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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공작소통신

완도에서 순천까지 남도 라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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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에서 순천까지 남도 라이딩.


근황.


모든 행위에는 근육이 필요하다. 꾸준히 하던 단순한 아침 운동도 서너달만 중단하고 나면 다시 시작하기가 참 어려워진다.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근 일년을 안쓰다가 다시 자판을 두드리려니 첫줄부터 잘 안나간다. 일을 하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다 비슷한 것 같다. 너무 손을 놓아서 그 일에 대한 근육이 약해질 대로 약해지면 다시 비슷한 수준으로 되돌려놓기가 쉽지 않다. 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여행을 마친지 두달 가까이 지나서야 이렇게 여행기를 겨우 올리게 되었다.


업데이트가 뜸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방문하여 이 글을 읽을 티스토리 [자전거공작소]의 오랜 독자 여러분들에게 짧은 인사를 전해본다.


–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온나라 아니 온세계가 돌림병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그동안 나는 손가락 마디의 관절염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용 빈도나 강도로 따져봤을 때 무릎관절이 아프다면야 수긍할 수 있는 문제지만 택도없이 손마디라니! 자전거여행은 언감생심, 처방전이 내 손에 안겨준 한웅큼 알약들을 성실히 삼키며 관절염과 역병의 나날들을 견뎌냈다. 손가락 상태와 역병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틈틈히 바이크패킹에 필요한 장비들을 사모았다. 텐트 칠 때 유용한 매듭 묶는법을 익히기도 하고 지난 여행에서 필요를 느꼈던 태양광충전기를 구매해 테스트를 하면서 자전거여행에 대한 허기를 달랬다.

 


아! 가장 중요한 것을 빼먹었다. 생전 해외직구라고는 안하고 살던 사람이 투어링용으로 나온 저렴한 대륙발 크로몰리 프레임을 구매하여 기존 부품을 이식하기도 했다.(이 과정은 자전거공작소 유튜브 채널에 영상으로 남겼으니 참고하시길.)

 

새로 조립한 투어링 바이크와 장비들.

나에게 가장 적당한 자전거 라이딩과 여행은 투어링용 자전거로 캠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굳히게 된지 꽤 되었다. 본격적인 로드나 산악라이딩을 하기에 몸이 허락치 않는 상황이니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새 여행용 자전거에 짐받이와 패니어 그리고 각종 장비들을 세팅 해놓고 다음 카카오의 로드뷰를 보며 여행지, 여행경로를 탐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면서 손마디가 쑤셔오는 통증을 견뎠던거지머.


경로의존성.


마음이야 늘 새로운 길, 낯선 경로,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지역을 꿈꾸지만, 이 길은 초반에 차량이 너무 많으니 다음으로 미루고, 이 경로는 업힐이 너무 많고 텐트 칠만한 장소가 마땅찮으니 역시 나중에, 한번도 안가본 이 지역은 자전거 선적이 까다로운 곳이니 패스, 이렇게 되기 십상이다. 생각해보면 다 핑계일 뿐이다. 학자들은 낯선 길을 피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익숙한 길을 선호하는 이런 경향성을 경로의존성이라고 한다. 그 경향성이 내 마음에 작용해서 하고 많은 여행지 중에 또 다시 제주로 생각이 기우는 거였다. 자전거로 충분히 자주 가서 이제 딱히 여행이 주는 감흥이 없을 것이 뻔한데도 시선이 그리로 간다. 경로의존성! 내가 딱 그짝이었다.


– 일단 이번 여행은 오래 쉬었다가 다시 떠나는 것인 만큼 무리하지 말자. 자전거도 바뀌었고 추가된 장비도 많으니 제주 한바퀴 돌면서 라이딩 근육도 되살리고 새 장비도 테스트 해보고… 대신 완도로 나와서 순천까지는 안달려봤으니 새 경로는 이정도 추가하는 걸로 하자. 이참에 캠핑의 성지라는 비양도에서 캠핑도 해보고. 겸사겸사 겸사겸사.

