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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하는질문

새 체인에는 체인 오일을 도포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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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체인에는 체인 오일을 도포해야 하는가?


이 질문도 역시 오래되고 반복되는 질문이다. 최근 자주 들르는 자전거 관련 커뮤니티에도 올라온 것을 본 적이 있고, 외국 로드바이크 관련 유명 유튜브 채널에서도 거론하는 걸 보았다. 이십년 전에도 자전거 타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곳이면 늘상 하던 논쟁이 아직도 반복되고 있으니 재미있는 일이다. 먼저 이 질문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둘로 나뉜다.


1)새 체인엔 이미 좋은 윤활유가 도포되어 있으니 한동안 타다가 나중에 체인 오일을 도포하면 된다.
2)아니다, 기존 윤활유는 흙먼지가 잘 달라붙으니 완전히 닦아내고 새 체인 오일을 도포한 다음 라이딩을 하라.


[자주하는 질문]이라는 카테고리의 글은 결론을 되도록 빨리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의 답변도 둘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난감해진다. 사실 둘다 맞는 말이지만 억지로 하나만 선택하라면 1)이다. 외국 유튜브 채널 관계자는 2)의 방법을 택하였다. 글 후반부에 소개하겠지만 시마노(Shimano)의 모 관계자는 1)을 선호… 어쨌든 전문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체인관리에 관해서는 다들 자신들만의 견해가 있다.


사실 이천년대 초반 국내 라이더들, 특히 산악자전거 커뮤니티에서는 등유나 기타 용제가 들어있는 용기에 새 체인을 집어넣고 열심히 흔들어 기존 윤활제를 완전히 제거한 다음 건식 체인 오일을 재도포하고 타는 것이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지던 때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비슷한 시기에 자전거관련 큰 행사가 서울에서 열렸다. 그 행사에 외국 미캐닉(Mechanic)들이 국내로 초빙되어 자전거정비관련 강연 후, 이런저런 정비관련 질문을 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이 질문이 나왔다. 새 체인을 씻어내고 체인 오일을 재도포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냐고 질문하니까, 그 외국인들이 하는 말이 몇가지 이유를 들며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대화내용이 자전거 관련 커뮤니티에 파다하게 전해졌고 그 이후로는 2)의 방법이 많이 수그러들었던 기억이 있다. 


쉘던 브라운의 견해와 영향.


당시 그 외국 미캐닉이 어떤 견해를 밝혔는지는 아래 [sheldonbrown.com/chains.html]의 내용 중 [Factory Lube]부분을 살펴보면 된다. 발언 내용이 상당부분 일치하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외의 자전거정비 관련 종사자라면 쉘던 브라운 옹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자전거 정비의 구루(Guru)로 여겨지는 분이니…

 


이 내용을 우리말로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새 체인은 공장에서 그리스–타입 윤활유로 미리 윤활되어 공급된다. 이것은 뛰어난 윤활유이고 체인의 모든 틈새에 침투할 수 있게 제조되었다. 체인과 이 윤활유는 도포하는 동안 예열되어야 한다.

이 공장 윤활유는 그 이후 당신이 적용할 수 있는 어떤 윤활유보다 우수하다. 자, 그렇지 않은… 아래를 보라.

일부 사람들은 이 우수한 윤활유를 일부러 제거하는 나쁜 실수를 한다. 이렇게 하지말라!

공장 윤활유는 그 자체만으로 우중이나 흙먼지 상태에서 타지 않는한 일반적으로 정비기간이 수백마일에 달한다. 새 체인에는 명백히 필요할 때까지 어떤 종류의 윤활유도 도포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이유는 당신이 적용 가능한 어떤 종류의 액체상태 윤활유도(옮긴이 주:원문에는 wet lube, 요즘에는 습식오일로 많이 쓰이는 용어를 쓰고 있으나 의미상 액체상태 윤활유로 옮기는 것이 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공장 윤활유를 희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외국 미캐닉의 답변도 이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모든 분야에는 늘 최고로 꼽히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분의 발언은 영향력도 크고 오래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리 길지 않은 이 쉘던 브라운 옹의 홈페이지 내용이 몇다리 건너고 나니 그의 원래 의도와 다르거나 언급하지도 않은 것까지 살이 붙어 왜곡이 발생하기도 한다. 아래와 같은 주장이 그런것 중 일부이다.


