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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공작소통신

자전거여행의 기술, 함양에서 성삼재 넘어 구례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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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에서 성삼재 넘어 구례로 - 지안치와 오도재.


마음 먹은 다음 실행에 나서기까지가 어려워서 그렇지 막상 안장위에 몸을 싣고 첫 페달질을 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는 것이 자전거여행이다. 자전거가 주는 즐거움은 여러가지이다. 그것이 스피드든 다운힐이든 업힐이든 아니면 미캐닉이거나 라이딩 스킬이든 다 나름의 매력이 있다.


언급한 것을 다 더한 것보다 나에게는 자전거여행이 주는 의미나 무게가 더 특별하고 무겁다.


매번 챙기기가 번거로워 따로 준비해둔 여행용 등가방 안에는 펑크정비를 위한 공구와 비상용 라이트, 윈드브레이커 그리고 올해 봄에 꽂고 다녔던 물통과 그 때의 여행지 지도가 가득했다. 그러고보면 꽤 오랫동안 좋아하는 자전거여행을 나서지 못한 처지였다. 어물쩍거리다가는 이렇게 가을이 다 지나가 버릴 것 같기도 하여서 코스만 머리속에 몇번이고 되새겨두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길을 함양에서 성삼재 방향으로 잡은 이유는 여러 라이더들이 언급한 그곳 [지안치]때문이었다. 마치 길이 유혹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코스: 함양 - 지안치 - 오도재 - 마천면 - 산내면 - 달궁계곡 - 성삼재 - 천은사 - 구례

총68.58km


처음부터 구례를 목적지로 정한 것은 아니었다. 성삼재에 올라보고 시간이 남으면 어디로든 정처를 정할 생각이었다. 자전거로 달리는 지리산 코스는 여러갈래로 나뉘는 터라 딱히 정해진 코스는 없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남원에서 출발해 구례, 천은사, 성삼재, 정령치, 인월, 남원으로 회귀하는 코스를 타기도 하고 같은 남원에서 출발해 성삼재 정령치까지 같다가 다시 달궁계곡, 산내면, 마천면, 오도재, 지안치, 인월, 운봉, 남원으로 회귀하는 코스를 타기도 한다. 


재를 여러개 넘어야 하는 마지막 코스가 가장 힘든 축에 속한다.


어디서 출발해도 힘든 건 매한가지이고 지안치를 지날 수 있다. 반드시 함양에서 시작하는 코스를 선택할 이유는 없다. 딱히 장점이랄 것도 없지만 일부러 들자면 일찍 [지안치]를 접할 수 있다는 정도다.



비몽사몽간에 아침 일찍 일어나 헬멧을 쓰고 페달을 밟아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직 함양행 첫차가 출발하려면 십여분 여유가 있었다. 한두번이 아닌 여행길이라 능숙한 걸음걸이와 손놀림으로 버스 뒷바퀴쪽 짐칸을 열어 자전거를 실었다. 대부분의 장거리용 버스의 짐칸은 넓고 높아서 어떤 자전거라도 통째로 들어간다.


변속기가 없는 왼쪽으로 눕히면 핸들바와 페달이 닿게 되는데 흠집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흔들리지 않게 끈으로 뒷바퀴를 짐칸 기둥에 묶어두어도 된다. 지면에 닿는 핸들바와 페달 부분에 장갑이나 양말등 천을 쒸운다는 사람도 있다. 



뭐 좀 긁히거나 말거나, 하면서 자전거를 밀어넣고 이렇게 넣는다는 걸 보여줄 요량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영 마뜩찮다는 투의 음성이 날아온다.


- 자전거 기스 나도 책임 안집니다.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깍두기 머리를 한 기사가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다. 대충 분위기 파악이 되었다. 고가 자전거에 흠집이 났다고 적잖이 항의를 들은 모양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버스 화물칸은 택배도 아니고 화물의 파손까지 버스회사나 기사가 책임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지중지하는 자전거라면 그냥 대중교통은 이용하지 말일이다. 나는 바짝 엎드렸다.


- 아이고, 기사님. 까다로운 사람들에게 안좋은 소리 들었나 보네요. 제 자전거는 흠집 나도 괜찮으니 편하게 운전하세요.


그제서야 낯빛이 좀 펴지며 기사가 한마디 더 보탠다.


