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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공작소통신

자전거여행의 기술, 함양에서 성삼재 넘어 구례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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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에서 성삼재 넘어 구례로 - 외롭고 높고 쓸쓸한 성삼재.


자전거로 높은 곳에 오르고 나면 때때로 떠오르는 시의 구절이 있다.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의 일부분이다.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성삼재 휴게소의 식당 오른편으로 나 있는 전망대에서 구례방면, 남원방면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시인의 음성을 따라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를 몇번이고 마음속으로 되뇌이고 있자니 옆에서 누가 그런다.


- 젊으니까 좋네. 저리 자전거 타고도 여기를 다 올라오고.


고개를 돌려보니 한참 동생뻘이다. 이 역시 많이 듣는 이야기라 생경하지 않았다.


성삼재에서는 노고단이 지척이다. 해서 많은 등산객들이 여기까지 차로 이동한 다음 걸어서 노고단까지 단풍구경을 하기도 한다. 서너발짝 건너 노년의 신사가 예전에는 저기 대피소까지 차가 들어갔더랬는데 지금은 막아놨네, 하면서 아쉬워하였다.



흰 바람벽 아래엔 외롭고 높고 쓸쓸한 성삼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자전거가 잠시 쉬었다.



성삼재에서 좀 길게 자전거로 달릴 생각이었지만 몸에 무리도 오고 해서 길을 단축하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해서 구례로 방향을 잡게 된 것이다. 성삼재에서 구례까지는 한번의 예외없이 내리막의 연속이다.


자전거로 도로를 달릴 때는 몇가지 조심해야할 것들이 있다. 특히 도로 상태에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길끝의 단차나 패인곳, 맨홀 두껑등도 정상적인 바퀴의 진행에 갑작스런 변형을 주는 요인이므로 라이더가 당황하기 쉽다. 그 중에서도 낙차의 위험이 높은 경우는 아래와 같이 내리막 커브길에 미세하게 깔려 있는 모래가 가장 위험하다.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몸이 기울다보면 미끄러지기 십상이고 브레이크도 무용지물이 되곤 한다. 자전거에서 낙차하면 쇄골 골절이 많이 발생하는데, 넘어지면서 본능적으로 지면을 손으로 짚기 때문이다. 그 충격이 쇄골까지 전달되어 부러지게 된다. 타이밍이 늦으면 몸통으로 지면과 부딪치게 되니 갈비뼈의 손상이 벌어지게 되고 크게 회전하면 화상과 더불어 엉덩이쪽 뼈에 금이 가는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


늘 노면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초행길이면 내리막에선 감속보다 더 좋은 안전수칙은 없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노파심은 접어두고... 자 이제 힘들 것 없는 내리막이다. 


준비 되셨습니까?


고!



남원이나 구례쪽에서 출발해 성삼재 방향으로 오르는 라이더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굴곡을 지나고 나면 얼마가지 않아 천은사 매표소가 나온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받는 터라 이래저래 말이 많이 나오는 곳이다. 좀 희안한 것은 구례쪽에서 올라오는 차량에는 입장료를 받는데, 반대로 나처럼 성삼재에서 구례로 내려가는 사람에게는 별 말이 없었다.


문화재 관람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는 것이라면 올라가나 내려가나 다 받아야 될 것인데 선뜻 이해가 안되는 장면이었다. 나름의 곡절은 있겠거니 하면서도 생각할 여지가 남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리산 아래 첫마을 광의면은 참 아름다웠다. 곧장 구례까지 이어지는 반듯한 길과 풍성한 들판을 바라보며 나아가니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 나왔다.



도로 하나 건너면 구례가 지척인 산자락 끝동네 마지막엔 커다란 정미소가 있었다. 머리며 속눈썹에 허연 쌀겨가루를 뒤집어 쓴 농민들이 못보던 하얀 헬맷을 쓴 자전거 여행자를 보고 흰 이를 드려내며 웃었다.


웃음 만큼 정돈 되어 있는 고을이 구례다. 해는 조금 남았지만 여행을 멈추기로 했다.


번듯하게 잘 차려진 구례의 시외버스 터미널에 들어가 집으로 가는 표를 끊었다.

 


관광지인터라 도회로 나가는 버스는 잦은 편이다.



허기도 지고 시간도 약간 남아 이날 처음으로 제대로된 음식을 먹었다. 메뉴는 터미널 구내식당의 김치찌개. 



좀 이르다 싶은 저녁겸 점심을 든든히 먹고 버스에 올랐다. 차부를 빠져나와 천천히 속도를 높이는 버스 차창밖으로 섬진강과 남도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한동안 바깥을 물끄러니 바라보다가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쌓인 피로에 까무룩 단잠에 빠져들었다.


잠결에 낮에 남원에서 만났던 할머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 여그는 참 깨끗한 동네지... 손수 깨끗하게 심근 것만 팔제. 저그 사과고 감이고 고추고 다 우리 손으로다가 심근단 말이제. 엉뚱한 거 섞들 안해. 난중에 여기 거라믄 믿고 먹을만 허니 꼭 사잡사...


의식이 희미한 중에도 나는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늘 미진한 것이 자전거 여행이었다./자전거여행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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