 

제주 송당리 가는 길가의 메밀꽃.

애초에 가보고 싶었던 곳을 포기하고 경로의존성에 굴복한 터라 출발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다만 새 프레임으로 조립한 자전거가 기대이상의 성능을 보여주어서 자전거 타는 재미는 좋았다. 사실 캠핑엔 입문수준이라 경험이 일천하다. 따라서 제주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 깊이 알지는 못한다. 허나 다시 찾은 제주는 캠핑할 수 있는 여건이 점점 안좋아지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한번 이용해 보고 너무 좋아하게 되어서 고향집처럼 마음에 담아두었던 야영장 한곳은 그사이 폐쇄되었고 다른 곳도 캠핑자제 안내막이 걸린곳이 있었다.


나 같은 바이크패커는 캠핑이 목적이 아니다. 자전거로 하는 여행, 라이딩이 주목적이고 캠핑은 경로 중간 중간 휴식을 가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렇게 점점 제약이 많아진다면 이 재미진 일을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아 덜컥 섭섭한 마음이 생긴다.

 


중산간을 가로질러 첫날 야영지에 도착해 일찌감치 자리를 폈다. 이전까지는 취사장비를 준비하지 않았더랬는데 이번에는 그간 사모은 장비들을 몽땅 들고 갔다. 예전 여행기에서 밝혔다시피 바이크패킹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곤란했던 부분은 씻는 문제였다. 땀에 절은 몸이 씻지 못한 상태에서 삼일 정도 지나니 두드러기가 생긴 경험이 있다. 그것에 대비해 이번에 가지고 간 것이 요놈이다. 물주머니. 

요긴하게 썼던 물주머니.


주머니에 물을 채우고 하단부를 돌리면 물이 졸졸 흘러나와 몸을 씻을 수 있다. 구석진 곳에서 자전거 타느라 흘린 땀기운만 제거하는 대충하는 샤워지만 그래도 정말 만족스러웠다. 텐트에 들어가기전 손발에 묻은 모래를 씻어내기에도 좋고, 간편식품 데우기 위한 물은 딱히 정수된 물이 필요없으니 이렇게 미리 받아놓고 쓰면 화장실에 왔다갔다 하지 않아 좋았다.


샤이한 어떤 노인.


무료 야영장이 대부분 그렇듯이 텐트를 설치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이 생기기 마련이다. 반갑게도 같은 자전거 여행자가 옆자리에 텐트를 치러 왔다. 힐끗 보았는데 눈썹이 하얗게 세어서 산신령 분위기를 풍기는 노인이다. 척봐도 나보다 나이대가 더 높아보였다. 저 나이대에 혼자 자전거여행을 온 것도 독특한데 텐트를 치자마자 안으로 들어가더니 아무런 기척이 없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의례 나누는 인사치레는 커녕 눈인사도 피하는 정말이지 샤이(Shy)한 노인이었다.


샤이하다면 나도 나름 한샤이 하는 사람이지만, 세상은 넓기가 하해와 같고 샤이함의 내공이 남다른 사람 역시 넘쳐나는구나, 생각하며 이른 저녁상을 차리고 제주 막걸리 한잔에 의지해 여행 첫날밤을 그렇게 마무리했다.

 


이튿날 아침 샤이한 노인과 나는 비슷한 시간에 텐트를 걷기 시작했다. 제주 특유의 거친 바람 때문에 텐트를 가지런히 개기가 쉽지 않았다. 제주 내의 야영장 위치가 빤하고, 하루 라이딩 거리도 뻔한 터라 저녁에 다시 만날 확률이 높았다. 그 샤이한 산신령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 선생님, 바람이 많이 불어서 오늘 라이딩은 많이 힘들어 지겠네요.