- 거, 요새 하도 비싼 자전거가 많아서 영 조심스럽더라고요. 그 자전건 얼마짜리요? 그것도 한 천만원 하요?


- 어휴... 아닙니다. 그냥 생활자전거입니다. 이십만원 이하입니다.


자전거로 길을 나서면 하루에 몇번씩 듣는 이야기이다. 생업에 바쁜이들에겐 자전거의 가격도 흠집 하나에 분개하는 사람들도 모두 일종의 공해일 것이다.



까무룩 선잠에 빠졌다 눈을 뜨니 버스는 작은 읍소재지의 차부에 접어들고 있었다. 함양에 들른지도 그러고보니 손가락으로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다른 승객보다 먼저 내려 자전거를 꺼내고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켜니 공기부터 남달랐다.


터미널 정문을 통과하여 오늘 넘어야할 먼데 지리산의 산줄기를 바라보며 타이어의 공기를 주입하고 있으니 사람 좋게 생긴 시골 촌부가 말을 걸어 온다.


- 자전거 모양새가 영 희안하네. 어디 가시는 길이신가?


- 아, 예. 오도재 넘어 성삼재로 갈까 합니다.


- 엉? 이 자전거로? 힘들낀데. 너무 멀고 오르막도 씨고.


옆에서 중년의 신사가 한마디 거든다.


- 이런 자전거는 비싼 자전거라 힘이 하나또 안든다 캅니다. 안그래요?


자주 듣는 이야기라 낯설지는 않지만 뭐라 할 말이 없어 이럴 때면 겸연쩍어 그저 웃을 뿐이다. 나는 조심히 다니라는 시골 사람들의 응원을 들으며 자전거의 방향을 국도 24번 쪽으로 잡았다.




함양고등학교를 지나 한적한 국도의 가을 풍경을 구경하며 잠시 달리니 [한국의 아름다운 길] 입간판과 오도재 가는 방향의 지방도 1023 안내판이 여행자를 반겼다. 이렇게 체계가 잘 잡혀 있으니 길을 잃을 가능성은 적다.



잠시 숨을 고르고 멀리 넘어야 할 지안치를 바라보았다. 저 지그재그의 지안치가 오르막의 시작이라 생각하니 초반부터 긴장이 되었다. 괜히 산에서 해가 넘어가는 일을 겪지나 않을지.


천천히 자전거는 마을의 입구로 진입하게 되고 아름다운 풍경에 얼마 못가 카메라를 꺼내고 말았다.



집앞에 이런 풍경이 있다고 가정하면 다들 어떤 마음이 드시는가?


넋을 놓고 셔터를 누르고 있자니 농협 물류차를 운전하는 농협직원이 웃으며 손을 흔든다. 작은 길로 마을 어르신의 오토바이가 다가오자 큰차는 조금도 주저없이 후진하여 길을 텄다.


마을에 내려오는 풍습이 이러하니 길옆의 열녀비가 낯설지 않았다.


맑고 깨끗하며 예의를 갖춘 조동마을이었다.



기어비를 가볍게 하고 길을 잘게 썰고 썰어 긴 오르막의 끝에 당도하니 나를 추월해 먼저 관광버스로 오른 사진 동호회 회원들이 대단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이 또한 한두번 겪는 일이 아니라서 역시 겸연쩍어 지는데, 오늘은 이 정도의 오르막은 시작일 뿐이다. 단감 한 알에 행동식 그리고 물을 마신 다음 오도재까지의 긴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은 좌우로 숲이 우거져서 거친 호흡에 맞춰 페달을 밟는 일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끊어질 듯하다가 연이어 이어지는 오르막의 끝에는 [지리산제일문]이 버티고 있었다. 오도재의 정점에 다다른 것인데,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산아래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오도재 정상의 주변에는 화장실과 매점, 주차시설과 주변 경관을 잘 볼 수 있도록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고 들고온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정자가 마련되어 있다. 라이딩의 피로를 풀기에는 좋은 장소였다.


매점에서 사온 캔커피 한잔을 마시며 오르막을 오르느라 흘린 땀을 식혔다. 오를 때는 힘들더니 정상에서 바라보는 먼곳의 봉우리들과 구비구비 산골짜기들이 아름다웠다.


이날은 이 또한 끝이 아니었다. 오르막이든 풍경의 아름다움이든.


길은 오도재를 넘어 전라북도의 경계로 이어지고 있었다./자전거여행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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