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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 마돈과 T47… 이 비비(Bottom bracket) 규격이 안죽고 살아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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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 마돈(Trek Madone)과 T47… 이 비비(Bottom bracket) 규격이 안죽고 살아있었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각 제조사마다 신형 자전거에 관한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근래엔 신차 관련 소식에는 눈길이 잘 안갔더랬다. 기술적인 혁신이 크게 있는 것 같지 않고, 이제는 열정이 좀 사그러들어서인지 고가 자전거가 먼나라 이야기로만 들린다. 6월말 어느날, 버릇처럼 자전거관련 웹진에 들어갔더니 신형 트랙 마돈에 관한 소식이 대문에 걸려있었다.

 

 

디자인이 로드바이크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독특했다. 다들 잘 아다시피 제조사들은 신차를 내놓고 나면 늘 읊어쌌는 타령들이 있다. 전작에 비해 무게는 얼마나 줄였으며, 공기역학적으로 효율성이 얼마나 향상되었으니 그로인해 몇 와트의 힘을 아끼게 되었다는… 나같이 평속 15km/h 짜리 재미로 자전거 타는 늙수구리 라이더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수치들이다.

 

아이소스피드(Isospeed)대신 프레임에 새롭게 적용된 아이소플로우(Isoflow)를 보다가 문득 생각에 잠긴다. 에어로 로드바이크(Aero roadbike)이면서 노면 충격을 먹어주는 설계라… 시트마스트(Seatmast)와 탑튜브(Top tube)로 이어지는 부위에 힘이 지속적으로 가해질텐데 혹시 뿌지직 하는 일은 없을까?

 

 

에이! 알아서 잘 만들었겠지…그러다가 다른 스펙들은 건성으로 넘어가고 한 단어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T47.

 

어? 안죽고 살아있었네…

 

T47은 비비규격 명칭이다. 많은 비비규격 중 거의 막내뻘이다. 가장 늦게 발표되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더 나중에 나온 스램(Sram)의 DUB는 여러 비비방식을 통합하는 개념이라 새로운 비비규격이라고 보기에는 좀 애매하다. 어쨌든 T47 규격은 국내 라이더들에게 좀 생소한 비비일거라 생각한다. 적용하고 있는 제조사가 적다. 그런데 메이저 브랜드 중 하나인 트랙에, 그것도 상당히 주요한 모델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고 하니 재밌는 일이다.

 

 

이번 글에서는 T47에 대해 썰(?)을 풀어보겠다.

 

프레스핏(PressFit)의 등장–혼돈의 시작.

 

비비규격은  일단 나사산이 있느냐 없느냐로 크게 나뉜다. 전체 자전거 역사에서 주를 이뤘던 건 나사산이 있는 방식(Threaded)이었다. 2000년대를 지나 최근 십여년간 나사산이 없는 프레스핏 방식이 고가, 특히 로드바이크 자전거에 대세가 되었다.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다. 

 

프레스핏이 본격적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기 시작한 계기는 2000년 캐논데일(Cannondale)의 [BB30]출시였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처음 [BB30]에 관한 업계의 반응은 그렇게 뜨겁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새 규격으로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던지 캐논데일은 이 규격을 다른 제조사들에게 공개를 하였다. 특허와 관련 일체의 비용을 받지 않고 공개하였으니 다른 제조사가 쉽게 적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이후 우후죽순격으로 비슷한 개념의 여러 프레스핏 방식 비비규격이 쏟아지게 되었으니, 의도하지는 않았겠으나 지금 겪고 있는 비비규격관련 혼동의 시초는 캐논데일이라고 하겠다.

 

프레스핏+30mm 스핀들(Spindle)의 장단점.

 

 

처음 이런 개념의 규격이 시장에 나오면서 던진 일성은 강성(Stiffness)이었다. 프레임 비비쉘(BB shell)의 크기를 늘려 베어링을 비비컵(BB Cup) 없이 프레임에 바로 설치하고, 크랭크 스핀들의 사이즈를 기존 지름 24mm에서 30mm로 늘려 강성을 높였다는 것이었다. 프레임 비비쉘의 부피가 커지면서 그것과 만나는 다운튜브, 시트튜브, 체인 스테이(ChainStay)의 튜브 부피도 늘릴 수 있고 대신 튜브 두께는 더 얇게 만들어 오히려 무게는 줄일 수 있다. 늘어난 부피 덕분에 프레임 강성은 증가! 

 

강성! 강성! 강성만이 살길인 것처럼 보였다. 장점을 거론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이거다.

 

하도 강성 강성 그러니까 시마노 관계자가 모 웹진과 인터뷰에서 우리 24mm 스핀들의 크랭크가 언제 강성이 모자란 적이 있었던가? 하고 반문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스핀들 강성이 기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필자는 모른다. 다만 시마노는 여전히 24mm 스핀들 크랭크를 지금도 고수하고 있고 많은 대회 우승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강성 다음으로 꼽히는 장점이 무게감량이 가능하다는 것과 생산원가 절감이다.