– 아, 예... 그렇지 않아도 오후부터 비바람이 심해진다는 예보가 있어서 오늘은 서둘러 다음 목적지인 표선 야영장까지 가서 일찌감치 텐트를 치려고 합니다. 보통은 모슬포 근처에서 야영을 했더랬는데, 거기가 폐쇄되는 바람에 어제는 여기에 텐트를 칠 수밖에 없어서 어쩌고 저쩌고…


통상 샤이한 사람들은 처음 말을 트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영 대화하기를 꺼려하는 사람은 드물다. 묻지도 않은 이런저런 정보를 잔뜩 전달하는 샤이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자전거에 짐을 먼저 꾸린 상태였다. 나는 비 예보에 관한 소식을 듣자 마음이 바빠졌다.


– 먼저 출발하시지요. 나중에 표선 야영장에서 뵙겠습니다.


노인은 먼저 출발했다. 바람 때문에 정돈이 잘 안되는 텐트를 어찌어찌 구겨넣고 나도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아닌게 아니라 하늘은 이내 흐려졌고 가는 빗방울이 오락가락했다. 비를 맞으며 자전거 타는 것보다 처량한 꼬락서니는 없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다. 최대한 표선까지 빨리 가는 게 수다. 길을 단축하기 위해 해안도로가 아닌 일주도로를 타고 표선으로 부지런히 달렸다. 점심으로 먹은 편의점 도시락의 효과가 떨어지려는 시점에서 표선에 당도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샤이한 노인은 먼저 도착해 있었다.

 

하늘은 무거울대로 무거워서 당장 장대비가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야영장엔 [텐트설치 자제]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금지면 알아먹겠는데, 자제라니. 무조건 치면 안된다는 말인지 불가피하면 쳐도 된다는 것인지 명확한 의미파악에 애를 먹고 있는데, 먼저 도착해 있던 샤이했던 노인이 용감하게 나서는 거였다.


– 비도 오고 다음 야영장까지는 너무 머니 일단 나는 텐트 쳐야겠어요. 나중에 뭐라 그러면 그때 다시 걷든지 말든지 하고…


이전에는 늘 몇몇 팀이 이미 야영을 하고 있던 곳이 표선야영장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샤이했던 노인과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괜히 죄짓는 기분에 망설여졌다. 노인은 혼자 텐트를 치기는 마음이 불편하고 해서 내가 도착하길 기다린 눈치였다. 빗줄기는 점점 더 굵기를 더해가고 이것저것 따지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나도 최대한 사람 눈에 안띄는 구석에다가 텐트를 쳤다. 다행히 중간에 텐트를 철거하라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바이크패킹의 가장 큰 재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비 오는날 텐트 안에서 빗방울이 텐트를 때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죠. 거기에 텐트 안에서 술한잔 기울이면 그 재미는 더 오지고요. 비 맞으면서 자전거 안타도 된다는 안도감까지 더해져 술맛이 더 통쾌해지는 순간을 즐기는 거죠.


비는 밤새 이어졌고 나는 그 재미를 다시 누렸다. 술기운에 깜빡 곯아떨어졌다가 화장실이 급해 근처 공공 화장실에 갔더니 예의 샤이했던 노인과 마주쳤다. 얼굴을 보니 불그레한 것이 그도 술한잔 걸친 것 같았다. 몇번 말을 섞었다고 노인은 첫날의 그 견고하던 샤이함을 벗어 던지고 꽤 공격적인 질문공세와 그 나이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오지랖을 늘어놓았다. 


나이는? 고향은? 가족은? 결혼은? 월수입은? 노후대책은? 


아, 이땅의 샤이한 자들이여, 그대들의 말수적음을 예의나 무슨 개성이나 스타일로 착각하지 말지어다. 그대들도 언제든 타인에게 충분한 지옥. 


똥 싸야 한다고 노인과의 대화를 모멸차게 끊었다. 노인은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비바람 치는 야영장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백패킹의 성지는 도떼기 시장.


다음날 아침. 화장실에서 정색을 했던 탓인지 노인은 다시 샤이해져서 조용히 혼자 텐트를 걷더니 자전거를 먼저 출발시키려 하고 있었다. 냉큼 손나팔을 만들어 인사를 건넸다.


– 좋은 여행하세요.