–새 체인의 윤활유가 워낙 좋아 체인 오일 추가 도포 없이 체인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쓸 수있다더라.
–체인의 미세한 틈 사이로는 제조할 때만 윤활유를 도포할 수 있고 나중에 체인 오일을 뿌려봐야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한다더라. 등등...


모두 사실과 다르고 쉘던 브라운 옹의 진의가 왜곡된 것이라 본다. 공장에서 체인 제작시 도포되는 윤활유는 제조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시마노 및 주요 제조사의 경우 점도가 있는 그리스(Grease)류 윤활유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체인 오일보다는 그 효과가 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체인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정도는 아니다. 원문에서 표현되어 있다시피 우중이나 흙먼지가 없는 상태에서 효과가 수백마일 지속된다는 이야기다. 


백마일이 약 160킬로미터이니 원문 표현대로 수백이면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지는 모호하다. 어쨌든 공장 윤활유의 수명이 길기는 하나 한계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고, 라이딩 환경이 안좋으면 그 수명은 더 떨어진다는 것이 정확한 사실이다.


그리스 기반 공장 윤활유는 점도가 높아 열을 가해 잘 도포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놓고, 조립되기 전 체인의 각 파트들을 윤활유에 푹 담그는 식으로 윤활을 마치고 최종 생산에 들어가는 식이다. 따라서 이미 조립되어 사용하던 체인을 공장에서 처럼 전부 분리하여 그리스 기반 윤활유를 재도포 하는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마도 이 내용이 와전되어 체인 오일 무용론 같은 풍문이 퍼진 것으로 보인다.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체인 오일이 체인의 미세한 틈 사이로 침투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모 연구기관(Jason smith–Friction Facts)이 실험을 통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일반 체인 오일이 체인 내부에까지 완전히 침투하는데 일분이나 그 이하의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분야의 선구적인 업적을 쌓고 유산으로 물려준 분의 의견은 존중되어 마땅하다. 다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교조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되겠다. 쉘던 브라운 옹이 세상을 떠난지도 1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위 글을 작성한지는 그보다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간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경험과 연구결과는 브라운 옹의 주장과 다를 수 있다. 기존 공장 윤활유가 반드시 모든 상황에서 다른 체인 오일류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이는지에 관해서는 다른 의견을 가진 현대 전문가들이 있다.


오늘 다루는 질문에 대한 시마노 관계자의 의견을 살펴보자.


자전거관련 웹진 바이크루머와 시마노 관계자가 나눈 인터뷰 내용중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BikeRumour:시마노 체인에 도포되는 체인 윤활유에 대한 시마노의 공식입장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제로 윤활유인가? 아니면 그리스인가? 그리고 체인에 소음이 생기게 되고 재윤활할 때까지 그냥 두는게 최선인가? 아니면 즉시 제거하고 라이딩 전에 재윤활하는 것이 최선인가?


시마노 관계자의 답변은 원문을 다 옮기지는 않고 중요한 핵심만 요약해 소개하겠다.(시마노 북미지역 담당자는 답을 할 때 질문요지 이외의 내용을 길게 늘어놓는 경향이 있다. 원문을 그대로 직역해 옮기는 것이 오히려 이해를 더 어렵게 한다.)


