. 여유가 있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터미널 위층으로 올라가면 부산항의 다양한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바다 비린내가 후각을 자극하니 이제 제법 여행을 시작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제주행 서경파라다이스호


터미널전망대에서 바라본 영도


컨테이너와 배를 비교해보면 선박의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부산에서 월,수,금요일에 출발하는 서경 파라다이스호의 모습이다. 전체 길이 124.95미터 좌우 폭 23미터 총톤수6626톤의 큰 여객선이다. 경험이 없는 독자들은 쉽게 감이 오지 않을 수 있으나 이 정도 아니 그 이상 규모의 선박과 훨씬 작은 쾌속선을 비교해 타본 사람이라면 여객선의 안정성에 의심이 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해서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초기 언론의 보도중 대부분을 나는 믿기 어려웠다. 선무당들이 굿판을 벌린 것과 흡사하였다.


화물이 적재되는 선박의 후미


일반적인 경우에 자전거는 개찰을 마치고 선박의 후미로 접근해 다른 화물이 적재되는 곳으로 가서 직원의 지시를 따르면 된다. 그러나 이날은 좀 해프닝이 있어서 별도의 공간에 자전거를 보관하게 되었다. 이 일은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여객선 터미널과 자갈치는 지척이다. 자전거를 타고 뒷골목을 따라 영도다리에 접근하니 못본 사이 변화가 있었다.





없던 길이 나고 영도다리를 개조하여 다시 들어올릴 수 있는 장치가 생긴 거였다. 47년만에 다시 들어올려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큰 배가 다리 밑을 지나갈 때 충돌의 가능성이 있어 들어올렸던 것을 이제는 옛추억을 위해 일삼아 들어올린다고 하니 재밌는 일이다.



주변에 개발이 이뤄지면서 영도다리 아래 점집의 정취는 예전만 못해 보였다. 이전에는 점집 아래로 막막한 바닷물이 들어차 있어서 점집이 자리잡기는 이만한 자리가 없을 것 같았는데, 그 앞에 번듯한 도로가 생기니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은 몰려올 것이고 이 허름한 점집은 그 변화의 흐름을 버텨내지 못할 것 같았다.





해가 서편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긴 뱃길을 대비해 허기를 달래야 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부산무역회관 뒷골목의 [정가네식당]. 주인장의 성씨가 정씨여서 정가네인지 한 번 들러서 먹고 나면 괜히 정이 가서 정가네인지 모르겠는 허름한 식당을 찾아가 시락국을 시켰다.



눈물겹게 저렴한 3천원짜리 시락국에 쌀밥을 놓아 한술 훌훌 뜨고 나니 기운이 났다. 몹시 저렴해서 이래 팔아 뭐가 남나 싶어 미안하기 까지 하였다.



든든해서 얼굴까지 후끈해진 느낌을 받으며 찬바람 부는 골목에서 다시 항구방향으로 자전거를 모는데 더 먼 대양을 향해 항해를 나서는 젊은 사내 여럿이 해운회사 건물 입구에 모여서 어깨를 부딪혀가며 두런거리고 있었다.


바다냄새가 훅, 하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자전거여행의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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