– 예, 그쪽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전 김녕에 갑니다. 


나는 조심히 자전거 타시라고 작별인사를 했다. 이날 나의 박지는 제주의 부속섬 중에 하나인 우도, 그 안에 있는 비양도였다. 어디든 성지라는 이름이 붙으면 그곳은 이미 도떼기 시장이 되어버린 후다. 잘 알면서도 우도의 비양도를 찾았다. 근 십여년전 우도를 처음 찾았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하고 있다. 바다 풍경이 제주에서도 그중 압도적으로 좋은 곳이었다. 그 때 나는 우도를 [섬 안의 섬] 이라고 불렀었다. 

 

사람의 생각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인 터라 내가 아니더라도 우도에 대한 별칭을  [섬 안의 섬] 이라고 누군가는 불렀을 거다. 처음 우도 풍경이 주는 충격 속에 허우적대며 서빈백사에 자전거 대놓고 맞은 편 본섬인 제주를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떠오른 문구가 [섬 안의 섬]이었다. 그 이후 다시 우도를 찾았을 때, 여기저기 홍보책자와 조형물에 이 문구가 쓰이는 것을 보노라면 내심 기분이 좋아진다. 우도와 제주의 관계를 참 잘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 지났고, 당연히 변한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 제주하고도 우도다.

 

비양도 야영지.


우도...


섬 안의 섬… 그 섬 안에서도 또 섬이 있으니 그곳이 이름하여 비양도이다.


제주 바람이야 어디든 안 거친 곳이 없겠지만, 비양도는 특히 바람이 심한 곳이다. 바닷바람의 최첨단에 비양도 야영지가 있는 듯했다. 하룻밤 묵을 텐트를 치는데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치는 거야 팩을 미리 박고 어찌어찌 어렵지 않지만 철수할 일이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미리 익혀둔 매듭법을 실전에 써먹을 수 있어서 보람이 있었다. 

 

며칠을 연습해서 익힌 매듭법... 그러나 지금은 까먹었다.


성수기가 아닌데도 성지, 비양도는 나같은 바이크패커, 백패커, 오토바이여행자, 연인끼리 여행온 사람들, 친구끼리 추억여행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뭐랄까, 자연은 늘 그랬던 것처럼 아름다우나 한쪽에는 드론이 붕붕 저쪽에는 고기파티… 야영장 한구석엔 누군가 버리고 간 텐트가 바람에 펄럭펄럭. 그 도떼기 시장 한가운데 있자니 석양이 눈에 잘 안들어왔다. 이날도 막걸리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누웠다. 몸을 누이자마자 정신을 잃고 잠에 빠져들었다.

 


제대로 투어링용 자전거에 짐을 가득 싣고 달려보니 라이딩을 마치고 누웠을 때 느끼는 피로도가 평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았다. 이전엔 라이딩을 마치고 숙소에 누워 하체근육에 힘을 주면 나른하면서도 은근한 근육통이 기분을 좋게 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삭신이 쑤신다는 표현이 머리속에 떠오르는 거였다. 나이가 있으니 운동능력의 저하도 감안해야겠지만, 확실히 짐을 실은 무거운 자전거가 라이딩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가 않았다. 특히 오르막에서 기어비가 부족함을 느낀 건 오랜만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피팅이 제대로 이뤄져서 무릎통증이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유명한 비양도의 석양.


기계적인 자전거 타기와 텐트 치기.


자전거로 달리고 캠핑을 하다보면 안그러려고 생각해도 라이딩보다는 캠핑이 늘 중심이 된다. 오후 서너시만 되면 박지 걱정에 시달리기 일쑤다. 적당한 자리를 못잡는 것은 아닌가부터 저녁거리 장만까지 이런저런 걱정들로 머리가 꽉차는 거였다. 조금씩 요령이 더 붙어야 바이크패킹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 가겠지만, 아직까지는 캠린이 처지를 못벗어나고 있다.


제주에 가서 오름 한군데 오르지 않고 내내 포장 도로만 달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기계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야영지에 도착하면 텐트 치고 쉬기 바빴다.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말이다.