 

짧은 기간 지금처럼 많은 제조사가 각각의 프레스핏 규격을 출시하기에 이른 가장 큰 이유는 강성도 중요했겠지만, 무게감량과 원가절감이라는 부분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가벼운 자전거가 성능이 좋은 자전거라는 인식이 자전거 개발에 크게 영향을 미치던 때가 있었다. 카본(Carbon)이라는 소재 도입으로 무게를 줄이고 줄이다가 더 깍아먹는게 힘들어진 제조사 입장에서 나사산 없는 비비가 가뭄에 단비 같았을 거다. 

 

나사산 방식 비비를 적용하려면 비비쉘에 금속사용이 불가피하다.

 

나사산 방식 비비를 쓰려면 카본 자전거라도 금속으로된 비비쉘(슬리브: Sleeve)이 불가피하다. 원통형 금속에 나사산을 내고 다시 카본과 결합을 해야 하니 손이 많이 가고 무게도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통상 100g정도 더 나간다고 보는데, 제조사 입장에서는 나사산을 내고 결합하는 공정이 없어지고 부품수가 줄어드니 당연히 작업이 쉽고 생산원가는 떨어뜨릴 수 있고 덩달아 무게도 줄어드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시마노는 PF86/92, 트랙은 BB90/95, 스램은 PF30, FSA는 BB386evo, 서벨로는 BBright… 등등. 저마다 내 비비가 최고를 외치며 조금씩 다른 프레스핏 방식 비비규격을 선보였다. 비비의 춘추전국 시대였고 표준으로 자리잡겠다는 제조사들의 탐욕이 가장 두드러졌던 세월이었다고 본다.

 

세상사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다는게 고금의 진리 아니겠는가?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 프레스핏 방식(BB30)이 국내에 알려졌을 때 필자의 머리에서 처음 떠오른 생각은 이거였다.

 

[어? 힘을 제일 많이 받는 부위에 나사산 없이 베어링을 그냥 박아 넣으면 나중에 소음이 날껀데…]

 

이 의견을 자주 들르는 자전거관련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렸다가 욕을 먹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미국 최고의 자전거 제조사가 당신보다 자전거에 관한 지식이 없어서 그렇게 설계했겠나? 부터 수입사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의 걱정말라는 핀잔까지…

 

그러거나 말거나… 프레스핏 방식의 소음발생과 관련해서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다. 이미 우리는 그 증상에 대해 충분히 경험하고 있으니까. 프레스핏 비비의 소음을 예방하려면 제조사 차원의 엄격한 공차관리가 필수다. 베어링과 직접 밀착하게 되는 비비쉘 구멍 내측의 가공을 정밀하게 해야 한다. 너무 느슨해도 너무 빡빡해도 소음이 발생하게 된다.

 

제조사들이 이런저런 이익에만 눈이 멀어 이 부분을 쉽게 생각하고 너도 나도 뛰어든 나머지 소음으로 인한 고통은 라이더들에게 전가되었다. 그리고 사실 요즘 웬만한 자전거 브랜드 치고 설계나 개발만 본사에서 하지 직접 생산까지 하는 곳은 거의 없다. 대만이나 중국의 몇군데 공장에서 세계 여러 브랜드들의 자전거 프레임이 생산되는 상황이다. 그러니 다들 비슷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 

 

아무리 가볍고 강성이 좋으면 뭐하나? 무지막지 비싼 자전거에서 페달링에 맞춰 틱틱 소리가 나는데… 

 

이 공차 문제를 좀 편하게 해결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방법이 베어링을 플라스틱 소재 비비컵에 내장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상 [PF30]방식이라고 부른다. 아무래도 금속이나 카본소재를 공들여 가공하는 것보다 비용이나 시간을 아낄 수는 있는데, 이 역시 베어링을 컵에 넣었다는 차이뿐이고 나사산 없이 압입하는 것은 동일해서 소음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지금은 제조사에서 생산관리에 더 신경을 써서 소음 문제가 많이 줄었고, 소음제거용 별도의 대체용 비비도 공급되고 있으며, 프레임에 문제가 있어 소음이 영 해소가 안되면 워런티(Warranty) 신청을 해도 된다. 그러나 어쨌든 프레스핏의 단점으로 첫번째 꼽는 것은 소음이다.

 

두번째 단점은 호환문제가 복잡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조합을 대비해 아답터가 공급되고 있어서 문제해결이 불가능한 경우는 적지만, 아무래도 부품선택시 이것저것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세번째 단점은 정비가 상대적으로 까다롭다는 것이다. 현대적인 의미의 산악,로드바이크는 기존 나사산을 사용하는 외장형 비비(External BB)의 경우 정비할 일이 거의 없다. 가끔 고정볼트가 풀리지 않았는지 점검 정도면 충분하고, 초기 조립시 실수를 하지 않는한 소음발생이나 기타 문제발생할 확률이 낮다. 오랜 사용으로 베어링에 문제가 생기면 자가정비 입문자라도 크게 어렵지 않게 비비교체 작업이 가능하다. 공구도 육각렌치, 비비렌치 정도. 공구가격이 크게 비싸지도 않고.