Nick:
•시마노 체인에는 그리스가 도포된다. 체인이 조립되기 전 개별 부품인 상태에서 도포된다.
•이 그리스는 부품시장에서 유통되는 체인 오일보다 마찰을 줄이는데 성능이 더 뛰어나고 수명도 길다.
•나중에 액체상태 체인 오일을 쓰는 이유는 체인 분해없이 미세한 부분까지 윤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새 체인을 설치한 경우라면 공장에서 도포한 그리스를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다. 다른 오일을 도포하지 않고 타다가 그리스가 수명을 다하면 그때 일반적인 체인 오일을 도포하라.
•흙먼지가 많은 상태에서는 디그리서가 살짝 젖어있는 천으로 체인 표면을 닦아주면 그리스에 오염물이 달라붙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답변에서 느꼈겠지만, 이 관계자 역시 쉘던 브라운 옹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로 보인다. 다만 초기 도포된 그리스류 윤활유에 달라붙는 오염물이 체인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 듯하다.


초기 그리스류 윤활유가 나중에 도포하는 체인 오일류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마찰을 줄이는 윤활능력과 효과의 지속력이다. 마찰이 심하게 일어나는 허브 베어링에 오일이 아니라 그리스를 주입하고 조립하는 것도 그리스의 그런 능력 때문이다. 다만 이 초기 공장 윤활유는 일반적으로 점도가 높아 비교적 흙먼지가 더 잘 달라붙는다는 단점이 있다.


허브는 외부 오염물이 상대적으로 침투하기 어려운 구조이지만, 노출되어 있는 체인은 그렇지 않다. 그리스와 흙먼지가 뒤섞여 오염이 발생한 체인과 윤활유가 제대로 된 성능을 보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달리 생각해 보아야 한다.

 

롤러와 핀이 마찰하는 지점에 오염이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모 연구기관에서 연구한 결과 깨끗한 상태의 체인일 때보다 오염된 체인은 약 1~2%의 힘손실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흙먼지가 많은 산악라이딩을 주로 하는 라이더가 처음부터 초기 그리스류 윤활유를 제거하고 별도의 건식 체인 오일을 도포하는 것이 반드시 잘못된 방법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겠다. 


이미 앞에서 알아봤다시피 체인 오일이 체인의 미세한 틈사이로 침투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성능이 떨어진다는 것이지 윤활이 안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 계속 이런 저런 주장들을 나열해봐야 동어반복일테고 결론을 내보자.


–초기 공장 윤활유가 체인 오일류보다 성능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체인 오일도 충분한 성능이 있지만 효과지속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더 자주 도포해주어야 한다.
–로드 위주로 라이딩 환경이 나쁘지 않다면 기존 공장 윤활유를 일부러 닦아낼 필요는 없겠고 그대로 타다가 나중에 재윤활 시기가 오면 일반 체인 오일을 도포하면 된다.
–산악 라이더라면 흙먼지 달라 붙는 것을 방지하는 수준, 천에 디그리서(Degreaser)를 살짝만 적시고 체인 표면의 윤활유만 닦아주는 정도로도 새 체인 초기관리로는 충분하다. 너무 디그리서를 많이 침투시키면 윤활유를 제거할 수 있으니까 주의하자.


산악자전거의 경우라도 로드바이크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한동안 타다가 재윤활이 필요하다 싶으면 디그리서를 도포한 천으로 체인을 닦아준 다음, 일반 체인 오일을 도포하면서 관리하면 된다.(개인적으로 이렇게 하고 있다. 선수들이야 작은 힘손실에도 민감하고, 팀 소속 미캐닉들이 관리를 해주는 입장이니 작은 오염이 있어도 체인을 완전히 세척하고 재윤활을 한다지만, 나같은 재미로 타는 사람이 그렇게 관리하며 타려니 너무 귀찮아서…)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다 나름의 체인관리에 대한 의견이 있을 줄로 안다. 한가지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너무 자기 경험과 지식만 옳다고 고집하면 그때부터 다른 사람의 경험과 견해는 무시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새로운 정보에 귀를 닫게 되기 쉽다. 가끔 옳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것도 모르던 사이에 새 기술과 새 규격이 생기면서 변화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자전거와 관련한 지식과 정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래야 한다! 하는 것도 많이 없다.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각자 처한 상황에 맞는 적절한 자전거정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체인정비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자.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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