 

제주에 가면 늘 들르는 송당리 로타리 식당.


더 자유로운 자전거여행을 모색하느라 시작한 캠핑이 오히려 사람을 더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것 같았다. 목적과 수단의 전도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테지? 제주에서 마지막날 야영지를 선택할 때는 더 그랬다. 다음날 배가 아침 일찍 출발하는 터라 제주시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박지를 정하고 싶었지만, 함덕해수욕장 야영지와 제주시 사이에 더는 텐트를 칠만한 곳이 없었다. 


해가 한참 남은 시간에 도착한 함덕 야영장. 제주시와 가깝기도 하고 때는 주말이어서 하마터면 텐트 칠 자리를 못잡을 뻔하였다. 캠핑인구가 정말 늘어나기는 했는가 보다. 다닥다닥 붙은 텐트,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고기파티에 술파티는 이제 너무 흔한 풍경이었다. 함덕에서 제주여객선 터미널까지는 거리가 제법 되기 때문에 아침 일곱시 경에 출발하는 완도행 여객선을 타려면 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서둘러야 했다. 고요한 야영장에 홀로 일어나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텐트를 걷는 신세가 처량했다. 그나마 바람이 덜 불어 힘들지 않게 정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가자 완도로!

 

완도행 실버 클라우드호.


이것도 경로의존성의 일종이겠지만, 나는 늘 제주를 들고 날 때는 배를 탄다. 배 타는 것이 좋다. 왠지 마음이 편하다. 해서 이렇게 또 배를 탔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을 독자들에게 제주발 완도행 실버클라우드호를 강력히 추천하게 되는데, 이 땅에 볼 눈, 들을 귀 있는 자들이여! 한번쯤 실버클라우드호를 타보시길.

 


우리나라 회사 선박이지만 파나마 선적인 실버 클라우드 후미에 앉아 제주의 실루엣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다풍경을 즐겼다. 딱 지겹지 않을 정도의 항해시간이었다. 이날 날씨가 좋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완도항에 가까워질 때까지 제주의 윤곽이 희미하게나마 수평선 위에 남아 있어서 신비로웠다. 아마도 그 옛날에 현대항해술이나 엔진의 힘을 빌릴 수 없던 시절에는 바람과 해류에 의지해 희미한 섬의 자태를 지표 삼아 사람들은 제주를 오갔을 것이다.

 

배 후미에서 바라다 보이는 제주 전경.


실버 클라우드가 완도에 가까웠음을 긴 뱃고동으로 항구에 알렸다. 배가 항구에 접안하는 과정도 소소한 볼거리였다. 항구의 직원들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닻줄을 잡아당기고 고정하는 일련의 과정이 과장을 조금 보태어 아이돌 그룹의 군무를 닮았다. 혹시 이 배를 탈 일이 있다면 이 광경은 꼭 구경해볼 일이다.

 

완도항.


이 배편의 경우 자전거도 별도의 선적비용을 받는다. 비용은 크지 않지만, 차량이나 오토바이와는 별도의 공간이 제공되고 담당직원이 있어서 고정도 해준다. 앞으로는 매사 이렇게 서비스에는 비용을 작게나마 지불하는 형태로 변했으면 한다. 무료야영장의 경우도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중 하나가, 무료임을 빙자하여 발생하는 무질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적게라도 비용을 받고, 그 돈은 화장실을 관리하는 분에게 돌아가게 하거나 주변 주민들의 공공시설 유지에 기부되는 방식도 괜찮겠고, 어쨌든 캠핑할 수 있는 여건이 계속 유지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무려나 자전거를 가지고 배 후미를 빠져나오니 완도의 첫느낌은 평온함이었다. 이렇게 조용할 수가. 이유는 제주에서 내내 바람에 시달린 탓이었다. 이날만 특별히 완도에 바람이 덜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라이딩 하기에도 나중에 캠핑 하기에도 너무 좋았다.

 

완도 첫인상.