 

반면 프레스핏은 방식에 따라 쉬운 것도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나사산 방식 정비보다는 조금 더 난이도가 있고 분리나 결합시 약간의 정비경험이 필요하다. 공구도 두가지 정도 전용공구가 추가로 필요하고…아무래도 타격을 가해 분리하고 강한 힘으로 눌러 장착해야 하니 처음 하는 사람이라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T47의 등장–니가 왜 거기서 나와?

 

2015년 허브(Hub)로 유명한 크리스킹(Chris king)과 몇몇 자전거 부품 제조사가 T47이라는 새 비비규격을 내놓았다. 명분은 [프레스핏+30mm스핀들]을 쓰는 여러 규격의 장점을 흡수하면서도 나사산을 다시 적용해 소음을 제거하고 호환성 및 정비용이성도 높였다는 것이었다.

 

T는 threaded, 47은 비비컵 나사산 사이즈 M47×1(나사산 외경:47mm 나사산 피치:1mm)를 의미한다. 이 나사산 사이즈의 비비컵을 비비쉘에 장착하려면 내경 46mm짜리 비비쉘에 나사산을 가공해 주어야 한다. 46mm…기존 PF30의 내경과 동일한 사이즈라서 호환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크랭크의 스핀들도 24, 30mm 둘다 가능하고 심지어 이 방식을 채택한 프레임 비비쉘에는 프레스핏 소음방지용으로 나온 대체용 비비도 설치가능하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출시 초기 다른 제조사 및 일반 라이더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미 수많은 비비규격들로 충분히 난장판인데 굳이… 새 규격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고 성공을 점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이유는…

 

•실수를 잘 인정하지 않는 업계의 문화가 새 규격의 확산을 저해한다고 본다. 지금까지 프레스핏+30mm 스핀들 조합의 장점을 한껏 마케팅에 이용해 장사하다가 다시 나사산으로 돌아가려니 왠지 낯부끄러운 일이다. 

 

•생산라인이 프레스핏에 최적화 되어 있어 다시 나사산을 도입하자면 기존 생산설비의 대대적인 개편이 불가피하고 그 비용도 만만찮다. 특히 카본 프레임의 경우 금형을 다시 제작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든다. 한두 모델이면 몰라도 메이저 제조사의 경우 모델도 다양하고 사이즈별로 모두 교체하려면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얻는 이익보다 나가는 비용이 커서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초기에 T47의 개념을 만들어 내고 프레임에 적용한 제조사들이 모두 규모가 작다. 특히 프레임쪽이 그렇다.

 

•프레스핏 방식의 소음문제에 라이더들이 내성이 생겨 크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인데다가, 아… 올것이 왔구나 정도. 그리고 해결책이 널리 퍼져서 대체용 비비교체로 소음에 소비자가 알아서 대응을 하니 제조사로서는 뭐 딱히 아쉬울게 없는 상황이다. 괜히 나서봐야 뭐하겠는가? 물론 제조사의 노력으로 소음발생이 많이 준 것도 있고…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나사산을 내려면 고가 카본 프레임의 경우 금속소재 슬리브 추가가 필수다. 따라서 무게가 증가한다. 몇 그램도 아쉬운 마당에 100g 추가는 제조사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수치다.

 

출시 초기 모 웹진에서 주요 제조사 몇군데에 T47 도입에 관한 의견을 물었더니, 판매량이 세계 최대인 회사는 비용문제로 부정적, 눈이 돌아갈 정도로 가격이 특별하면서도 소음이 심했던 모 제조사도 시큰둥, 뭐 아이디어는 그럴듯한데 도입은 어렵다는 대충 그러한 반응이었다.

 

그간의 사정이 이랬으니 한때 그런게 나왔다더라, 정도로만 생각하고 잊고 있었더랬다. 그랬던 규격이 트랙에, 그것도 상급 자전거에 떡하니 한자리 차지했다니 흥미로울 수밖에.

 

트랙 모델에 이 규격이 처음 적용된 것은 2019년에 20년도 버전 Crockett 싸이클로크로스(Cyclo-cross) 자전거를 출시하면서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번 그래보는 것이겠거니 했는데…그 이후로 도마니(Domane), 에몬다(Emonda), 마돈까지 영역이 확대되었다. 아직까지는 이른바 메이저 자전거 브랜드 중에서 이 규격을 적용한 제조사는 트랙이 거의 유일한 거 같다. 꽤 유명한 티타늄 프레임 제조사도 도입한 것이 확인되는데, 로드쪽은 워낙 비중이 낮은지라 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요약.

 

–프레스핏+30mm 스핀들을 기반으로 한 여러 규격들이 출시되었으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소음문제가 있었다.

–T47이 기존 규격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기 위해 다시 나사산 방식으로 출시되었다.

–이런저런 비관적인 전망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랙이 고가, 상급 자전거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적용하고 있는 회사가 소수이다.

 

어쨌거나 T47에 막강한 지원군으로 트랙이 뛰고 있는 상황이다. 이 규격의 향후 운명을 지켜보는 것도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재미 중에 하나일 거라 생각한다./자.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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