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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공작소통신

자전거여행의 기술, 함양에서 성삼재 넘어 구례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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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에서 성삼재 넘어 구례로 - 오도재에서 산내면을 지나 성삼재로 가는 길.


오르막에서 한동안 힘을 뺐으니 이제 내리막에서 보상을 받을 차례다. 지리산 국립공원은 경상남도,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동시에 접하고 있는 넉넉하고 우뚝한 지역이다. 해서 오르막의 경사 만큼이나 내리막도 길고 깍아지를 듯 경사가 심하다.


워낙 지역이 넓다보니 많은 자전거 라이더들이 초반에 많은 힘을 소진하여 후반부로 갈수록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 되도록이면 충분한 휴식과 물, 그리고 소화에 부담을 주지 않는 음식으로 허기가 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지리산제일문 너머로 맞은편 지리산의 모습이 거대한 장벽을 연상시킨다.



지자체에서는 경관이 좋은 곳 마다 표지판을 만들어 두어 여행자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게 배려를 하고 있다. 지리산 조망공원 휴게소 나무 데크에 자전거를 기대어 두고 겹겹이 펼쳐지는 산자락을 바라보고 있는데 골짜기 아래 마을에서 주민들이 나누는 대화가 높은 곳까지 들여왔다.


- 성님... 점심 같이 먹게 싸게 올라 오씨요.


- 어이, 알았어. 쫌만 기다리시게.


공기가 깨끗해서인지 주위가 고요해서인지 소리는 꽤 또렷하게 들여왔는데 괜히 정겨웠다.




- 저기, 천왕봉이 어느쪽인지 알아요?


델마와 루이스라는 영화를 찍듯 년식이 오래된 중고차에서 초로의 여성 두분이 내리더니 내게 물어왔다.


- 제가 알기로는 좌측에서 세번째 봉우리가 천왕봉입니다.


- 그렇군요. 자세히 보니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언뜻 기념비도 보이는 것 같네요. 젊었을 땐 저기 걸어서 올라갔더랬지요. 그 땐 사방이 구름천지라 아무것도 안보이고 아득했더랬는데. 이제 여유가 좀 생겼다 싶으니 몸이 허락치 않게 되었네요. 그 땐 하도 고생을 해서 옷이며 가방이며 온통 진흙범벅을 하고선...


다니다보면 이렇게 나이가 제법 있는 여성들이 영감님들은 제쳐두고 여행을 다니는 일을 자주 목격한다. 산을 바라보는 눈가의 주름이 지리산의 골짜기 만큼이나 깊어보였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는 명성은 허투루 생긴 것이 아니었다. 대기가 깨끗한 가을이라는 계절탓도 있었지만 풍경의 기본이 워낙 뛰어난 곳이다보니, 나는 긴 내리막을 즐기지 못하고 중간중간 브레이크를 잡지 않을 수 없었다. 



해발 500미터가 넘는 산간지역에도 이렇게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터를 잡았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은 공간이 있는 곳엔 어김없이 돌을 쌓았고 한 줌 쌀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어떤 수고 마다치 않았을 것이다. 


알아보니 요즘은 쌀 재배 면적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세월이 변한 탓이다. 


급속히 진행되는 농촌의 고령화로 이제 더는 이 높은 곳에 물을 대고 벼를 심을 사람이 부족한 형편이 되고 말았다.



자전거는 마천면으로 접어들어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지리산 자전거 여행에 있어 힘든 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큰 산봉우리를 하나 넘고 나면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서 길고 가파른 산고개를 다시 올라가야 하니 힘이 두배로 들게 된다.


마천면에 들르니 제법 모양새를 갖춘 가게가 있어서 카스테라를 샀다. 옆에 자장면집이 있었으나 마음도 급하고 기름진 음식이 들어가면 탈이 날까 두려워 간단히 요기만 하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마천면에서 산내면까지 가는 도중에는 중간 중간 지리산 등반객들을 태우고 버스들이 산위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그런 길로 잘못 따라가면 안된다. 길이 끊어지고 자전거로는 다닐 수 없는 등산로가 나 있을 뿐이다.


마천면에서 전라북도 남원땅에 당도하여 길상사 지나 산내 초등학교를 확인해야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초등학교 한 구석에 [지리산 처럼 큰 사람이 되렵니다.]로 간결하게 맺은 한 줄의 문장이 눈길을 끈다.


기념물이 99년도에 세워졌다 하니 이 장한 문장을 쓴 어린이는 지금쯤 어디에서 어떻게 큰사람으로 큰일을 하고 있을까?


학교를 집마당 삼아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서 지리산의 맑고 큰 기운이 느껴져서 듣기에 좋았다.



열매의 무게를 주체 못해 가지가 휠대로 휜 사과나무에서 짙은 사과향이 도로까지 넘보고 있었다. 남원의 작은 마을을 지나자, 산은 다시 본격적인 오르막으로 자전거여행자를 성삼재로 인도하고 있었다.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나를 환영하는 듯하였다.




로드킬을 주의하라는 경고 표시가 눈길을 끈다. 길은 외길이고 경사도가 높은 오르막이 10킬로미터 이상 길게 이어진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조금씩 단풍의 빛깔이 짙어지고 있었다.


야영지와 반선시외버스터미널 부근이 조금 평지이고 다시 달궁삼거리까지 오르막은 길게 이어졌다.





달궁삼거리에 도착해 길을 왼쪽으로 잡으면 다시 도 경계가 달라진다. 이제 전라북도에서 전라남도로 넘어가는 것이다. 왼쪽으로 가면 성삼재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정령치와 남원으로 가게된다.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까지 잘 찾아왔다면 이제 성삼재는 얼마 남지 않았다. 


물론 오르막은 계속 이어져서 마지막까지 라이더를 숨넘어가게 만든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페달을 밟고 나니 크게 하늘이 열리며 성삼재의 정점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날이 선선했는데도 땀을 한 바가지는 흘렸던 듯하다. 성삼재 휴게소 난간에 자전거를 기대 놓고 크게 숨을 들이마셔 호흡을 가다듬었다.




산 아래는 단풍이 아직인데 해발 천백미터에 이르는 재에 오르니 주위가 온통 붉은빛이다. 헬멧 턱끈의 소금기가 라이딩의 고단함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자전거여행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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