깔끔하기 이를데 없는 완도여객선 터미널 화장실에서 급한 용무를 보고 편의점에 들러 물과 행동식을 샀다. 자! 이제 한번도 달려보지 않은 제대로 된 자전거여행의 시작이었다. 여행 오기전 미리 염두하였던 루트를 따라 신지대교, 장보고대교 고금대교를 차례로 넘었다. 행선지는 역시나 무료 야영장이 있는 보성의 율포해수욕장. 나는 남도의 섬들을 잇는 연육교들을 하나 하나 차례로 넘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가 볼만하였다.

 

신지대교.
장보고대교.
고금대교.

 

아, 그러나 고금대교 끝단의 오르막까지 오르고 나자 나는 급격하게 체력을 잃어갔다. 오랜만에 나선 장거리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쉬지않고 매일 라이딩을 지속하였던 탓에 몸에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서 점점 오르막 대응이 안되는 거였다. 거기다 무거운 짐에 초여름 더위까지 가세하니 순천까지 완주에 대한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중간에 집으로 가는 고속버스편이 있었더라면 포기할 뻔 하였다. 내 엔진 그러니까 근육은 천관산을 넘다가 바닥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가까운 장흥은 비교적 큰 곳이니 버스편은 있는데, 시간이 오후라 버스시각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울며 겨자먹기로 율포로 꾸역꾸역 페달을 밟았다. 가는 길에 발견한 용산면 하나로마트는 글자 그대로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거기서 구매한 탄수화물 덩어리의 차가운 청량음료와 빵이 없었더라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인구가 드문 농어촌 지역에서는 이만한 보급장소가 없는 것 같다.

 


남도의 해안도로는 말이 해안도로지 제주나 동해같이 푸른 바다를 지척에서 느낄 수 있는 길이 아닌 경우가 많다. 또 때에 따라서 갯벌이 넓게 펼쳐진 경우도 있고 바다빛깔도 상대적으로 탁한 경우가 적잖아서 보는 맛이 조금 덜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래도 그 특유의 울적함, 적막함도 나름의 볼거리라고 생각한다. 

 

수문해수욕장 가는 길.

목적지 율포가 가까워진다고 느낄 즈음 남도바다를 더 느껴볼 욕심으로 바닷가 가까운 길로 접어들었는데, 어렵쇼? 율포가 아니더라도 그 전에 이미 적당한 캠핑장소가 나타나는 거였다. 

 

장흥군 안양면에서 해안길따라 보성군 회천면까지 해수욕장을 낀 야영지가 꽤 있다.

 

해는 지고 몸은 힘들고 율포는 아직이고. 일정이 어긋나면 짜증이 심해지는 나지만 일단 살고보자는 심정으로 수문해수욕장에 자리를 잡았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이날 고집을 부려 율포에 갔더라면 워낙 유명한 야영장인 터라 사람이 많아서 자리를 잡지 못했을 거였다. 다음날 지나가면서 구경삼아 들렀더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텐트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나도 타인에게는 폭력.


어쨌건 계획에 조금 못미치기는 했으나 무사히 라이딩도 마쳤겠다, 지친 몸에 보상을 주고 싶었다. 좀 그럴듯한 저녁을 먹어야지 싶었다. 텐트를 치고 한구석에서 몸을 닦은 다음 편한 신발로 갈아신고 수문 해수욕장 근처 탐방에 나섰다. 그러나 이게 웬일…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식료품을 살만한 가게가 안보이는 거였다. 졸쪼로미 벤치에 앉아 사람구경에 한창이던 동네 할머니들께 질문을 던졌다.


– 할머니, 동네에 술이랑 안주거리 살만한 가게가 어디 없을까요?


– 아따 여그는 가게가 없시야. 쩌그 율포까정 가야 머시기가 많어. 거그는 엄청나게 잘해놨더마.


– 아이고, 힘들어서 지금 율포까지는 못가겠네요. 어… 근데 주변 분위기도 좋고 딱 이 부근에 슈퍼가 있으면 좋았겠는데… 없나보네요? 아이고 맥주라도 한병 샀으면 하는데...


할머니 무리중 한분이 겸연쩍게 나선다.


– 우리도 가게가 있었으면 편코 조컸는디, 거시기 여그는 가게라꼬는 쩌그 동네 입구에 쬐맨한게 한나 있기는 있는디 쫌 시장시럽기는 허제.


처음엔 없다고 하시더니 말을 바꾼 것이 내키지 않는듯 겸연쩍은 표정으로 입을 다무신다. 뭔가 내가 죄지은 듯한 묘한 분위기가 생겨서 얼른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가게가 있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수문은 특산물 키조개 가게와 횟집을 제외하고는 퇴락한 동네였다. 을씨년스러운 좁은길 한구석에 글자 그대로 구멍가게 하나가 있었다. 인적 없는 거리, 부서진 채 방치되고 있는 건물 , 빈 가게, 세월의 더께가 두껍게 끼어있는 양철 대문. 그랬다. 수문은 작은 슈퍼 하나도 유지가 어려운 규모의 작은 마을이었던 것이다. 사정도 모르는 외지인이 슈퍼마켓 타령을 했으니... 구멍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노부부가 소일삼아 하는 가게인지라 과자 부스러기도 변변치 않았다. 지역 막걸리 한통과 캔커피를 사들고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누구나 손님에게는 좋은 곳만 보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겠지? 괜히 주인이 보이고 싶지 않은 곳까지 들쑤시고 다닌 불청객이 되고만듯한 기분이었다. 어쩌다보니 나도 타인에게는 폭력이었다. 샤이했던 노인의 희던 눈썹 불그레하던 양볼 살짝 더듬던 말투와 어정쩡하게 굽은 등이 떠올랐다.


지역 균형발전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리는 아마도 헛된 구호로 남을 공산이 높아보인다. 다행히 통닭집이 눈에 띄어 한마리 사들고 텐트로 돌아왔다.

 


안양막걸리 한통에 어울리지 않는 닭다리를 안주 삼아 바닷가 벤치위에 판을 벌렸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바다가 멀더니 야금야금 은밀히 야습을 감행한 적병들처럼 해가지니 물이 가까이까지 쳐들어와 있었다. 이 바다를 바라보며 한잔했다.어떻게 된것이 닭다리보다 안양막걸리의 맛이 기가막히게 좋았다. 이 동네 막걸리인 안양막걸리는 지나가는 길이라면 꼭 맛을 봤으면 한다.

 

남은 안주는 동네 고양이들과 나누어 먹었다. 고요하기 이를데 없는 남도의 밤바다를 한참 구경하다가 잠에 들었다. 여행 나와 제일 깊게 잔 날이었다.


보성 지나 벌교, 마지막 순천으로.


다음날도 조금 서둘러 텐트를 걷었다. 아침 라이딩이 그나마 선선해서 할만하고 되도록 벌교에 빨리 도착해 벌교구경을 하고 싶어서 그랬다. 그래도 시간에 여유가 조금 있어서 큰길이 아닌 바닷가쪽 비봉공룡공원 방향으로 경로를 정했다. 오봉산을 오른쪽으로 끼고 우회하여 조성으로 가는 길이다. 

 

명교해수욕장.

 

그래서 경치는 좋았는데, 남해안 특유의 가파른 낙타등 코스가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높은 오르막 뒤에 펼쳐지는 바다와 곧게 뻗은 방조제 옆길, 아 정말 좋구나 하다가도 고개가 갸우뚱 해지면서 기시감이 금방 찾아왔다. 사실 완도에서 지금까지 내내 이런류의 기시감을 느꼈다. 패니어에서 먹다남은 빵과 음료수를 꺼내 먹으며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득량만 방조제를 따라 긴 꽃길.


아니 어째서 길도 풍경도 처음인 것 같지 않고 눈에 익은 것 같지? 영판 재방송 보는 기분이잖아!


주범은 다음 카카오의 로드뷰였다. 역병시국이 한창인지라 되도록 여행을 자제하고 있으면서 심심할 때마다 로드뷰를 보며 라이딩 코스를 미리 훑어보던 습관이 확실한 데자뷰를 만든 거였다. 고작 사진을 이어붙인 지도화면 때문에 자전거여행의 재미가 이정도로 반감되다니. 많은 자본이 가상현실 기반 기술로 모여든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미 자전거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앱과 스마트 트레이너를 이용해 가상공간에 모여 시합을 벌이기도 한다. 이 속도로 기술의 발전이 이어진다면 머지않아 사람들은 애써 멀리까지 자전거를 타러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약간의 거추장스러운 장비는 몸에 걸쳐야 하겠으나 어쨌든 자기 방안에서 가상이나마 세계각지를 달릴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여러분들의 선택은?


이런 잡생각들을 하면서 페달을 밟다보니 어느덧 자전거는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였던 곳, 보성 하고도 벌교에 당도해 있었다. 여기저기 재현해놓은 소설속 인물들의 집과 건물들을 돌아보는데 격동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그 혼돈의 세월을 살았던 소설속 주인공들의 실루엣이 대낮인데도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듯하였다. 허구임이 명백한 소설의 힘이 어느정도인지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중도방죽을 따라 다듬어 놓은 갈대 사잇길이 걸어볼만 하니 한번쯤 구경 가보시길.

 


벌교를 뒤로하고 순천 가는 큰 고개를 넘었다. 이 과정에서 약간 길을 잃었다. 자전거가 좋아 자전거로 여행을 다닌지 이제 십여년이 넘은 듯하다. 그사이 우리나의 길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길이 좋아지고 많아졌다는 것은 자전거 타는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이렇게 길을 잃고 헤매일 때는 약간 짜증이 난다. 예전에는 산천을 보고 마을을 본 후 약간의 감각만 동원하면 어렵지 않게 길은 찾을 수 있었더랬는데, 이제는 길이 너무 많아 갈래길이 나오면 지도앱의 신세를 안질 수 없는 상황이다. 맞는 길이다 싶어 잘 나가다가도 자동차전용도로인 경우도 있고 이길 말고 저길로 가면 조금이라도 편하지는 않을까? 하고 망설이게 되는 경우도 많다. 큰 오르막에서는 그런 감정이 더 생긴다. 죽을힘을 다해 큰 고개를 넘어 순천으로 달렸다.

 


순천은 초행길이 아닌터라 많이 낯설지는 않은 도시인데, 여름 분위기는 또 달랐다. 갈대가 푸르기도 하고 그 습지 사이로 물이 들어와 있는 건 처음 보았다. 사실 몸이 너무 지쳐서 버스 터미널을 향해 달리기 바쁘다보니 순천은 주마간산격이 되어버렸다. 늘 여행의 마지막 날은 이런식이 되기 십상이다. 집으로 가는 버스표를 구매하고 패니어를 자전거에서 분리해 준비를 마친 다음 터미널 내부 편의점에서 얼음커피를 한잔 사서 들이킨다. 뭐랄까, 일종의 안도감 같은 것이 마음에 일어나면서 낮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무사히 계획대로 달려냈구나… 의도했던 코스를 한점 우회없이 완주해냈구나… 이런 생각 외에는 머리에 남아있는 것이 당장은 하나도 없다. 


왜 점점 여행이 약간의 흥분을 동반한 즐거움, 설레임, 좋은 기억 같은 것들이 없어지고 고단함만 남는 것인지… 이런 근심을 버스안에서 내내 하였다. 이 근심은 이날 저녁 집에 도착한 후 해장국집에서 소주를 마시면서도 계속되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의미없는 클릭질을 하는 동안에도 근심은 반복되었다. 이는 질환으로 의심되는데, 관절염이 남긴 후유증으로 일종의 우울증일지도 몰랐다. 기억에 의지해 모종의 의미를 꺼내기가 난망이었던 나는 여행중에 수첩에 남긴 기록을 허겁지겁 뒤적이기 시작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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